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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이 병을 치료한다

찰라777 2008. 11. 4. 08:25

 

 ♣올림픽공원의 단풍 길(2008.11.3)

 

 

“요즘 병이 잦아 늘 누워 있노라니 침상에는 먼지를 닦지 못하고 문 앞의 이끼를 쓸지 못하면서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한 손님이 찾아와서 단풍이 한창이라는 소식을 전해주기에 동자(童子)를 시켜 남쪽 창문을 열어보니,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나무들은 노란빛이 태반이었고, 붉은 빛도 빽빽하더군. 가만히 날짜를 헤아려보니 중양(重陽)을 지난 지가 이미 나흘째라 아우의 병이 이처럼 오래되었나 하고 느껴지더군, 억지로 일어나 정원을 거닐다보니, 가을기운이 차갑게 얼굴을 스치고 가을 감정이 은은히 마음속으로 움직여오더군.

들판의 소슬(蕭瑟)함과 초목의 요락(搖落)함과 풍색(風色)의 쟁영(崢嶸)함과 연광(烟光)의 담박함이 모두 사람의 비탄을 환가시키고 또 사람의 지기(志氣)를 발산시키었네. 서재로 돌아와 누웠으니, 슬픔도 기쁨도 아니면서 마음이 어수선하고 생각이 흔들리어 누웠어도 앉았어도 불안하기만 하고, 글을 읽어도 시를 읊어도 불안하기만 하였네. 말하지도 웃지도 않고 망연히 도취되어 있는 사이에 일신의 병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니, 작비암(昨非菴)의 ‘일편 가을 산이 능히 병객(病客)을 치료한다.’는 기록이 바로 이 경지인가 보네.

 

삼청(三淸.선경仙境을 이름)을 찾아 노닐자는 약속이 지금까지 지연된 것은 아우의 신병 때문이었네. 가을이 아직 늦지 않았고 병이 이제 나았으니,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단 하루라도 헛되이 보내는 것이 한 가지 애석한 일이고, 사람이 몸이 성하기를 늘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애석한 일이오. 내일 바로 찾아가겠으니 형이 능히 복건(巾과畐巾)과 망혜(芒鞋)차림으로 아우를 이끌고 가주겠는가?“ 라고 하였다.

-증약(曾若) 윤가기(尹可氣)의 하녀가 이덕무에게 전해준 편지에서-

 

 

*  *  *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가까운 산이나 공원이라도 가서 부지런히 아름다운 단풍이라도 보아야 겠습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장면을 얼마나 보고 살아가겠습니까?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아픈시간, 스트레스 받는 시간, 걱정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우리가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걱정을 하는 대신,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잠자는 대신, 아픔의 시간을 초월하여 촌음을 아껴서라도 가을이 아직 늦지 않았으니, 단 하루라도, 오늘만이라도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산이 나의 지친 심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이므로....

 

가을 아침을 눈뜨며.... 11월 4일  아침 찰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