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피톤치드 일렁이는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찰라777 2007. 9. 21. 15:39

피톤치드 일렁이는 장성 편백나무 숲

 

피톤치드의 강물 속으로…

 

▲장성 축령산 일대 300만평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우는 동안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그토록 극성을 부리던 매미 소리도 잠잠해지고 잎새에 부는 바람이 소슬하기만 하다.

 

어두운 새벽,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스모그의 베일로 가리어진 서울을 벗어나간다. 갯벌 냄새를 맡으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점점 기분이 상쾌해진다.


김제평야에 이르니 황금물결이 춤을 추며 길손을 반긴다. 알알이 익어가고 있는 노란 벼 이삭이 설악의 단풍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황금보다 더 소중한 농민의 땀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고창나들목을 빠져나와 장성방향으로 15번 국도를 타고 나오니, 꼬불꼬불한 길이 푸른 숲으로 이어지며 시야를 시원하게 한다. 자동차의 창문사이로 이루 형언 할 수 없는 나무들의 향기가 흘러 들어온다.


다른 곳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 독특하게 느껴지는 ‘향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간다. 방장산고개를 넘어 ‘축령산휴양림’이란 이정표를 보고 좁은 길로 접어드니 나무의 향기는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편백나무의 향기다!


축령산은 그 입구에서부터 유럽풍으로 잘 조림된 편백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서 있다.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편백나무 숲은 마치 독일을 여행할 때 보았던 ‘흑림(Black Forest)'를 연상케 한다.


축령산 일대의 편백나무는 그 질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전북 고창군과 경계지역에 위치한 축령산은 서해안의 찬 기류가 내륙으로 들어오다가 해발 640미터의 축령산에 걸려, 여름철에는 비교적 비가 많이 내리고, 겨울철에는 많은 눈을 쏟아 붓게 된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편백나무는 향이 좋고, 재질이 단단하며, 무늬도 아름답다.


잘 자란 편백나무 한 그루를 도요타 승용차 한대 값에 비교할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일본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편백나무를 상품으로 친다. 이렇게 질 좋은 편백나무는 일본에서는 예부터 황실을 짓는 고급 목재로 사용되어 왔다.

 

 

자동차의 시동을 꺼라!

 

▲금곡마을 입구 정자에 누워 삼림욕을 하고 있는 마을 노인

 

축령산 계곡으로 들어서니 편백나무 숲 사이로 계단식 논이 마치 황금 금괴처럼 층층이 포개져 있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니 곧 ‘금곡영화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는 거대한 노거수가 서 있고, 그 노거수 밑 초막정자에는 노인 한분이 벌렁 누워 팔자 좋게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다.

삼림욕 한 번 제대로 하고 있네!

 

 


금곡영화마을은 영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등을 촬영했던 작은 마을이다. 편백나무 숲이 우거진 언덕배기에 초가로 이어진 집들이 띄엄띄엄 몇 채 들어서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좁은 임도가 마치 태고의 원시림처럼 보이는 편백나무 숲으로 이어져 있다. 편백나무 향기가 그윽하게 스며든다!

조용하다!

깨끗하다!

 

나는 이제 자동차의 시동을 꺼야 한다.

 

어찌 저 깨끗하고 조용한 숲을 휘발유 냄새 풍기며, 소란스럽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기 전에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빈터에 주차를 한다. 피톤치드가 강물처럼 흐르는 숲속으로 임도를 따라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좁은 임도 양쪽에는 참빗처럼 가지런히 자란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편백의 독특한 향기가 더욱 진하게 코를 찌른다. 숲은 고요하고 갓난아기의 속살처럼 촉촉하게 젖어있다.


침묵!

아침의 숲은 조용하다. 밝은 햇살이 아침 이슬 속에 부서진다.

공기는 달디 달고,

바람은 편백나무 끝에서 춤을 춘다.

숲이 깊어질수록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새들과 다람쥐와 나무들의 밀어를 듣는다.

 

▲편백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어 숲은 어둡게까지 느껴진다. 


숲 속 안으로 들어 갈수록 편백나무 숲은 점점 울울창창하여 주변이 어둡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언덕을 오르며 숨이 가퍼진 나는 잠시 편백나무에 기대어 몸을 맡긴 채 눈을 감는다.


내가 편백나무 속에 있는지, 편백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간다. 단지 느껴지는 건 들숨과 날숨 속으로 오가는 편백의 향기뿐이다.


서둘러 편백나무 숲 닿기도 전에

숲은 차에 라이트와 시동을 끄도록 명령했다

빛과 소리 그치니 비로소 확연해지는 눈과 귀

느슨해진 신발 끈을 조이고

한 발 한 발 산의 늑골을 더듬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것 역시

어딘가 있을 편백나무 향기뿐

걸음은 안개처럼 더디다.

 

-김인자의 ‘편백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중에서-

 

 

숲에서 아토피를 치료하는 아기

녹색샤워(Green Shower)가 주는 자연의 위대한 치유력!

 

 

 

인적이 없는 숲은 고요하고 장엄하다. 편백나무에 기대어 있다가 눈을 뜨니 아침 햇빛 속에 장대비처럼 수직으로 내리꽂힌 편백나무 사이로 자욱하게 피어오른 물안개가 숲을 더욱 신비스럽게 장식하고 있다.


물안개 사이로 50년을 넘긴 편백나무의 영혼이 인간에게 이로운 피톤치드를 발산하며 비밀스럽게 유영(游泳)하고 있는 것이다. 새벽부터 차를 몰고 먼 길을 왔는데도 몸은 전혀 피곤이 느껴지지 않고 정신은 맑다. 편백의 향기 덕분이리라.


