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 통에 가득 찬 자비의 동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면 행복해져...
1년 동안 모은 동전 네팔 어린이 학자금으로 기부
남대문시장에서 식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용(54)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1년 동안 모아 온 동전을 네팔 어린이 학자금 후원금으로 기부를 하고 싶은데, 가게를 이사하는 작업을 하느라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그러니 좀 가지러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은 즉시 남대문시장으로 달려간 나는 가게에서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 합니다. 가게 이사 작업을 하느라 동전을 들고 갈 새가 없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별말씀을요. 이런 일이라면 언제라도 전화를 주십시오."
▲ 자비의 동전으로 가득찬 새우젓통
그는 이삿짐 속에서 새우젓통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가 건네준 새우젓통은 한 손으로 들기가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그 새우젓통을 열어보니 그가 지난 1년 동안 모았다는 10원짜리부터 5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이고, 많이도 모으셨네요. 이거 너무 감사합니다."
"바빠서 정리도 못했어요."
"괜찮습니다. 은행에 들고 가서 정리하면 됩니다."
새우젓 통에는 고무 밴드로 감아서 꼬깃꼬깃 모아놓은 것도 있었다. 밴드를 풀어보니 간단한 메모들이 들어 있었다. '00월 00일 000외 사랑의 고스톱 28,000원', '00월 00일 자선고스톱 34,000원', '00월 00일 28,000원', 00월 00일 자선고스톱 54,000원' 등등.
▲ 친구들과 사랑의 자선고스톱으로 꼬깃꼬깃 모은 성금
그는 친구들과 가끔 심심풀이로 저녁내기 고스톱을 치기도 하는데, 어느 날 딴 돈을 네팔 어린이 돕기 자선기금으로 내자고 제안을 했더니 모두가 기꺼이 응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고스톱을 치면서 딴 사람도 잃은 사람도 모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했다.
성금을 감아놓은 메모에는 이런 말도 적혀 있었다. "어느 자리에 앉아있어도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즐겁다. 고스톱을 치더라도." 이렇게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되는 나눔 정신이 있다면 고스톱을 치더라도 마음이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모양이다.
언젠가 그는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자금을 후원하고 있다는 자비공덕회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고자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두 분 다 일직 돌아가시어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올 수 없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시골에서 형님을 따라 서울로 상경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단 한 분 믿고 의지해왔던 그 형님마저 일직 돌아가시게 되어 그는 졸지에 고아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식품가게 점원에서 사장이 되기까지
졸지에 고아가 되어 집도 절도 없었던 그는 거의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껌팔이 장사부터 시작하여 노동판의 막일,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남대문 시장에서 식품자재를 자전거로 배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워낙 성실하고 부지런한 그는 식품가게 사장의 눈에 들어 정식으로 점원이 되었고, 남대문시장 주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신용을 얻게 되었다. 긴 세월이 흐른 후 마침내 그는 주인이 운영하던 식품가게를 인수하여 식품 가게 사장이 되었다.
너무 나이가 많이 든 전 주인이 식품가게를 운영하기가 버거워지자 그에게 월세로 가게를 넘겨준 것이다. 이는 맨손으로 시작한 그의 성실성과 근면함, 그리고 두터운 신용으로 이룩한 결과였다.
주인으로부터 식품가게를 인수한 후 그는 20여 년간 가게를 잘 운영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한•일간의 관계 악화와 엔화 가치 급락으로 가게의 가장 큰 수입원인 일본 관광객들이 크게 줄어들어 매상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가게규모보다 1/3로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매상으로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큰 기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가게도 신속히 하여 분수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경기악화로 가게를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김병용씨의 식품가게
그는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처분하고 매일 새벽 경기도 파주에서 남대문 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점원시절 초심으로 돌아가 야전잠바를 입고 직접 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좁은 가게의 야전 침대에서 날밤을 새기도 한다.
인도 배낭여행에서 삶의 바닥을 체험한 후의 변화
"그래도 길거리에 떠돌고 있는 인도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하면 저는 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2년 전 찰라님을 따라 인도에 갔을 때 많은 걸 느끼고 배웠습니다."
