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단순함이 최고다!

찰라777 2013. 7. 23. 06:11

한올 한올 풀을 베어내는 작업

 

이제 하루라도 <해땅물자연농장>을 가보지 않으면 궁금해서 좀이 쑤실 정도다. 그만큼 자연과 함께 자라나는 작물들과 정이 듬뿍들었다고 할까? 이 농장에 드나든지도 거의 세달이 다 지나가고 있다. 그 동안 농장 구석구석에 내 손길이 안 간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농장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풀을 베어내는 일이다. 작물과 함께 줄기차게 자라나는 풀을 베어내는 일은 도道)를 닦는 수행과도 같은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작물을 베어내기가 일쑤다. 그러므로 먼저 작물사이에 있는 풀을 한올 한올 잡아서 일일히 베어낸 다음, 그 주변의 풀을 베어내야 한다.

 

 

 

 

지극히 단순한 작업지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작물을 베어내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이렇게 풀을 베어내다보니 농장 전체에 손길이 안 간곳이 없다. 따라서 이제 어디에 무슨 작물이 자라는지 눈을 감고 있어도 영상이 선명하게 떠 오른다. 그러니 작물 하나하나에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휴일에도 농장을 오게 된다. 오늘(7월 20일)은 토요일이다. 서울에서 홍 선생님 친구 두 분이 왔다. 두 분 다 체격이 건장한 분들이다. 한 분은 환경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지질 측량을 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두 분 다 주말이면 농장에서 땀을 흘리며 노동을 통해서 한 주일 간의 스트레스를 해소 시키는 분들이다.

 

 

 

 

"육체노동을 통해서 한 주일 동안 쌓인 정신적 육체적 노폐물을 제거하는 겁니다. 여기 풀과 나무들이 둘러싸인 자연농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육체노동을 하면 심신이 저절로 치유가 됩니다. 산소의 강에서 삼림욕을 하며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거지요."

 

참으로 멋진 분들이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단순한 노동을 통해서 한 방에 날려버린다?

 

모든 것은 더 이상

단순화 할 수 없을 때까지

단순화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나는 이 두 분을 바라보며 아인슈타인의 이 명언을 떠 올린다. 단순한 것은 좋은 것이다. 육체노동은  사람의 정신을 단순하게 만든다. 정신은 절대로 가만히 두고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정신은 맑아지고 육체는 노폐물을 밀어낸다. 그러니 심신이 저절로 힐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빈 공간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떠오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여 더 이상 단순화 할 수 없을 때까지 단순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것이다. 내가 풀을 베는 작업도 지극히 단순한 노동이다. 그러나 나는 풀을 베어내며, 대지의 향기를, 감촉을 느끼고, 잡초들과 하나하나 교감을 한다. 내 평생 언제 이렇게 풀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겠는가?

 

 

 

 

오늘은 이 분들과 함께 해야 할 참으로 단순한 일이 있다. 무너진 논두렁 제방을 쌓는 일이다. 해땅물자연농장의 논두렁 제방은 두 군데나 무너져 있다. 이번에 내린 폭우로 맨 위에 논두렁은 약 7m 정도 무너져 있고, 세 번째 논의 논두렁은 10m 정도 허물어져 내려 있다. 논에 물을 빼고, 임시로 땜빵을 한 다음 비닐로 덮어 두었는데 근본적으로는 제방을 쌓아서 보수를 해야 한다. 모두 다랑이 논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방이 약하다.

 

 

 

 

이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네 사람이 역할 분담을 했다. 홍 선생님은 무너진 제방에 모래주머니를 쌓을 준비 작업을 했다. 두 분의 친구와 나는 모래주머니에 흙을 담아 나르는 일을 했다.

 

 

모래주머니에는 모래 대신 흙을 넣었다. 한 분이 삽으로 흙을 뜨고, 한 분은 모래주머니를 잡고 흙을 받아 넣어 나에게 넘겨주면 나는 모래주머니를 묶어 자동차에 올리는 일을 했다. 물을 먹은 모래주머니는 20kg은 족히 넘는 무게다. 무겁다.

 

 

 

30여개의 완성된 모래주머니를 자동차에 싣고 논두렁으로 이동을 한다. 논두렁 입구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모래주머니를 내려 리어카에 10개 정도 옮겨 싣는다. 한 분은 끌고 두 사람이 뒤에서 민다. 제방 입구에 리어카를 세우고 다시 4개의 모래주머니를 손수레에 싣고 무너진 논두렁으로 옮긴다.

 

 

좁은 논두렁길은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자칫 잘 못하면 엎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수레가 무너진 논두렁에 도착하면 한 사람이 수레에서 모래주머니를 들어 올리면,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받아 홍 선생님에게 전달을 한다. 최종적으로 모래주머니를 받은 홍 선생님은 적재적소에 모래주머니를 쌓아올린다.

 

 

그야말로 단순한 노동이다. 그러나 모두가 비지땀으로 멱을 감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작업은 오후 7시까지 진행되었지만, 네 번째 논두렁은 다 보수를 하지 못했다.

 

단순함에서 행복을 느낀다

 

단순한 노동이지만 작업을 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무너진 논두렁을 보고 어떻게 이를 보수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재료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재료를 담는 그릇, 옮기는 수단, 누가 그 노동을 할 것인가? 재료와 노동에 들어가는 자금, 등등.

 

 

모든 것은 가능한 한 간단하게

만들어져야 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해서는 안 된다

-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이 명언은 모든 작업에 가장 잘 맞는 명언이다. 두 분의 친구 분들은 보수를 바라고 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노동의 대가를 바라고 이 작업에 합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극히 자발적이고 창의적 활동이다. 행복은 여기에서 온다. 누군가를 위해서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봉사를 했을 때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행복감이 몰려온다.

 

 

 

 

"계속 삽질을 하다 보니 북한 노동자들이 천 삽 뜨고 하늘 한 번 본다는 노동운동이 생각이 나는 군요."

 

"나는 병원에서 설문조사를 할 때에 '하루에 한번이상 땀을 흐리며 있는 힘을 다하여 육체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까?'란 질문이 떠오릅니다.'

 

 

오늘 작업은 있는 힘이 다 소진될 정도로 힘든 일이다. 아마 각자가 흘린 땀방울이 한바가지는 족히 넘을 것이다. 만약 이 작업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면 심신의 피로가 물밀듯이 쌓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손발이 척척 맞아 봉사정신을 발휘한 모두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넘쳐흘렀다. 그것은 돈이 아닌 자발적인 창의- 즉 남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세 분의 우정이 부럽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저녁상을 물린 후 바로 아인슈타인의 명언 한 구절을 떠올리며 곧바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훌륭하고 영감 있는 모든 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 의해서 창조된다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