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사람의 운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찰라777 2018. 10. 27. 14:03

지리산으로 떠나는 힐링여행-1

 

 

 

 

1023일 아침 7시 도농역에서 J 선생님을 픽업을 하고 중부고속도로를 탔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이 홍수를 이루며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있다. 짙은 안개까지 끼어 운전을 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영동고속도로로 갈라지는 호법 IC까지 차량의 홍수는 길게 이어지고 있다.

 

호법 IC를 벗어나자 차량소통이 조금씩 원활해졌다. 70km1시간 반이나 걸려 우리는 마장휴게소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이제 고희를 넘기고 나니 자동차를 장시간 운전하며 여행을 떠나는 것도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니 휴게소에 들러 자주 쉬어 갈 수밖에 없다. 내가 팔십 나이에도 운전을 하며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하, 미래의 일은 미리 걱정을 하지 말자.

 

마장휴게소에 들어서니 역시 차량과 단풍 여행자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우리는 아내가 집에서 준비해온 빵과 고구마로 자동차 안에서 아침을 먹었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시니 한결 피로가 풀린다.

 

 

 

 

 

지리산 일성콘도까지는 4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다. 대전에 살고 있는 J 선생님의 지인인 C 선생님이 남원에서 합류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내는 그렇게 하지 말고 대전에서 기왕이면 C선생님을 픽업을 하여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 급기야 J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 C선생님을 대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마장휴게소를 출발했다.

 

대전에 살고 있는 C선생님은 류머티즘을 심하게 앓고 있는 분으로 잘 걷지를 못한다. 그렇게 몸이 불편한 분을 고생을 시키지 말고 함께 모시고 가자는 것이 아내의 마음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나무 관세음보살!

 

이번 지리산 여행은 22일 날 출발하여 34일 일정으로 가기로 계획을 했었다. 당초계획은 한국자비공덕회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H 보살을 모시고 가기로 한 여행이었다. H보살은 2년 전부터 갑자기 남편이 치매를 앓게 되어 처사님을 간호하느라 무척 애를 쓰고 있다.

 

처사님은 60을 갓 넘은 한창 활동을 할 나이인데 급성 치매에 걸려 기억력을 잃고, 급기야 제대로 음식을 입으로 먹지도 못하고 목에 구멍을 뚫어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S대학을 졸업한 영재로 대기업의 CEO까지 지낸 매우 유능한 인재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치매로 그는 기억력을 잃고 스스로 의지로 먹고 입고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그는 나와 함께 네팔 어린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버드러칼리 현지에 봉사활동을 다녀 올 정도로 건강했었다. 사람의 일이란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그런 남편을 H보살은 24시간 간호를 하여오다가 도저히 감당을 하기가 어려워 요양병원으로 옮겨 모시고 있다. H 보살은 남편이 앓기 전까지는 세상일을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편하게 살아왔다.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갈 줄도 모를 정도로 모든 일을 남편이 도맡아 처리해 주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은 물론 남편 곁에서 한시를 떠나지 못하고 간호까지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에는 요양병원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 잠시 짬을 내어 우리와 함께 지리산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내가 심장이식을 하는 등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자주 병문안을 와 아내를 위로하는 등 여러 가지로 애를 많이 쓰기도 하는 등 신세를 졌던 터라 우리는 그녀가 틈이 나면 곡성 태안사로 가서 산사에서 하루 밤 힐링을 하고 지리산 단풍도 구경하며 위로를 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리산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 보살님으로부터 남편의 증세가 악화되어 함께 갈 수 없다는 전갈이 왔다. 무슨 원인인지는 몰라도 남편의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CT를 촬영해 보아야 하고 남편 곁에 24시간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일을 어찌할꼬? 이미 콘도를 예약하고 일정을 잡아 놓은 여행이다. 이번 여행은 꼭 H보살과 함께 해야 여행의 보람이 더할 텐데할 수 없이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한 번 가기로 하고 우리는 J 선생님과 그녀의 지기 C선생님과 함께 내친김에 지리산 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했다. C 선생은 우리가 지리산 구례에서 아내의 요양 차 빈농가를 세 들어 2년 간 살고 있을 때 그녀도 곡성 빈농가를 세 들어 요양 차 살고 있었다. 우리는 동병상련의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곡성 그녀의 집을 한번 방문하여 한 번 만난 인연이 있었다. C선생님은 J 선생님과 생명의 전화에서 봉사를 할 때에 함께 만난 인연으로 지금까지 교류를 하고 있다. 나는 17년 전 J 선생님과 이근후 박사님 네팔 의료봉사 캠프에 합류하여 봉사활동을 하던 중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참 사람의 인연이란 묘하다. 이렇게 인연의 고리로 만난 사연으로 매년 여행을 함께 떠나고 아주 친한 형제자매처럼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대전 IC를 빠져나가 대전 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되었다. 우리는 C선생님을 쉽게 접선하여 픽업을 하고 다시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아내의 현명한 판단이 적중했다. C선생님이 얼마나 좋아하던지그 좋아하는 순진한 표정을 보기 만해도 즐겁다.