▲인도 다르질링 오지(해발 2300m)를 여행 할 때 배낭을 맨 김병용 씨 모습
그는 지난 2012년 필자와 함께 인도 다르질링과 시킴, 부탄 오지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사실 그는 바쁜 식품가게 운영은 물론 몇 개가 되는지도 모르는 각종의 모임의 간부 활동 등으로 워낙 바빠서 여행을 갈 틈이 도저히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처음엔 그가 그냥 해본 소리로만 들었는데, 그는 정말로 배낭을 메고 필자를 따라나섰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인도와 부탄이라는 나라를 꼭 한 번 몸소 체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15일간 힘들게 배낭을 메고 인도와 부탄의 오지를 여행을 하면서 그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자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지구상의 최고 오지를 걸어서 여행을 하면서 삶의 바닥을 체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거리에 떠도는 수많은 거지들과 1000~2000원의 적은 품삯을 받고 하루 종일 차밭에서 힘들게 찻잎을 따는 인도의 여인들을 바라보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가진 것이 너무 많은데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고, 체면과 겉치레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내 자신의 생활을 깊이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 힘든 오지 여행 길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해발 4000미터를 힘겹게 오르며 체력의 한계를 느껴보기도 했다.
▲해발 4000m 시킴왕국 짱구 호수에서 체력의 한계를 체험하기도..
더 이상 내려 갈수 없는 인생의 바닥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가난한 인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위치를 곰곰이 되돌아보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체면과 겉치레의 허물을 벗고, 가게도 대폭 축소하여 운영을 헤야겠다는 구조조정을 결심하게 되었다. 처음 남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야전잠바를 입고 새벽에 출근하여 직접 가게 일선에 나섰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억제하고, 자산을 처분해서 부채를 축소시켰다. 점포를 축소시키는 작업에 착수하고 인원도 정리를 했다.
그의 창고 한쪽에는 작은 야전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기거를 하며 전투복차림으로 피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생각을 했던 대로 불필요한 자산을 처분하여 부채를 줄이고, 지금까지 운영했던 가게를 1/3로 축소하여 사업에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겼다. 군살을 빼고 나니 비로써 사업의 균형이 잡히는 것 같다고 했다.
여행은 배낭이 가벼울수록 수월해진다. 배낭의 무게가 10kg을 넘어가면 그 배낭여행은 힘들어 진다. 필요한 옷 몇 가지와 편한 신발 한 켤레,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만 있으면 그 여행은 절반은 성공을 한 셈이다.
그가 인도의 오지여행할 때의 모습은 여행에 꼭 필요한 배낭과 신발을 신은 가벼운 모습이었다.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면 족하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체면과 명예욕, 겉치레가 많을수록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헤매게 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면 행복해져...
무거운 동전이 가득 든 새우젓 통을 넘겨주는 그는 마치 가벼운 배낭을 메고 편한 신발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처럼 밝게 웃었다.
"이 동전 네팔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괜히 무거운 동전을 드려서 미안합니다. 앞으로도 네팔 아이들 학자금 후원을 위해서 비록 작은 돈이지만 매일 동전을 모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동전이 네팔 아이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앞으로도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동전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네팔의 어린이들이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 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일을 해서 자신의 생활비를 벌거나 학용품을 살 돈이 없어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이 한 달에 1만원~2만 원 정도면 자신의 생활비를 벌지 않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 자비공덕회는 이러한 네팔의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학자금을 후원하고 있는 작은 모임이다.
동전이 가득 든 새우젓 통을 들고 가게를 나오는데 왠지 코끝이 시큰해졌다. 새우젓 통에는 그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을 돕고자 매일매일 모은 정성과 자비의 손길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동전이 가득 찬 새우젓통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남을 위한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지난 4월 26일, 그 새우젓 통을 들고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작은 암자인 향운사 자비공덕회 기도법회 장소로 갔다. 자비공덕회는 매월 한 달에 한 번씩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날은 회원 각자가 매일 자기 집에서 남을 위해 기도를 하며 모은 성금을 부처님 전에 바치고 기도를 올리는 날이다.
"세상에! 이 새우젓통에 든 동전 좀 봐요!"
"정말 대단한 정성이네요!"
▲기도법회를 올린 후 회원들이 김 씨의 정성에 감동을 하며 동전을 고르고 있다.
기도법회에 동참한 회원들은 새우젓통에 가득 찬 동전을 보고 모두 김 씨의 정성에 감동을 했다. 그 새우젓 통을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 회원들과 함께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법회가 끝난 후 동전을 탁자에 부어 놓고 권종별로 고루는 작업을 했다. 동전을 고루는 회원들의 모습이 무척 행복하게 보였다.
이 동전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이 학용품과 책을 사서 공부를 계속 하는 데 큰 희망과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동전을 모아 보내는 김씨도, 이 동전을 받아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오롯한 행복을 느낄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렇게 서로 나누면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