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찰라777 2006. 12. 23. 20:44

 

일주일째 지리산 미타암이라는 암자에 머물고 있습니다.

각하 신병 요양차

물맑고 공기 좋은 곳으로 오다보니

지리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 긴 산자락이 누워 있고,

섬진강이 길게 길을 내고 있군요.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눈속에 갇혀 옴짝딸싹을 못하다가

오늘, 눈이 녹아 비로소 암자에서 내려와

구례 장터에 장을 보러 왔다가

각하가 시장을 보는 동안  잠시 짬을 내어

PC방에서 몇자 소식을 전합니다.

 

암자 처마 끝에 고드름 열고

이따금 멧돼지가 내려와 친구 하자고 

꽥꽥 소리를 지르는군요.

 

멧돼지와 친구가 디는 순간

꿀꿀꿀꿀~~

하하 재미 있군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과 새해를 맞이 하소서...

 

2006.12.16

지리산에서

찰라 합장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