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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제 겨우 일곱 살 소녀

찰라777 2015. 7. 3. 09:52

아내는 이제 겨우 일곱 살 소녀

 

 

7년 전 그 날!

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새 생명을 받은 그 날을

다시 태어난 생명으로 살아온 지

어느 듯 일곱 해

아내는 이제 겨우 일곱 살 소녀.

 

새 생명을 주신 분!

새 생명을 심어주시고 돌보아 의료진님들

김재중 교수님, 김인옥 선생님

 

늘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

다시 뛰는 심장으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

우리를 둘러싸고 세상의 모든 유정들과 무정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2015630일은 아내가 심장이식을 한지 만 7년이 되는 날이다.

아침 6,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했다. 메르스 탓인지 현관에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자동차의 비상등을 켜 놓고 채혈을 하러 가는 아내와 함께 현관문을 들어섰다. 채혈만 잠깐 하고 나오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는 현관문 앞에 잠시 주차를 허용해준다.

 

 

 

현관 로비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부터 푸른 방역복을 입은 병원 직원들이 마스크를 하고 체온기를 이마에 댄다. 아니 이마를 향해 쏜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초록 바지에 푸른 두루마기를 걸치고 흰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외계에서 온 사람들 같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거의 마스크를 쓰고 있다.

 

체온을 재는 방법도 급속도로 발전해 온 것 같다. 혀 밑, 겨드랑이에 넣고 재다가, 귀에 넣더니, 이젠 이마에 리모트컨트롤처럼 생긴 레이저 체온기로 쏘기에 이르렀다.

 

최근 열이 오른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최근 다른 병원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최근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나요?”

아니오.”

 

질문이 계속되고, 환자와 보호자의 인적사항을 적고, 손 소독을 한 후에야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채혈실에서도 똑 같은 방법으로 체크를 했다. 메르스 초기에 모든 병원에서 이렇게 대응을 했더라면 이토록 난리를 겪지는 않았을 텐데당국의 초동대응은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채혈을 한 후 나는 아내를 태우고 남양주 도농동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 4개월 만에 오는 지라 오늘은 하루 종일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 시간대별로 검사와 외래가 꽉 차 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큰 이슈는 아내의 심장이식 7년 검사다.

 

 

*오늘 병원스케줄

 

오전

6시 공복채혈,

930분 식후 채혈,

10시 심장초음파 검사,

1030분 핵의학과 골다공증 검사,

11시 재할의학과 허리협착증 외래

 

 

오후

1시 심장내과 외래

320분 내분비과 외래

4시 약국 약처방 수령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병원에 도착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평소 같으면 지하 주차장도 이 시간에 만원일 텐데, 지하 1층부터 여유가 있다. 이 또한 메르스 여파다. 지하 2층에 파킹을 하고 병원 로비에 올라서니 다시 체온 체크 등 메르스 검사를 한다. 가는 곳마다 똑 같은 검사를 한다. 아마 메르스 검사를 10번도 더 한 것 같다.

 

 

야생마, 얼찌, 행복한하루님을 만나다...

 

4층 심장초음파 검사실에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야생마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 계시지요?”

? 탐라국왕님 아니신감? 초음파실인데메르스 때문에 외래 연기했다고 하더니만

난 벌써 초음파 검사 했어요. 각하님 보고 싶어서 왔수당. 쿡쿡.”

누가 말려, 하여간 겁나게 반갑네! 시방 어디 게시유.”

지하 커피숍에 있어요. 얼찌님이랑.”

크크, 역시나 그렇구먼. 이따 점심 같이 해요. 4개월 전에 얼찌님께 점심 산다고 했으니.”

기다릴 게요.”

 

 

심장이식 환우들은 친 형제자매와 같다. 오전 검사와 외래를 마치고 1130분에 지하 커피숍으로 가니 야생마님과 얼찌님, 행복한 하루님, 처음 뵙는 중년 환우님(나중에 성 사장님으로 소개를 받았다)이 기다리고 계셨다.

 

반갑수다!”

정말 오랜만이요. 행복한 하루님은 더더욱

추어탕이나 먹으로 갈까요?”

그거 좋지요.”

 

여섯 명이 함께 나의 애마 로시난테(13년 된 산타페 고물차, 주행거리 201,500km)를 타고 올림픽공원 건너편에 있는 남원추어탕집으로 갔다. 나의 늙은 애마는 이래 뵈도 7인승이다. 차를 몰고 가는 데 나들이님이 전화가 와서 남원추어탕 집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지글지글 끓는 추어탕을 한 그릇 씩 시켜 후후 불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야생마님은 정말 야생마처럼 더욱 건강해 보인다. 얼찌님은 점점 소녀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자비심이 넘쳐흐르는 모습이다. 