 

대전을 출발하여 금산휴게소에 도착할 무렵 아내가 전화 한 통화를 받더니 뒤로 자지러졌다. 도대체 무슨 내용 이길래! 아내가 저리도 놀라는가?

 

금산휴게소에 들어서서 전화를 끝낸 아내의 표정이 굳어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시카고에 살고 있는 친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렇게도 건강하던 분인데… 나무 관세음보살!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은 시카고에서 다래정이라는 한국토속음식점을 경영하여 20년 넘게 살고 있다. 우리는 2년 전에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에 시카고에 있는 다래정을 들른 일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다고 식당에 손님까지 받지 않고 걸게 한상을 차려 우리를 대접해주기도 했다. 그때 그녀의 남편은 너무나 건강했다. 그런 분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떠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사연을 들어보니 두 분은 늘 시장을 봐서 식당으로 함께 가곤 했는데, 하필 그날은 남편만 먼저 자동차를 몰고 갔었단다. 그런데 식당에 먼저 도착한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홀로 심장마비를 일으켰으니 응급조치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원래 한국에서 국어교사를 했던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 제자들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가게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다시 재계약을 하는 등 사정 때문에 오지를 못했다. 그는 시카고에 20년 넘게 살고 있었지만 항상 고국을 그리워했다. 우리가 방문을 했을 때에도 고국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리도 가고 싶은 고국 땅을 밟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    


언젠가 살아 있을 때 그녀의 남편은 이런 유언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고국의 고향에 묻히고 싶다. " 따라서 그녀는 남편의 유언을 따라 화장을 한 남편의 유골을 모시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 땅에 뿌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사람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유언은 필요하다. 미국에서 머물 때 보니 그들은 젊었을 적부터 유서를 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간다. "만약에 말이다. 여행 중에 어찌 될지도 모르니 아빠가 죽고 나면 화장을 해서 아빠의 고향 땅 할머니 묘 옆에 뿌려라." 


나의 유언은 간결하다. 이룬 것도 별로 없고 처분할 재산도 별로 없다. 여행을 유독 좋아하는 아내는 매년 몇 번은 여행을 떠나야 아프지 않는다. 여행은 아픈 아내의 유일한 취미이자 아내를 치유하는 명약이다. 아내는 여행을 따나지 않으면 많이 아파진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 역시 아내를 핑계 삼아 여행을 떠난다. 퇴직금은 여행을 다니면서 다 써버렸고, 하나 남은 집도 기둥뿌리를 하나씩 뽑아서 여행비용으로 거의 다 탕진해버려 점점 작아지다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을 뿐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슬픈 뉴스에 충격도 완화할 겸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은 후 우리는 다시 지리산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