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을 거닐다!
노고단 야생화들이 들려주는 산상수훈....
노고단 야생화 산책은 노고단 삼거리에서부터 노고단에 오르는 천상의 계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천상의 화원으로 오른 계단! 이곳은 아무나 오를 수있는 곳이 아니다. 심신을 깨끗히 하고 꽃과 곤충, 그리고 자연을 존경하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불결한 사람은 노고(老姑) 할미가 결코 방을 허락치 않을 것이다.
▲노고단 천상의 화원으로 가는 계단
▲지리터리풀꽃과 일월비비추. 멀리 섬진강 드리운 운해가 비경을 이루고 있다. ▲꼬리풀에 살며시 앉아 꿀을 빨아 드리고 있는 은점표범나비 ▲하늘을 향해 미소짓고 있는 일월비비추 ▲섬진강변에 운해가 낮게 깔린 지리산 노고단은 갖가지 야생화로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난 7월 하순 월요일, 지리산 노고단은 운무에 휩싸여 있다. 그 운무 속에서 장대비를 견뎌낸 야생화들이 선명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꽃들인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때가오면 피워주는 야생화는 천상에 핀 꽃들이다. ▲야생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모녀 눈과 마음으로 그냥 그 아름다운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가도 되련만 요즈음 중생은 꼭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것은 필카보다 디카가 크게 보급되면서부터 더욱 심해졌다. 너도 나도 모두가 사진작가들이다. 거기에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사진기 없는 산행을 하려고 하는데 아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늘말나리꽃의 매혹적인 자태. 하늘을 보고 주홍색의 6장 꽃잎 안쪽에는 짙은 자주색 반점이 있다.
CF메모리칩을 가져오지 못한 나는 작은 소형카메라로 천상에 핀 꽃들을 정신없이 담고 있는데, "그 작은 카메라로 꽃을 담다니 양에 찰까요?" 누군가 등 뒤에서 말을 걸어오기에 뒤돌아보니 중후한 중연의 맛을 풍기는 남자 등산객 두 분이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술에 취한듯 바라멩 하늘거리는 술패랭이꽃. 금주령을 내린 노고단에 홀로 술에 취해 흔들거리나?
"네, 준비 없이 급하게 오르다 보니 CF메모리칩을 빠뜨리고 왔지 뭡니까?" "그럼 제가 메모리칩 하나를 빌려드리지요." "네? 정말요?"
그는 배낭에서 8기가짜리 메모리칩을 꺼내어 내밀었다. 세상에! 처음 본 사람에게 메모리칩을 거침없이 빌려 주다니… 이른 아침에 천상에서 내려오신 분들인가? 나는 그분들과 함께 천상의 화원을 거닐었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두 분은 목사님들이었다.
▲얼어 죽은 동자를 묻은 곳에서 피어나 동자꽃이 되었다는 동자꽃. 주홍빛 둥근 모습이 동그랗고 발그레한 동자승의 모습을 닮았다. 한분은 광주시에 살고 계시고, 다른 한분은 고창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목사님들은 일요일 목회를 마치고 그날 밤 노고단으로 와서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노고단에 올랐다고 했다. 두 분은 목회가 끝나면 자주 등산을 다니신다고 했다. 두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천상의 화원을 거닐다 보니 나는 마치 산상수훈을 듣는 느낌이 들었다. ▲꽃들은 말없이 피워 청량한 산상수훈을 들려주고 있다. 노고단에 핀 원추리의 군무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 5-3)"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성경 구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불경에서 "마음을 비운 자"와 같은 말.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원리와 같은 말이다. 비어 있어야 마음을 채울 수 있고, 그릇이 비워 있어야 밥이나 물도 담을 수 있다. ▲지리털이풀꽃과 원추리. 뒤로는 KBS중계소가 보인다. 예수님의 가장 긴 설교는 갈릴리의 한 산상에서 행한 '복 있는 자'라는 설교라고 한다. 두 분 목사님들을 만난 나는 과연 "복 있는 자"일까? 그렇다! 가난한 마음으로 지리산에 귀촌을 했으니 나는 복 있는 자이다. 비운 마음으로 노고단에 올라오니 이렇게 천국에서 내려온 두 분 목사님을 만나 복을 받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야생화가 물결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 7월에는 특히 지리터리풀꽃이 많이 핀다.