 

 

 

한 숨 푹 주무시고 나면...

 

나는 결코,

행복한 하루님을 잊을 수 없다.

 

한 숨 푹 주무시고 나면 숨 쉬기가 한결 편해질 것입니다.”

 

7년 전 이식대기를 하고 있는 아내의 병실로 문안을 왔던 행복한 하루님의 이 말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녀가 다녀 간 후 아내는 곧 이식을 하게 되었고, 회복실에 입원 중인 우주복의 아내의 느낌은 움직일 수는 없지만 정말 숨쉬기가 그렇게도 편하더라는 것. 세월의 역사는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부산에 사시다가 대구로 이사를 해서 4년 동안 살다가 다시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는 행복한 하루님, 너무 반가웠어요!

 

잠시 후에 나들이님이 합류를 했다. 심장을 두 번이나 수술을 한 그답지 않게 건강미가 넘쳐흘렀다. 건강하게 직장생활 잘 하고 있는 그는 언제나 명랑하다. 야생마님, 얼찌님, 행복한하루님, 나들이님은 모두 이식 8~9년차의 고수들이다. 겉으로 말은 아니  하지만, 심장이식 한우들은 이식 년차대로 고참을 알아보며 깎듯이 대우한다.

 

성 사장님은 이식 10개월 차라고 하셨다. 아직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은 시기다. 이식 후 7, 30, 100, 6개월, 1, 3, 5, 10,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기간대별로 본인의 건강상태와 증세에 따라 관리를 할 일들이 많다.

 

아니 이식환자는 평생 <감염><거부반응>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매일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므로 면역기능이 약하다. 그러다보니 항상 세균감염에 주의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면역억제제를 너무 강하게 투여를 하면 남의 심장을 거부하는 반응이 일어난다. 그러니 이 둘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 나가야 한다.

 

우린 너무 행복하지요? 이렇게 다시 하늘을 보고 숨을 쉬며 걸을 수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그러니 심장만 잘 뛰면 다른 잔병들은 큰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행복한하루 님의 말씀이 백번 맞아요.”

 

그렇다!

오늘 하루를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매사에 감사하고 정성을 들여 살아야 한다.

 

 

7년차 시험 합격?

 

점심을 먹고 김재중 교수님의 외래를 예약 시간대별로 받았다. 얼찌님이 가장 먼저 받고 먼저 자리를 떴다. 아이들을 돌보아주어야 하므로 바쁘다는 것. 그 다음에 야생마님이 진료를 받은 후, 나는 아내와 함께 김재중 님 방으로 들어갔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어서 보세요. 에에~ 벌써 7년이 되었네요!”

,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심장초음파 정상이고요, 신장수치도 정상, 혈압도 좋고요

교수님 단백뇨는 어떤가요?”

단백뇨도 90으로 전보다 많이 내려 왔어요.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허리 협착증 때문에 주사를 여러 번 맞아서 당뇨수치가 많이 올라갔어요.”

그래도 이정도면 당뇨조절도 잘 되고 있는 편이네요허리 아픈 것은 주사보다는 운동으로 극복하세요. 걷는 운동이 가장 좋고요, 거의 모든 병이 걷는 것으로 많이 좋아집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걸으세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께서도 건강하세요!”

네에~ 다음 진료 때 봐요.”

 

언제나 한결 같은 김재중 교수님! 항상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해 주신다. 우리는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김인옥 코디님으로부터 처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약국으로 향했다.

 

가장큰 현대아산약국에서 약을 받으니 한 짐이나 된다. 거기에다가 4개월분의 인슐린 바늘, 혈당측정기를 구입하고 나니 정말로 짐이 한 짐이다. 아내는 하루에 혈당 체크를 4~6회를 하고 인슐린 주사를 4번을 맞는다. 검사비, 진료비, 약값, 인슐린, 의료기기 값을 합산하면 부담은 언제나 버겁다.

 

 

 

그래도먹을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멀리 탐라국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야생마님에 비하면 교통비도 적다.

부산이나 먼 지방에서 올라오신 환우님들은 하룻밤을 서울에서 묵어야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당일로 진료가 가능하니 그도 다행이다.

 

나는 비틀거리는 일곱 살 소녀를 나의 애마 로시난테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휴우~ 이제 다 끝났네요!”

일곱 살 소녀님, 오늘 시험 합격 축하드립니다요.”

고마워요! 이 모든 것이 당신 덕분이이에요.”

허허, 난 당신 덕분에 건강 조심하고 이렇게 건재하고 있다오.”

 

남양주 집에 들어오니 저녁 6시다.

아내는 이제 겨우 일곱 살!

아직도 돌봐줄 일이 까마득하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 

 

내일은 아침 일찍 연천 금가락지로 가야 한다.

해바라기의 미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