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청정지역, 축복 받은 땅 연천
6월 17일 맑음
지난 6월 16일 저녁 8시 경, 경기도 연천 지역은 후덥지근하고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런데 철원 방향에서 "우르르 쿵쾅!"하며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포를 쏘는 소리와 천둥소리는 다르다. 포 소리는 울림이 적다. 그러나 천둥소리는 울림이 크고 길게 여음이 남는다.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철원 방향에서 몰려오더니 칠흑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일진광풍이 불어 닥치며 주변에 있는 모든 수목이 물결치듯 좌우로 흔들거렸다. 처마 밑 홈통에서는 곧 폭포수처럼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천둥과 번개를 수반한 소나기가 무려 1시간 동안이나 내렸다.
▲ 소나기 소리
"돈 비가 내렸어요!"
이튿날 아랫집 현이 할아버지가 콩밭을 둘러보며 한 말이다. 정말 농부에게는 천금처럼 소중한 단비다. 텃밭에 나가보니 모든 작물들이 소나기를 맞고 밤새 훌쩍 커 버린 것 같다. 토마토는 터질 듯 매달려 있고, 방울양배추도 키가 훌쩍 커져 가지마다 작은 방울이 맺혀 있다.
당근과 옥수수도 생글거리며 웃고 있다. 고구마 줄기도 밤새 더 길어져 이랑을 푸르게 덮고 있다. 비트를 한 개 뽑아보니 밑이 아주 튼튼하게 들어있다. 이틀 전에 뿌린 열무의 떡잎도 두 팔을 벌리며 올라오고 있다.
오이가 밤사이에 쑥쑥 커져 아이의 팔뚝처럼 쭉 뻗어 있다. 부추 잎도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모든 작물들이 비에 흠뻑 젖어 생명력이 용솟음치고 있다.
임진강도 오랜만에 흙탕물이 흘러가고 있고, 주상절리 절벽에는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강물은 때로는 범람할 정도로 비가 내려야 한다. 그래야 더러운 것도 씻겨 내려가고 강주변의 대지가 비옥해지는 것이다.
소나기의 축복을 받은 연천은 모든 만물이 기지개를 펴고 생동감에 차 있다. 연천은 북한에서 흘러 내려온 임진강과 강원도에서 흘러내려오는 한탄강이 굽이쳐 흘러가는 곳이다. 접경지역에 위치한 연천군은 대부분의 땅이 군사보호지역에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게 되어 공기는 맑고 산천은 청정하다. 임진강과 한탄강의 급수를 받아 지은 <남토북수>의 연천 쌀은 찰지고 맛이 있다. 또한 율무, 콩, 고추, 깨 등 밭에서 키우는 작물들은 일교차가 커서 다른 지역 작물보다 맛이 더 좋다. 그러나 금년 가뭄은 너무나 극심하다. 가뭄 속에 어젯밤 1시간 동안 내린 소나기는 모든 작물을 용솟음치게 하고 있다.
푸른 율무 밭이 바람에 일렁이고, 며칠 전에 심은 콩은 거북등처럼 딱딱한 땅을 뚫고 귀엽게 싹을 내밀고 있다. 참깨가 쑥쑥 고개를 내밀고, 고추가 벌써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하고 있다. 천혜의 청정지역 연천은 축복 받은 땅이다.
메리골드 씨를 뿌려 놓은 곳에 가보니 모종들이 밤새 쑥쑥 자라나 있다. 비를 맞은 메리골드를 옮겨심기에 좋은 날이다. 며칠 전에 대문 장독대와 현관으로 들어오는 테라스 앞, 그리고 정자 옆에 메리골드를 이식을 했다.
소나기 덕분에 훌쩍 자란 메리골드 모종을 잔디정원 주변에 옮겨 심는 작업을 시작했다. 번에는 퇴비장과 텃밭 옆 진디 정원 쪽에 줄지어 메리골드를 더 심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진디 정원 전체를 빙 둘러 메리골드를 심게 되는 샘이다.
메리골드를 옮겨 심을 땅을 파 보니 어제 내린 소나기로 땅이 완전히 젖어 있다. 호미로 30cm 정도를 팠는데도 여전히 촉촉하다. 촉촉이 젖은 대지의 신선한 기운이 손끝에 전달되어 온다.
정원을 빙 둘러 20개의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퇴비를 한 줌씩 넣고 흙과 잘 섞어주었다. 매리골드 모종을 조심스럽게 파와 한그루씩 정성스럽게 심기 시작했다. 장소를 옮겨 심었지만 소낙비 덕분에 메리골드는 여전히 생동감에 넘친다. 머지않아 우리 집은 메리골드 향기로 가득 찰 것이다.
메리골드 이식을 마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잉크를 뿌려 놓은 것처럼 하늘이 파랗다. 푸른 하늘에 하늘거리는 느티나무 잎사귀에도 생기가 돈다. 밤꽃 향기가 유난히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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