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현 청림동)에서 가장 높은 봉천동 1번지에서 바라본 풍경
▲관악산이 내려다 보이는 것처럼 한눈에 보인다.
두 번째는 전망이 아주 좋다는 것. 봉천고개에 있는 아파트에서 바라보면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등이 한 눈에 보인다. 옛 지명인 봉천동 1번지 봉천고개에 위치한 아파트는 지역적으로 봉천동에서 가장 높은데다가 그 위에 아파트를 지어 놓았으니 관악산을 내려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전망이 좋다. 아침에 일출을 매일 볼 수가 있고,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오는 남향이어서 따뜻하다.
세 번째는 산책길이 아주 그만이다. 봉천 고개에는 수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가 재개발로 밀집되어 있는데, 아파트 뒷길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국립현충원(국군묘지)로 이어진다. 잣나무 숲과 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현충원은 사색을 하며 산책길로는 그만이다.
아파트공화국으로 변해가는 달동네
▲재개발로 아파트가 거대한 성처럼 둘러싸인 봉천동은 아파트공화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1960년대의 봉천동 풍경(자료사진 : 조선일보)
관악구 청림동은 옛 지명이 원래 봉천3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름이 바뀌었다. 봉천1동에서 11동까지, 그리고 신림 1동에서 12동까지 있었던 지명은 달동네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하여 각자 다들 다른 이름으로 개명을 하였다. 봉천동은 은천동, 행운동, 보라매동, 중앙동, 청룡동, 청림동 등으로, 신림동은 서원동, 신사동, 삼성동, 대학동, 난향동 등으로 마치 창씨개명을 하듯이 멋진 이름들로 바뀌어졌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일출. 하늘을 받드는 봉천동은 교회가 유난히 많다.
택시 운전사에게 청림동을 가자고 하면 “네? 청림동이요? 그게 어디 있지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잘 모른다. “아, 옛날 지명이 봉천동으로 봉천고개 근처입니다.” “아아, 거기요. 봉천동이라고 해야 알지요.” 그러나 아무리 이름을 바꾸어도 봉천동은 여전히 봉천동이고 찾기도 쉽다. 또한 <하늘을 떠받드는 동네> 봉천동이란 이름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봉천동이 달동네란 말은 이제 옛날 일이다. 달동네 풍경은 개발 붐을 타고 점점 사라져 가고 대신 아파트 숲이 거대한 성처럼 들어서고 있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면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봉천동은 마치 <아파트 공화국>처럼 보인다.
새롭게 떠오르는 추억의 명소, 청림동
봉천동 중에서도 그나마 옛날 달동네의 풍경을 느껴 볼 수 있는 곳은 청림동이다. 청림동은 상도동과 경계를 이르는 지점에 있다. 상도 터널을 지나 숭실대학 고개를 넘으면 바로 청림동으로 이어진다. 청림동은 아직 개발이 덜 된 주택들이 상당히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주택단지는 마치 아파트라는 빌딩숲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지역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어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동네를 걸어 다니다 보면 그 옛날 달동네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더욱이 작은 벽들에 그려진 북(Book)벽은 매우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동화 <미운 오리새끼>, <빨강머리 앤>, <마지막 잎새>, <선녀와 나무꾼>, <메밀 꽃 필 무렵>, <피노키오> 등 유명한 세계 명작동화와 우리 전래 동화를 그림을 골목 듬성듬성 이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청림동에 새로운 명소로 등장한 북(book)벽.
관악구청에서 <행복 나눔 좋은 마을 만들기>사업의 일환으로 14개소에 그려져 있는 명작 동화는 삭막한 동네에 신선한 청량제 같은 느낌을 준다. 청림동은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금년에 10개소 정도를 더 선정해서 북벽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청림동에서는 청림동만의 특색 있는 이미지를 살려 지역 명소로 만들기 위해 <북 벽화 탐방 코스>를 독서지도사와 함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해설을 해주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청림동은 금년에 10곳의 북벽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청림동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점치는 집이다. 곳곳에 대나무 깃발을 달고 '000산 도사' '000보살'등 점쟁이 집을 골목에서 쉽게 발견 할 수가 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일수록 점치는 집이 많다. 그러나 이 점치는 집도 개발이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져 갈 것이다. 아직은 개발과 미개발이 맞물려 있는 청림동을 산책을 하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달동네를 세계적인 추억의 명소로…
개발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런 달동네를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한 동네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는 체코의 국민적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창작무대가 되었다. 황금소로는 원래 프라하 성에서 일을 하는 집시들이나 하인들이 살았던 달동네였다.
그러다가 차츰 연금술사들이 이주해 건물을 개축하여 사용하면서 지금의 거리로 변모하였다. 작은 가게, 계단에 늘어선 노점상, 예쁘게 칠한 페인트 벽, 고풍스런 가로등… 황금소로를 걷다보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어느 마을을 걷는 기분이 든다.
칠레 발파라이소(아래 사진)는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탄생시킨 곳이다. 항구를 바라보며 언덕에 빼꼭히 들어선 달동네는 100년이 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프라하 황금소로 프란츠 카프카 집에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진작 달동네를 싹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파라이소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추억이 명소를 보기위해 수많은 관광객드링 이곳을 찾는다. 중국 윈난성의 리장고성, 이태리의 아씨씨 성지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론 그런 관광지와 봉천동은 여러 측면에서 볼거리나 역사적인 배경이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한 도시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돋음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고려 할 사항이 얼마나 오래되었느냐는 것이다. 온 도시가 허물어진 성터나 건물로 되어 있는 곳이 로마가 아니던가? 사람들은 파리의 라데팡스나, 로마의 신시가지를 찾지 않는다. 허물어졌지만 오래된 추억의 명소를 찾아간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진정으로 서울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사동이나 명동보다는 오래된 한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북촌을 찾는다. 북촌은 서울에서 조선시대 오래된 한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속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때문에 뜻이 있는 관광객들은 서울의 과거와 한옥체험을 하기 위해 북촌을 찾는다.
프라하의 황금소로가 프란츠 카프카를 탄생시킨 명소라면 이곳 봉천동은 봉천동 작가인 조경란을 탄생시킨 명소이다. 카프카는 누이의 집에서 골목길을 바라보며 <변신>, <성> 등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봉천동의 작가 조경란은 작은 옥탑방에서 신춘문예 당선작 '불란서 안경원'과 '나는 봉천동 산다'를 비롯해서 9편의 자전소설을 썼다고 한다. 지금도 봉천동에 살고 있는 그녀는 독자들과 함께 '봉천동 문학투어'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봉천동에서 태풍 사라를 경험하고, 가난과 서민의 애환을 경험하며 살아왔던 내용을 소설로 썼다.
사람들은 봉천동 하면 우선 판자촌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 봉천동엔 판자촌은 없다. 판자촌 대신 아파트와 주택, 그리고 커다란 교회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꼭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개발이라는 쓰나미 속에 마음의 고향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무작정 난개발을 하기보다는 옛날의 서정을 되새김 할 수 있도록 어느 한 지역이라도 선정하여 정책적인 지원으로 <추억의 명소>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이 않겠는가? 골목에 카페를 만들고, 추억의 현장을 되살려 놓는다면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며 새롭게 마음을 재충전하는 그보다 더 좋은 마음의 고향도 드물 것이다.
개발 속에 점점 사라져 가는 추억의 현장 봉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