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양배추에 면사포를 씌우다

찰라777 2015. 5. 24. 09:49

숨은그림찾기보다 더 어려운 배추애벌레

 

 

금년 봄에 처음 본 나비가 배추흰나비다. "아이고, 망했다!" 배추흰나비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큰일 났다. '봄에 흰나비를 보면 엄마가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왜 생겼을까? 그 해에는 배추벌레가 창궐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양배추와 방울양배추를 50여포기 정도 심었는데, 튼튼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튼튼하게 자라나고 있는 양배추 

 

▲배추와 똑 같은 보호색을 띠고 있어 숨은그림찾기보다 더 어려운 배추애벌레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대로 배추벌레들이 창궐하여 배추 속을 모두 갉아먹고 있다. 아이고, 이를 어쩌니! 아침마다 50~100마리 핀셋을 들고 정도 잡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며칠을 씨름했지만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배추애벌레가 뜯어먹어 벌집이 되어 버린 양배추 

 

양배추 한 포기에서 보통 5~10마리는 잡는다. 어떤 양배추는 한 포기에서 20마리를 잡은 경우도 있다. 그것도 배추 속 가장 깊은 곳 아주 여린 배추 속만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녀석들은 기가 막히게도 배추의 맛있는 곳을 아는 것이다.

 

▲하루에 3~4시간 쪼그리고 앉아 50~100마리씩 잡아보지만 역부족이다. 

 

배추흰나비는 한마리가 보통 300~4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아무리 잡아도 역부족이다. 처음에는 좁쌀 크기만 하여 돋보기로 들여다보아도 겨우 보일락 말락 한다. 색깔은 배추하고 어쩌면 그리도 똑 같을까? 눈에 잘 띄지 않게 자신을 은폐하는 보호색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생존법이다. 양배추에서 배추벌레를 잡기란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배추에 알을 낳는 배추 흰나비

 

▲ 한 해에 300~400개의 알을 낳는 배추흰나비 알(자료 위키백과)

 

애벌레는 배추색깔과 똑 같고, 산란 1주일에 알에서 깨이면, 갓 부화된 애벌레는 알껍데기를 먹어 치운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추를 갉아먹으면서 네 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5령(fifth instar)이 되기까지 2~3주 기간이 걸리며, 그 뒤에 번데기로 변한다.

 

다 자란 배추애벌레는 몸길이가 3cm 정도 된다. 성충이 된 녀석은 주로 배춧잎 뒷면에 숨어 실을 뽑아서 자신의 몸을 꽁꽁 묶은 뒤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된 후 7~10일이면 등이 새로로 갈라지며 접힌 날개돋이(우화, 羽化)를 하면서 마침내 배추흰나비로 탄생한다.

 

 

▲번데기로 변한 배추애벌레(참고 : 위키백과)

 

나는 며칠간 아침마다 돋보기와 핀셋을 들고 양배추 포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숨은그림찾기를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매일 3~4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그 짓을 하기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작업이다. 고개, 허리, 어깨, 다리가 골고루 아프다 

 

옛날 어머님이 어깨 허리 팔다리가 저리고 쑤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농촌에서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농약이나 농기계도 발달하지 못하여 모든 농사일을 거의 손으로 해내야 했다 

 

 

  ▲배추흰나비의 구조 (참고 : 위키백과)

 

요즈음 왼쪽 허리 밑이 너무 절절 아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았더니 허리 디스크가 신경을 살짝 눌러서 그렇단다. 그래서 허리 디스크에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아보았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 아프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들은 허리가 아파도 그냥 신경통이려니 하고 견뎌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양배추는 점점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그대로 두면 한포기도 성한 것에 없다. 그러니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배추는 제대로 성하게 결구 된 것이 없을 것 같다. 시장에 나오는 모양이 매끈한 채소는 거의 농약을 친 것으로 보면 된다. 어쨌든 한 포기라도 먹기 위해서는 무슨 방도를 취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겠지만 농약을 당초부터 아예 쓰지 않으니 그 방법을 쓸 수 없다 

 

▲양배추에 망사를 씌우고 나니 마치 면사포를 두른 것 같아^^  

 

심사숙고한 끝에 작년에 김장배추에 망사를 씌우듯 양배추에도 한랭사를 씌우기로 했다. 완전히 자연에 맡겨보겠다는 생각을 바꾼 것이다. 작년 가을에 김장배추에 망사를 씌워 배추애벌레 서식을 어느 정도 예방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배추흰나비들이 양배추에 알을 까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배추 속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핀셋으로 배추벌레를 잡아냈다. 그리고 양배추에 한랭사를 씌웠다. 한랭사를 씌우고 나니 마치 양배추에 면사포처럼 씌운 것처럼 눈이 부시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머지는 자연의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면사포를 두른 양배추

 

면사포 씌우기를 끝내고 배추밭을 바라보는데 한 쌍의 배추흰나비가 지그재그로 춤을 추며 망사 주위를 맴돈다. 아마 사랑을 나눌 장소를 찾는 모양이다. 녀석들은 면사포 주위를 한동안 맴돌다가 한랭사에 부딪쳐 안으로 진입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만다. 

 

 

배추흰나비는 사랑을 나눌 때 수컷이 항문 근처에 있는 돌기로 암컷의 더듬이에 사랑의 향수(성페로몬)을 묻혀주며 일종의 전희를 한다고 한다. 그렇게 1시간을 넘게 전희를 하다가 이윽고 후미진 곳에 사뿐히 내려 앉아 너부죽이 날개를 펴고 짝짓기를 한다(권오길 교수 생명의 비밀 참조). 

 

배추흰나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배추애벌레가 더 이상 생기지 않고 제발 몇 포기라도 무사하게 결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