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무씨와 배추씨를 심다
혜경이 엄마는 개울 건너편에 사는 이웃집이다. 혜경이 엄마는 어찌나 부지런 하시던지, 오토바이를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자시의 일은 물론 남의 일도 도와 주기도 한다. 더욱이 아내와 친해지면서 우리 집 일이라면 무조건 오케이 하고 팔을 걷어 부친다.
아침에 오며 가며 들깻잎, 호박잎, 톳나물, 고추, 양배추 등 자신이 손수 지은 농사 야채를 바라바리 싸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우리 집에 툭툭 던져 주고 간다. 다른 이웃집 어르신들도 오며가며 손수 지은 야채를 주고 가기는 하지만 혜경이 엄마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우리 집을 찾아와 싱싱한 야채를 주거나 조언을 해준다. 우리가 혜경이 엄마 같은 분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다.
▲완성된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무씨와 배추씨를 심었다.
"오메! 텃밭을 예쁘게도 만들어 노셨네요잉."
"어서 와요 혜경 엄마. 그렇잖아도 전화를 할 참이었는데. 여기다가 지금 무엇을 심어야 할 것인지 궁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우선 거름부터 쳐서 일구어야겠어요."
"아 참 그렇군요."
우리는 혜경이 엄마와 이장님이 주신 친환경 퇴비를 흙에 쏟아 부어 곡괭이와 호미로 섞어 넣기 시작했다. 흙이 대부분 마사 토여서 양분이 부족한 박토이기 때문이다. 퇴비를 무려 아홉 포대나 부어서 흙을 뒤집어 이리저리 잘 섞었다.
거름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왔다. '고소하게'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 퇴비가 숙성하는 냄새는 도심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리 향기롭지 못한 냄새다. 숨이 차고 온 몸에 땀이 흥건히 괴었다. 이제 씨를 뿌릴 차례다. 아내는 방으로 가더니 미리 사 놓은 야채 씨들을 들고 나왔다.
▲절구통에 핀 수련 향기가 번지는 작은 텃밭은 우리 부부가 꿈을 일구는 밭이다.
"지금은 무씨와 배추씨를 심을 시기이고만요. 부추는 화단으로 옮겨 심고. 텃밭에는 무씨와 배추씨를 심는 게 좋겠어요."
우리는 혜경이 엄마 말대로 무씨와 배추씨를 뿌리고 흙으로 덮어주었다. 앞쪽에는 배추씨를 담벼락 앞에는 무씨를 심었다. 텃밭에 씨를 뿌리고 나니 어느 듯 해가 계족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수평리는 해가 일직 진다.
"금년 김장은 친환경 야채로 담아 먹겠네."
"에고, 겨우 이걸 가지고 어떻게 김장을 하겠어요."
"우리 두 식구 먹을 거는 충분하지 않겠소? 하하."
▲옛 주인이 쓰던 평상을 창고에서 꺼내어 펼치고 커피를 마시니 커피맛이 기가 차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창고에서 옛 주인이 쓰던 평상을 꺼내어 잘 닦아서 대문 앞에 놓았다. 그리고 창고를 말끔하게 정돈을 했다. 옛 주인이 쓰시던 유품은 그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 오늘은 저 평상에 앉아서 폼 나게 커피를 한잔 할까?"
"그거 조오치요!"
아침 식사를 절에서 준 떡과 야채로 간단히 하고 커피를 타서들고 평상에 앉아 텃밭을 바라보았다. 텃밭 앞에는 밤새 오므렸던 수련이 다시 벌어지며 곱게 피어났다. 거기에 물옥잠화와 채송화도 다투어 피어났다. 텃밭과 꽃들을 바라보며 평상에 앉아 마시는 커피 맛이 그만이다. 부자가 부럽지 않고,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아침이다.
▲텃밭에 싹이 나기를 기대하며. 텃밭에 풍기는 물옥잠화의 향기도 새롭다.
"곧 싹이 나겠지요?"
"아마 내일 모래쯤이면 싹이 올라 올 거예요."
"허허, 그렇게나 빨리?"
평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어제 다녀간 오징어 친구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너무 행복한 하루였어요. 가을에 가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덕분에 눈요기 잘했구, 입도 즐거웠어요. 친환경 비빔밥 기대합니다.'
어제 아침 자신들이 땀흘려 만들어 놓은 텃밭에서 자라난 무공해 채소로 가을에 비빔밥을 기대한다는 오징어 친구들이다. 나는 오징어 친구들에게 이렇게 답신을 했다.
'기대하시게나. 가을엔 자네들이 일군 밭에서 나온 수확으로 맛있는 비빔밥을 먹으며 지리산 단풍을 구경을...'
▲우리집 텃밭 뒤로 펼쳐진 계족산의 아침운해
언제나 생각해도 향수에 젖어드는 향기로운 친구들이다. 정말 오래도록 징하게 어룰리고 싶은 그런 친구들. 커피향속에 농촌의 냄새가 믹서가 되어 이상야릇한 향기로 변해 온 몸에 파고들었다. 그 향기 속에 우리들이 뿌린 야채 씨들도 기분이 좋을 거다. 계족산에 운해가 춤을 추며 지나갔다.
(20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