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돌아보는 곳이 텃밭이다. 이는 시골에서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다. 어디 도시의 아파트에 살며 꿈엔들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바로 텃밭으로 연결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생활이이다.
창문을 열고 나가면 새들이 나무나 담벼락에서 지줄대고, 집 앞 실개천에서는 시냇물이 절절 휘돌아치며 흘러내린다. 얼룩백이 황소의 울음소리는 없지만 정지용의 <향수>처럼 꿈엔들 잊힐 수 없는 곳이다.
블루베리 꽃에는 나비와 벌들이 웅웅거리며 날아와 꿀을 빨아댄다. 한 웅큼의 보리지만 오월의 햇빛을 받아 실답게 이삭이 영글어 가고 있다. 양파의 잎은 마치 러시아 게처럼 팔을 벌리며 쭉쭉 뻗어나가고, 텃밭 가장자리에는 심은 강낭콩이 흰 꽃을 곱게 피워주며 열매를 맺어주고 있다.
강낭콩이 이렇게 싱싱하게 자라줄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녀석들은 줄기를 하늘로 뻗히더니 감고 올라갈 대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라, 내가 널 휘감고 안아주마." 강낭콩은 마치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러더니 녀석들과 상당히 떨어진 블루베리나무를 휘휘 감고 올라가질 않겠는가. 깜짝 놀란 아내가 블루베리 나무를 좀 더 멀리 띄어 놓았다.
"애들은 염치도 없군요. 틈만 나면 휘감아 오르려고 하니 말이에요."
"흐음, 식물들도 의지할 사랑의 대상을 찾는가 보오."
나는 강낭콩 사이에 대나무로 지주대를 세우고, 거기에다가 철사 줄을 묶어 녀석들이 의지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었다. 그렇게 해 놓으니 녀석들이 똑바로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렇게 열매가 줄줄이 열릴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줄기마다 주저리 주저리 열리는 지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열린다. 조금 있으면 열매가 무거워서 다른 조치를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위로부터 강남콩, 도라지, 가지, 토마토
며칠 전에 모종을 한 가지에도 보랏빛 꽃이 피기 시작하고, 토마토에도 노란 황금빛 꽃이 피기 시작한다. 세 그루의 고추도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담장 밑에 심은 호박도 싹이 돋아나 힘차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3일전에 산에서 옮겨 심은 도라지는 어쩐지 힘을 받지못하고 시들시들하다. 물을 많이 주어도 썩어버린다고 하는데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또 한 가지 내가 관심을 쏟는 식물이 있다. 그것은 시멘트 계단에서 솟아나고 있는 나팔꽃이다. 녀석은 시멘트가 벌어진 틈에서 싹을 돋아나기 시작했다. 다른 잡초들도 시멘트 틈새만 있으면 정신없이 자라나곤 했는데 잡초들은 다 뽑아버리고 나팔꽃만 남겨 두었다. 이제 제법 줄기도 길어졌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돌거북이 있는 위로 올라 갈 수 있도록 대나무 가지로 지주대를 세워 주었다. 녀석의 보랏빛 꽃이 피워주기를 기대하며……
"정말 텃밭을 늘리기를 잘했어요."
"이젠 발 딛을 틈이 없으니 더 이상 심을 생각을 말아요."
"그래도 저기 틈이 있잖아요. 조금있으면 보리타작을 해야 겠어요."
"하하하, 보리타작이라? 정말 그래야 겠군..."
텃밭을 까구는 즐거움을 그 무엇에다 비기랴! 비록 흙을 리어카로 실어나르느라 땀 좀 뺐지만 텃밭에 심어진 채소와 꽃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싱그럽게 자라나 주는 녀석들이 그저 고맙기만하다.
녀석들은 매일 아침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며 나를 즐겁게 한다. 보리피리, 양파 폰, 수국의 드럼, 블루베리의 현... 아침만 되면 텃밭의 야채와 꽃나무들은 일제히 자연의 교향악을 들려준자. 아, 텃밭이 들려주는 이 오케스트라를 그 어디에 비기랴!
(2011.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