천상의 화원에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산딸나무, 둥근이질풀, 산오이풀, 동자꽃, 모싯대, 원추리, 짗신나물, 기린초, 은꿩의다리, 물매화, 송이풀, 큰까치수명, 참취, 물봉선, 물레나물, 꼬리풀, 동양지꽃, 뱀무, 꿀풀, 일월비비추, 하늘말나리, 범꼬리, 송이풀, 흰여로, 사상자, 조희풀, 나비나물, 정령엉컹퀴꽃, 어수리, 바위채송화, 기린초…… 아침 일찍 피어난 야생화들은 모두가 생기를 띄고 있다. 마치 노고단 운해 속에 둥둥 떠 있는 듯 피어있는 야생화는 말 그대로 천상에 핀 꽃들이다. 운해는 야생화를 태우고 둥둥 떠내려가 저 멀리 섬진강으로 휘몰아쳐 간다. ▲꽃들은 사계절 인고의 세월를 견디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며 피어나 만물을 즐겁게 해준다. 과연 인간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을 얼마나 하고 있을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태 6:3)-
나는 다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회상한다. 꽃들은 그렇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피어나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사람이 저 꽃들의 백만분의 1이라도 따라 한다면 세상은 천국으로 변할 것이다. 꽃들은 추우나, 더우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보라가 치나…… 그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견디며 꽃을 피워 만물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 꽃들에 나비와 벌들이 날아와 꿀을 빨아들이고 대신 꽃가루를 묻혀 꽃들의 종족을 번식시켜 준다. ▲은점표범나비와 꼬리풀
내가 이 꽃들을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과연 꽃들을 위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이 블로그에 올린 꽃들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꽃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만인이 알 수 있게 하는 못된 사람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 꽃들을 보고 천상의 화원을 거닐지 못하는 <대리만족>을 다소나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천에 피어있는 술패랭이꽃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카메라를 놓고 빈손으로 산을 오르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꽃을 보면 카메라에 담고 싶고, 카메라에 담으면 이 꽃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아직 멀었다. 아마 금생을 지나 다음 생에도 카메라를 들고 꽃들을 찾아 다닐지 모른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할 때 자연도 우리를 보호해 준다. 바위 위에 핀 노고단 원추리 카메라를 들고 가면 아무래도 자연을 훼손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탐방로 범위내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꽃과 나비, 벌들을 귀찮케 아니할 수가 없다. 최소한 절대로 탐방로가 아닌 땅은 밟지말아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이 탐방로를 벗어나면 기를 쓰고 말리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야생화를 찍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연을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꼬리풀에 앉아 꿀을 빨아먹는 은점표범나비 목사님들과 노고단 정상을 돌아 내려온 우리는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햇반 1개에 컵라면을 끓이고, 목사님들은 떡국을 끓였다. 물이 펄펄 끓자 나는 라면을 넣었고, 목사님들은 인스턴트 떡국을 넣어 끓였다. 멋진 아침 식사가 준비 되었다.
"우리 식사는 저 밖에 있는 식탁에서 먹지요?" "그거 좋겠네요."
▲큰까치수염에 앉아 꿀을 빨아 먹는 은점표범나비 우리는 대피소 취사장 밖에 마련된 식탁에 각자 끓인 음식을 늘어놓고 아침기도를 올렸다. 기도는 물론 목사님이 해 주셨다. 목사님의 아침기도는 그냥 묵상의 기도였다. 무슨 소리가 필요하겠는가? 노고단 천상의 화원을 거닐며 수많은 야생화들로부터 산상수훈을 듣고, 시원한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천상화원을 거닐고, 천상의 가든에서 조찬을 들다니, 이거 기분 최고군요!"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네요."
▲ 꼬리풀에 앉아 있는 거꾸로여덟팔나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펄펄 끓은 물에 커피를 끓여 마시며 커피 향에 젖는다. 진한 커피 향에 젖어 운해가 낀 노고단을 바라보는 감동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노고단 천상의 화원을 산책을 하고 성삼재로 내려왔다. 성삼재에 내려오니 11시다.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나는 목사님의 차를 얻어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은꿩의다리 우리는 천은사 감로천에서 목을 축이고 냇물에 세수를 했다. 시원한 개울물이 정신을 들게 한다. 천은사의 원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법당에서 약 50보 거리에 샘물이 있었는데, 그 물이 맑고 달아 마시면 흐리던 정신도 맑아지고, 오래 마시면 지병도 완치되던 약수였다고 한다.
"목사님 이 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합니다." "정말 맑고 시원하군요." "오늘 점심은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어디 맛있는 곳이 있는가요?" "섬진강 다슬기 탕을 잘 하는 곳이 있는데 어떠신지요?" "그거 좋은데요. 간에도 좋다고 하던데 마침 잘 되었군요." ▲곰취
천은사를 나선 우리는 섬진강다슬기 식당으로 갔다. 토지면에 있는 다슬기식당에서 우리는 다슬기 무침과 다슬기 수제비를 맛나게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다슬기 수제비는 처음 먹어봅니다. 오늘 좋은 식당을 안내했으니 점심은 제가 사지요." "아니………"
▲둥근이질풀꽃 목사님은 미리 나가 점심값을 지불했다. 오늘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노고단 천사의 화원에서 두 목사님으로부터 산상수훈을 들으며 야생화 화원을 거닐고,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까지 얻어먹다니… 나는 두 분 목사님을 누추한 우리 집으로 모셨다.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목사님들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수평리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시며 등산이야기, 여행이야기, 사진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취미가 같고 성향이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누구나 이렇게 십년지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목회를 주관하시는 목사님들일지라도 인생의 삶은 비슷하다. ▲물레나물
"다음에 함께 산행을 한 번 하시지요?" "지리산에 오시거든 언제나 연락을 주십시오. 오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지리산하고도 노고단 야생화 단지에서 만난 목사님들과의 인연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 아름다운 노고단 야생화단지는 길이 보존해야 한다. 휴식년제를 길게 하더라도, 설령 인간이 들어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되더라도, 천상의 화원 노고단은 꽃과 나비, 벌들과 곤충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고이 보존해야 한다! ◆노고단 야생화 천국에서 만난 꽃과 나비와 벌들 원추리와 고추잠자리 층층나무열매 물머금은 싸리꽃 노각나무꽃 붉은 입술을 내밀고 있는 물봉선 둥근이질풀 사상자 귀여운 동자꽃술 용담? 은꿩의다리 지리터리풀꽃 기린초에 낮은 은점표범나비 싸리풀에 앉은 은점표범나비
노고단 정상에 핀 원추리꽃 일월비비추 원추리 원추리 둥근이질풀 거꾸로여덟팔나비와 꼬리풀 노고단 운해와 아빠와 아들과 딸 일월비비추와 노고단 운해 파란 하늘과 원추리 파란 하늘과 일월비비추 지리터리풀과 일월비비추의 아름다운 조화 큰까치수염의 요염한 제스처 그룸바다 노고단 운해 기린초 기린초와 벌 기린초와 나방 큰까치수염, 지리털리풀꽃, 동자꽃 삼총사 (2011. 7. 18~25 지리산 노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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