지구촌방랑/'희망의 씨앗' 네팔방문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오롯한 기쁨과 밀려오는 행복

찰라777 2014. 12. 16. 07:33

[희망의 씨앗 네팔 방문기-마지막회]

장학생 수를 늘려주고, 컴퓨터를 더 지원해 달라고 하는데... 

 

세 학교에 컴퓨터 전달 행사를 마치고 숙소인 더먹으로 돌아오니 밤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곧 현지 운영위원들과 선생님들이 도착했다. 오늘 밤에 그들과 간담회를 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간담회를 통해서 현지의 애로사항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우리 측에서도 부탁을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50여명의 운영위원과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지 운영위원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역시 장학생 수를 늘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운영위원이 일어서서 애로사항을 말했다 

 

"해마다 장학금을 받고자 하는 어린이들은 늘어나는데 장학생 인원은 제한되어 있어 장학생을 선발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대부분이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인데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기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후원학생 수를 늘려주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지운영위원과 선생님들과의 간담회 장면

 

운영위원들이 서로 자기가 추천한 어린이를 장학생으로 선벌하기 위하여 논쟁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장학금 선정지침을 정해서 전달을 해주었지만 현지사정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무턱대고 수를 늘릴 수도 없었다. 한 번 선정을 하면 12년간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최초에 12명의 학생을 선발하여 지원을 하다가 매년 조금씩 늘려 현재 100명의 학생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요청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학생을 더 많이 지원하기 위해서는 물론 후원자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컴퓨터를 더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우리가 이 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도 더먹 인근에 있는 다른 여러 학교에서 장학생 후원 요청서와 컴퓨터 지원요청서를 작성해서 가져왔다. 제발 자기네 학교에도 컴퓨터를 단 한 대만이라고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마을 부녀회에서도 컴퓨터를 한 대 보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부녀회 사무실을 방문해달라고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버드러칼리학교 인근에 위치한 부녀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마을금고 비슷한 부녀회 금융조합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회원들을 관리하는데 꼭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을 다 부자로 보는 사람들 

 

그들의 요청 사항을 다 들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들은 한국인들이 다 부자인 걸로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비공덕회 운영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나는 우리 한국의 현실도 현지 운영위원들과 선생님들에게 자세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현지 운영위원 간담회

 

"여러분의 요청을 다 수용해 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불황으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후원자를 늘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또 한국에도 꼭 도움을 주어야 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여러분의 나라와 인연이 되어 이곳 네팔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앞으로 후원자가 늘어나는 대로 지원학생을 늘려갈 계획입니다. 또한 컴퓨터를 모금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배정된 컴퓨터를 고장이 나지 않도록 잘 관리를 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십시오

 

이번에 여러분을 만나러 오신 분들도 모두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마음을 내어 아끼고 절약을 해가면서 성금을 모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저 역시 1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고, 여기 케이피 시토울라 씨도 아직 노트북이 없습니다. 그런 점을 이해하시고 우선 오픈한 컴퓨터교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운용하시고, 후원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주십시오. 저희들도 가능한 한 후원자를 늘리는데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시토울라 씨가 통역을 한 내 말을 듣고 운영위원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을 했다. 사실이 그랬다. 컴퓨터 성금과 장학금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녹아 있다.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가져온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모은 동전, 동네 골목에서 김밥을 팔며 몇 년 동안 모았다는 동전꾸러미, 그리고 도시락을 배달하며 어렵게 모은 성금 등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진 소중한 성금이다.

 

어렵게 모은 성금과 힘들게 마음을 낸 사람들

 

또 이곳을 방문한 회원들도 현지 후원학생들을 만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큰 마음을 내어 먼 길을 온 것이다. 어떤 시인은 이곳에 오기 위하여 가장 아끼던 소장품을 팔아서 여행비를 충당했다고 하고, 마이너스대출을 받아서 온 사람도 있다.

 

네팔을 여행하는 데는 우선 항공료가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곳 오지까지 오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모두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은퇴를 한 나 역시 심장병 아내를 돌보며 시골 오지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처지인지라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컴퓨터다. 낡고 오래된 컴퓨터 이지만 문서를 작성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이 낡은 컴퓨터로 원고를 부지런히 쓰는 일이다.

 

나는 작지만 매월 일정금액을 컴퓨터 성금으로 자동이체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원고료가 많고 적음에 불문하고 원고를 써서 기고를 여기저기에 했다. 특히 오마이뉴스는 나에게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게재 된 원고를 세어보니 무려 200건이 넘었다. 오마이뉴스는 채택된 기사 한 건당 최저 2,000에서 최고 50,000원까지 원교료를 지급한다. 원고료보다도 내가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을 위해서 등불을 켜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네팔로 떠나기 직전 1년 동안 모은 성금을 계산해 보니 60만 원 정도가 되었다. 시골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족히 두 달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큰돈이다 

 

네팔은 이미 몇 차례 여행을 다녀 온 나라이다. 그래도 네팔은 자꾸만 가고 싶은 나라이다. 그런데다 스님께서는 중요한 소임을 맡고 있는 내가 꼭 가야만 행사를 제대로 순조롭게 진행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더욱이 이번에 네팔을 방문한 회원들이 대부분 여성이다. 시토울라씨 혼자 여러가지 일을 다 감당하기에는 버겁다.

 

"선생님이 안 가면 저도 못가요!"

"하하, 그러면 누가 가지?"

"나도 바뻐서 시간을 내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러니 함께 가야 해요."

 

하긴 그의 말이 맞다. 매사에 긍정적인 그도 혼자서 나이 드신 분들을 인솔하고 그 많은 짐을 가지고 가기는 힘들 것이다.  여행사를 하고 있지만 또한 그 역시 자비를 들여 가야 한다. 사진을 찍고 기록도 해야 하고....  

 

그래서 여행비용이 부담이 되어 처음에는 나 혼자만 다녀오기로 했다가 결국 아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아내는 네팔에 심은 '희망의 씨앗'인 아이들을 간절하게 만나고 싶어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여행을 떠난다는 희망 하나를 가슴에 품고, 매일 몸을 갈고 닦고 조이며 관리를 잘 해오고 있는 아내. 그런 아내를 두고 어찌 혼자 떠날 수 있겠는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그 무엇'-오롯한 기쁨과 밀려오는 행복

 

결국, 우리는 여행을 위해서 조금씩 부어오던 '희망적금'을 깨고 부족한 돈은 마이너스 대출로 충당을 하기로 했다. 비록 작은 돈이지만 매월 원고료의 일정금액을 나는 여행을 위한 적금으로 부어왔다. 사람은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희망 하나는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우리들은 이 적금을 '희망적금'이라 부르고 있다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마이너스 대출까지 받아서 어렵사리 떠나온 사정을 네팔 사람들이 어찌 일일이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한국인들은 모두 풍족하고 돈이 남아돌아가서 여행을 떠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어찌되었던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온 모든 회원들이 다 그렇게 말을 했다. 어디서 이렇게 때 묻지 않고 진솔한 환영을 받아 보겠는가! 회원들은 각자 자신들이 심은 '희망의 씨앗'을 직접 만나 격려를 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제로 지켜보며 많은 감동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네팔의 순박한 아이들을 만나면 어떤 알 수 없는 오롯한 기쁨과 그들로부터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언제 이 어린이들을 또 다시 만날지는 모른다. 그러나 저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를 다시 오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네팔에 심은 '희망의 씨앗'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나서 그들의 소원을 이룩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