고개를 넘으니 이윽고 우물터가 나온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몇 대의 자동차가 보이고 사람들이 편백나무 숲 아래 누워 있거나 앉아서 쉬고 있다.

 

우물터 가까운 곳에 한 아기가 숲 속에 누워 잠을 곤이 자고 있다. 아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 몸이 부스럼투성이다.

 

저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여기저기 긁어서 진물이 나 있고, 덕지덕지 딱지가 붙어 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데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 저렇게 잠도 잘 수 있답니다.”


서울에서 아기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이곳까지 내려왔다는 아주머니는 3일째 편백나무 숲에서 머물고 있는데, 아기의 피부가 현저하게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밤에는 금곡마을 민박집에 머물고, 낮에는 그저 하늘을 찌르는 편백나무 밑에 누워있는 것이 아토피를 치료하는 방법이란다. 거기에 민박집 주인이 편백나무 가지와 잎을 삶아서 그 액을 발라주어서인지 아기의 상태는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밤낮으로 가려워 울기만 하고, 도대체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저렇게 자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란다. 편백나무에서 발산하는 피톤치드 향기가 아토피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수목은 나름대로 다 피톤치드를 발산한다. 피톤치드는 나무에 따라 다르며 활엽수보다는 침엽수에서 훨씬 많이 발생한다. 침엽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나무는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피톤치드 발생은 잣나무가 소나무보다 우위에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은 피톤치드를 발생시키는 것은 바로 이 편백나무이다.


자연의 치유력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이렇게 숲에서 눕거나 걸으며 며칠을 지내기만 하면, 웬만한 알레르기와 아토피 같은 병을 치료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뿐인 편백나무 숲을 보호하자!

 

▲편백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가족


숲 속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떠서 벌컥벌컥 마신다. 배속까지 시원하다. 물을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니 편백나무 잎새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이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을 타고 내려온 것처럼 멀게만 보인다. 우물 속에도 편백의 향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편백나무 향기에 듬뿍 취해 있는데 어디선가 자동차들이 쾌쾌한 소음과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온다. 요란한 소음과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냄새로 순간 숲은 균형을 잃고 만다.


"인간들아, 걸어서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몸에 좋은 녹색샤워를 하면서 말이다."


이는 편백나무가 우매한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편백나무 숲 속을 무거운 자동차를 몰고 들어와 스스로 익사를 하는 줄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편백나무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귀한 숲이다.

지난 2000년에는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운동본부가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어 해마다 10만 명이 이상이 찾고 있다. 또한 일본과 독일, 호주, 중국 등지에서도 이 편백림을 보기 위해 시찰단이 찾아들고 있다.


정말이지… 우리나라의 하나뿐인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은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보호해야 한다.


첫째는 어떻게 하든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시켜야 한다. 숲 입구에 주차장을 만들어 맨발로 흙 길을 걸어 들어오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 어렵다면 전기로 움직이는 코끼리 열차 같은 공해 없는 꼬마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둘째는 축령산 주변에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해야 한다. 임도에 시멘트를 입혀 생태 띠를 차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주변에 유홍시설물 등 건축을 엄격히 규제하여 공해의 여지를 막아야 한다.

 

셋째는 이용객의 수를 제한하고 방만한 행동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하루에 수용인원을 정하여 무분별한 단체 입산을 통제하고 숲과 계곡에서 몰래 취사를 하는 행위는 엄단을 하여 숲을 보호해야 한다.


넷째는 조용히 휴식을 하고 사색을 하는 숲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산책로를 다듬고, 나무로 만든 벤치를 친환경적으로 적절히 배치하여 책을 읽고, 사색을 하는 숲으로 조성해 나가야한다.


정부가 이런 공익정책에는 보다 강력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면서부터 표를 의식해서인지 점점 뒷걸음질을 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피톤치드의 보고,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은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든지 보호해야 한다.

 


 

조림왕 임종국 선생을

국가유공자로 추서해야...

 


축령산 일대에 편백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일본에서 들여와 처음으로 심기 시작했던 것이 그 효시다.


그 이후 인촌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한국의 조림왕으로 불리는 춘원 임종국(春園 林種國·1915∼1987) 선생이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장성군 덕진리의 인촌 소유 야산에 갔다가 쭉쭉 뻗어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숲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편백나무에 반하고만 그는 무려 20년 동안 전 재산을 털어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조림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가뭄이 들어 나무가 말라죽게 되면 그는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편백나무를 가꾸었다.  


임종국 선생은 1972년 조림왕으로 뽑혀 민족상의 영예를 안았지만 노년을 쓸쓸하게 보내다 숨진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2001년 산림청이 지정한 그를 '숲의 명예전당 헌정' 되었고, 2005년도에는 자신이 일구어 놓은 편백나무 숲에 수목장으로 잠들고 있다.


한편, 지난해 11월부터 임종국 선생을 국가유공자로 지정받기 위한 서명운동이 축령산에 금곡미술관을 운영 중인 변동해(53)씨를 주축으로 하여 벌어지고 있다. 변동해씨는 말한다.


“아무도 나무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비탈에 움막을 짓고 지게로 물을 나르며 전국 최고의 숲을 이룬 조림왕을 국가가 예우해야 한다.” 고.


현행 국가유공자 예우법에는 '국가사회발전 특별공로자'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수 있게 되어있다. 이 서명운동에는 이미 3만여 명이 동참을 하여 국회에 청원까지 해 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정부 수립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회발전 공헌으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예가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방치 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임종국 선생처럼 국가사회발전에 몸을 바쳐 헌신적으로 공을 세운 사람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할 것인가?

 

 

 

- 축령산 편백나무 숲에서 글/사진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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