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란 줄기에 능청맞게 숨어있는 청개구리(2011.5.2)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5월이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하지 않는가? 2일 날 아침, 서울을 출발하여 구례까지 오는 동안 내내 푸른 신록이 눈을 즐겁게 했다. 꼭 참석하여야 할 결혼식, 모임, 아내의 병원 등이 징검다리로 끼어 있다 보니 지난 4월 22일 날 서울에 올라와 10일 만에 다시 구례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텃밭을 둘러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있다. 일곱 그루의 블루베리는 꽃이 만개해 있고, 보리 꽃이 진 자리에 보리 이삭이 벌써 매달려 있다. 양파는 러시아 게처럼 크게 자라나 있고, 열무는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부성하게 자라난 보리이삭과 푸른 담쟁이 덩쿨
앙상하기만 하던 담쟁이 넝쿨이 파랗게 입이 돋아나 담장을 덮고 있고, 지난 3월 옮겨 심은 수국도 꽃이 파랗게 맺혀있다. 강낭콩이 줄줄이 하얀 꽃을 피워 텃밭의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우리들의 희망인 작은 텃밭에는 바야흐로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어 봄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자연의 변화속도는 이렇게나 빠른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말자 아내와 나는 무척 분주해 졌다. 그 동안 비가 내려 텃밭에 있는 식물들은 잘 자라 있지만 베란다와 거실에 있는 화분들은 물이 필요로 했다. 거실에는 그동안 피어있던 제라늄과 군자란 꽃잎이 떨어져 바닥에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부터 물을 주다가 나는 문주란 줄기 가운데 귀엽게 도사리고 있는 청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문주란 색깔과 거의 같아 잘 알아보지 못했는데 물을 주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녀석은 벌어진 줄기 사이에 능청맞게 고개를 쳐들고 앉아 있었다.
▲청개구리가 변장을 하고 숨어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능청스럽게 앉아있는 녀석의 변장술은 참으로 놀랍다. 지난 4월 시멘트 바닥에서 발견하였을 때에는 몸 색깔이 회색빛을 띠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초록색이다. 녀석은 푸른 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는 녹색이고,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면 잠시 후 회갈색으로 변한다.
올 봄에 우리 집에서 청개구리를 처음 발견한 때는 4월 16일이다. 시멘트 바닥에 있는 녀석은 회색 빛깔에 까만 점박이를 하고 있어 언뜻 시멘트와 식별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청개구리는 보통 늦가을부터 50cm 정도 땅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다가 3월부터 경칩을 전후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시멘트 바닥과 식별하기 어려운 청개구리의 놀라운 변장술
우리 집은 개울가 옆에 있어서인지 유독 청개구리가 많다. 청개구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청정하다는 증거이다. 장마 때에는 녀석들이 밤이면 떼거지로 유리창을 기어오른다. 그러다가 가끔 한두 마리가 꼭 실내로 기어들어와 아침에 일어나 보면 말라 죽어 있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는지 아무리 문틈을 막아 놓아도 소용없다.
녀석들의 속성은 낮에는 돌 틈이나 나무줄기에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을 하며 벌레를 잡아 먹는다. 그리고 흐린 날씨나, 비가 내리면 풀잎, 나뭇잎 등에 올라앉아 큰 소리로 운다. 우는 녀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턱밑에 소리주머니가 붙어있다. 녀석들은 비가 오려고 하면 소리주머니에 공기를 넣어 큰 소리로 요란하게 운다. 때문에 울고 있는 청개구리는 수컷이고 울지 않는 녀석은 암컷이다.
청개구리는 물을 다 줄 때까지 여전히 문주란 줄기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녀석은 마치 나무의 일부인양 청승맞게 변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끔벅거리는 녀석의 능글맞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비실비실 웃음까지 나온다.
▲거실 화분 밑에 숨어있는 청개구리
꼼짝하지 않는 녀석을 두고 거실로 들어와 화분에 물을 주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딱 뛰어 오르더니 화분 가장자리로 구멍사이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녀석은 꼼짝도 아니하고 몸을 도사리고 있다.
"저런! 녀석을 그냥 그대로 두면 안 되는 데, 녀석을 어떻게 구해내지?"
"이번에 꼭 구출해 내야 해요?"
아마 그대로 두면 내일 아침에 청소를 할 때 십중팔구 말라서 죽어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머리를 싸매고 청개구리 구출작전(?)을 시작했다. 집게로 집어내다간 녀석의 부드러운 피부가 상처가 나고 말 것이다. 파리채로 잡다간 그대로 타박 사를 할 것이고, 걸레로 덮치다간 압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 끝에 나는 부드러운 넓은 티슈를 그물처럼 펴서 청개구리를 생포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청개구리의 속성이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엄마의 말을 반대로만 듣는 녀석들은 참으로 그 튀는 방향도 가늠하기 어렵다. 녀석은 가만히 도사리고 있다가 내가 티슈로 덮치려고 하면 금새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튀어서 도망을 쳤다.
▲어느방향으로 튈줄 모르는 청개구리를 가까스로 티슈로 생포하여 방생을 했다.
아마 녀석은 눈을 360도로 돌리는 모양이다. 아무리 살금살금 기어가 녀석을 잡으려고 해도 그 때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녀석을 잡으려다가 화분이 엎질러지는 등 거실은 아수라 장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녀석은 이제 소파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도 않는다. 무거운 소파를 들어내도 청개구리는 간곳이 없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거의 포기상태에서 잠시 한숨으로 고르고 넘어진 화분을 정리하는데, 녀석이 화분 받침대 밑에 도사리고 앉아있지 않은가? 이번만은 실패를 하지 말아야 지. 받침대 주위를 잽싸게 티슈로 감싸 앉으니 순간 청개구리가 튀어 오르다가 티슈에 딱 걸렸다. 손에 물컹하고 청개구리 피부가 느껴졌다.
"여보, 성공이야!"
"정말요?"
"응, 여길 좀 봐요."
"어머, 조심해요. 빨리 밖으로 풀어줘요."
"오케이!"
▲싱싱하게 자라난 열무 밭에 청개구리를 방생을 하자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사라져갔다.
나는 놀래 자빠진 녀석을 감싸 앉고 밖으로 나갔다. 텃밭 열무 속에 내려놓자 바로 도망을 칠 줄 알았는데 녀석은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 기절을 한 것일까?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다. 한 1분 정도 앉아있던 녀석은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폴딱 뛰어놀라 담쟁이 넝쿨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 죽은 줄 알았다가 한 숨을 돌리고 나서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청개구리는 사람에게 유익한 양서류 중의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거실에 있는 청개구리를 밖으로 살려서 내보내고 나서야 아내와 나는 휴~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오늘 청개구리 방생을 제대로 했군요. 수고하셨어요."
"청개구리야, 잘 가라. 그리도 다음에는 제발 실내로 들어오지 말아다오."
(2011.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