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두Kakadu의 고대 애버리진 암각예술
애버리진의 암각예술은 5만년 전 신화시대부터 미미정령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카카두 노우랜지 록에 새겨진 애버리진의 암각예술. 5만년전 미미정령이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호주에서 울룰루, 카타추타와 다윈주변에 이르는 호주의 아웃백으로 떠나는 여행은 진정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자유여행지다. 매 마른 사막과 거친 황무지, 그리고 희귀한 동식물의 보고인 열대우림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저절로 먼 과거로의 원시인으로 돌아간 느낌이 된다.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 갔다가 고향을 찾아가는 원주민 소녀들의 이야기인 "토끼울타리(Rabbit fence)"와 애버리진들의 숨결이 담긴 성지는 이 땅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호주의 톱앤드Top End 지역인 이곳 카카두 국립공원 일대에서 만난 흰개미들은 정말 대단한 녀석들이다. 사람보다 더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질서를 보면 사람이 사는 사회보다 훨씬 규범적이다. 자신들을 나아준 여왕개미를 위하여 목숨 받쳐 충절을 다하는 일개미들의 효성 또한 어쩌면 인간보다 나은 점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쉴 새 없이 먹이를 물어와 여왕개미에게 바치고, 흙을 조금씩 물어다가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체액으로 반죽을 하여 쌓아올려 지은 개미집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는다.
▲옐로워터 늪지대에 번식하는 희귀한 새. 이곳은 야생악어는 물론 희귀동식물의 보고다.
엄청나게 넓은 카카두 국립공원의 늪지대는 희귀한 새들과 파충류들로 들끓고 있어 야생동물의 보고라는 말이 전혀 어색치가 않다. 옐로워터 늪지대 크루즈는 그야말로 열대우림지역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우리는 조바심을 내면서도 야생 악어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어들이 모두 낮잠을 자고 있는지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에 나오는 스릴만점의 불상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옐로워터 늪지대에서 빠져나와 애버리진들의 성지인 노우랜드 록(Nourlangie Rock)으로 갔다. 수 킬로미터의 정글 속을 걸어서 찾아간 바위에는 캥거루, 새, 개구리, 동물, 사람 모양 등이 바위에 이상한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천연 암각에 새겨진 갤러리는 최소 5만 년 전의 원주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지역에는 약 5천여군 데에 달하는 원주민 유적지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암각예술은 애버리진의 삶과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카카두 국립공원 애버리진 암각예술이 새겨진 노우랜드 록Nourlangie Rock
바위에 그림을 최초로 그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신화시대 조상으로 여겨지는 고대의 미미정령(Mimi spirits)라고 한다. 미미정령들은 그림 그리는 법을 원주민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고, 일부 정령들은 자신의 일생이 마감되면 그 바위 속으로 들어가 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영험한 바위들은 "드장(djang)" 혹은 "꿈꾸는 장소"라고 불려졌다. 신화시대에 새겨놓은 귀 왈라비, 벼락인간 나마르곤과 무지개 뱀을 그려놓은 것도 이채를 띤다.
그러나 이제 카카두에는 바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바위동굴을 집으로 삼아 살아갈 필요도 없어졌지만 그보다는 바위예술품을 그릴 수 있는 원주민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우랜드 록Nourlangie Rock 에 새겨진 애버리진들의 여러가지 암각예술
흰개미집과 원주민들의 고대예술.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방이의 눈에는 둘 다 영험을 가진 예술품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자연에서 돌아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은 인간이나 개미나 똑 같지않은가? 다만, 인간의 고대 예술품은 이 땅에서 사라져 가고 있지만 흰개미들의 건축예술은 예전 방식대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콘크리트와 각종 화학 건축자재를 이용하여 고층빌딩을 짓는 인간과 예나 지금이나 흙을 물어와 탑을 쌓는 개미들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개미의 생활과 인간의 생활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겠지만 적어도 공해 없는 흙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미들의 생활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글을 헤집고 다니다가 더위에 지친 우리는 짐짐 폭포 Jim Jim Falls에서 발을 담그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리치필드 국립공원에서는 부시워킹을 하다가 너무 더워서 모두들 계곡의 물속에 첨벙 첨벙 들어가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수영이 허용된 계곡이라고 했다. 오래전 애버리진 들도 숲속을 거닐다가 계곡의 물에 몸을 담그며 더위를 피했으리라. 인간의 본성에는 모두가 원시인의 습성이 내재되어 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갑자기 내 자신이 원주민이 된 느낌이 들어 픽 웃고 말았다.
왕기 폭포Wangi Falls의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는 데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우기동안에는 비가 하염없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러다가 건기에는 마른벼락이 쳐대는 바람에 숲이 불에 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자연발생적으로 난 화재에 탄 나무들이 숯덩이가 되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사진 : 리치필드 국립공원의 왕기폭포)
▲플로렌스 폭포Florence Falls
이 지역은 전형적인 열대우기지역으로 4월~9월 건기에는 덮고 건조하며, 11월~3월은 우기로 엄청난 비가 내려 도로가 폐쇄되기도 한다. 때문에 우기에는 여행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원주민들은 동굴 속으로 피했으리라. 그러나 여행자들은 모두 동굴 대신 버스에 올랐다.
이렇게 비가 6개월 내내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니 놀랍다. 홍수로 일어나는 조수의 범람 같은 자연현상은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보이지 않는 빗속을 뚫고 버스는 슬슬 기어갔다.
우리는 리치필드 공원의 정글속에 있는 통나무 집 몬순 카페Monsoon Cafe에서 정심을 먹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집 주방장의 모습이었다. 턱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별로 말이 없는 그는 눈길을 마주치면 그저 씨익 웃기만 했다.
(사진 : 몬순카페의 주방장과 함께)
천연그대로의 자연, 열대기후, 그곳에 번식하는 희귀 동식물들, 그리고 턱수염을 카카두의 정글처럼 길게 기르고 있는 몬순카페의 주인... 이 모든 것이 여행자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겨준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 소낙비가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마구 쏟아 붓는 비속을 가까스로 헤집고 슬슬 기어오다시피하며 다윈시내로 돌아왔다.
(호주 다윈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