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유감-칼 잠을 자는 참배객들
이제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머물려면 번호표를 타야 한다. 그도 사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1m의 좁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1000여명이 칼잠을 자며 밤을 지새야한다. 과연 그 칼잠 속에서 참배객들은 무엇을 갈구하며 또 무엇을 얻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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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이후 대대적인 불사로 거대한 전각이 들어선 봉정암. 9월초부터 10월 말까지는 하루 2~3000여명의 참배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산사는 오가는 등산객과 참배객들로 흡사 저자거리를 방불케 한다.
오랜만에 찾은 봉정암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한국전쟁이후 탑만 남아있던 봉정암에 다시 전각이 들어 선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그러다 1985년경부터 대대적인 불사가 시작되어 산중에 고래 등 같은 요사 등 여러 채의 전각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천하제일의 기도 도량으로 거듭 난다는 명분하에 헬기를 동원, 목재와 석재를 날라 중창을 한 봉정암에는 매일 1000여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9월초부터 10월 말까지는 하루 2~3000여명의 참배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조용했던 산정은 오가는 등산객과 참배객들로 흡사 저자거리를 방불케 한다.
이제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머물려면 번호표를 타야 한다. 그도 사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1m의 좁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바닥에 매직으로 그어놓은 그 좁은 공간에서 1000여명이 발을 뻗지도 못하고 칼잠을 자며 밤을 지새야한다. 과연 그 칼잠 속에서 참배객들은 무엇을 갈구하며 또 무엇을 얻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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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들은 기도보다는 자리를 찾는데 연연하느라 정신이 없다. 번호표가 없고, 자리의 구분이 없었던 때에는 화장실만 다녀오면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참배객들은 자리다툼이 밤새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고요히 선정에 들어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시대의 변화는 칼잠 속에서 도를 얻게 만들었을까? 하루에도 수천 명의 참배객들이 찾는 봉정암엔 이제 부처의 향기 대신 해우소에서 뿜어내는 인분과 소변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오래전 용대리에서 백담계곡을 걸어서 찾아왔던 봉정암은 한적했었다. 이렇다 할 전각도 없었고, 올라오기 힘든 만큼 참배객도 적었지만 번호표를 타고 칼잠을 잘 정도는 아니었다. 참배객들은 산사의 향기에 젖어 조용히 선정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요사를 아무리 많이 지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참배객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산사는 더 오염 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 당국은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해 케이블카 건설까지 운운하고 있다고 한다.
감히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곳에 불뇌사리를 봉안한 자장의 뜻이 이러했을까? 케이블카까지 건설되면 봉정암은 전국 제일의 기도처와 도를 닦는 암자가 아니라 사람을 맞이하는 관광지로 돌변하고 말 것이다.
그런 봉정암에는 더 이상 道는 없고 사람만 들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