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내 마음 속의 우수아이아

찰라777 2008. 6. 16. 11:33

 

내 마음의 '우수아이아'

 

 

우수아이아(Ushuaia)가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은 한 마디로 '지구의 끝'이다. 사람들은 이 섬을 '세상의 끝(Fin del Mundo)'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세상의 끝은 어디에나 있다.

 

유럽 사람들은 포르투갈의 로카곶(Cabo da Roca)을 지구의 서쪽 끝이라고 부르고, 호주 사람들은 태즈매니아 호바트를 지구의 끝이라고 부르며,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대륙의 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해남에 땅 끝이라는 지명이 있지 않은가?

 

헨리 베스톤(미국 소설가)이라는 작자는 두 주 쯤 지낼 요량으로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코드에 있는 바닷가의 집을 찾아갔는데 주변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1년 동안이나 머물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케이프 코드에 두 칸짜리 오두막을 지어 놓고 이 집 이름을 '세상 끝의 집'이라고 붙였다. 1927년 이곳에서 1년 동안 산 기록을 담아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그의 애인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책이 없으면 결혼도 없다"는 그녀의 말에 그 기록을 다듬어 '세상 끝의 집(The Outermost House)'이란 소설을 발표하고 그녀와 결혼에 골인을 한다. 세상의 끝이 일약 유명한 소설을 탄생시키며 그를 성공을 하게 한 케이스다.

 

이처럼 세상의 끝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기도 한다. 내 인생이 다 하는 날, 그 시점이 진정한 '세상의 끝'이 되지 않겠는가.

 

하여튼… 우수아이아는 내 마음 속에 '세상의 끝'이라는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우수아이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최근에 부르스 채트윈의 소설 '파타고니아'를 읽고 나서는 그곳에 꼭 한 번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520년 11월 1일 마젤란이 이곳을 지날 때 원주민이 신호를 하려고 횃불을 밝혔는데, 바람이 강한 불모의 대지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불가사의하게 느껴진 마젤란은 '티에라 델 푸에고(불의 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서쪽은 마젤란 해협과 피오르드, 남쪽은 비글 수로로 둘러싸인 섬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반반씩 차지하고 있다. 섬이 아닌 대륙의 끝 도시는 오히려 푼타아레나스가 맞을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우수아이아를 모두들 세상의 끝에 있는 도시라고 부른다.

 

푸에고 섬이 문명세계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덕분일 것이다. 비글호를 타고 섬의 원주민을 처음 보게 된 다윈은 그들의 생활이 너무 비참함을 보고 크게 놀랬다. 진눈깨비가 내리는데도 가릴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아이를 안은 젊은 원주민 여인, 소매 없는 찢어진 망토를 두르거나 손바닥만 한 짐승가죽으로 앞을 겨우 가린 원주민… 이를 보고 다윈은  "야만인과 문명인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차이가 야생동물과 가축사이의 차이보다 더 심했다."라고 그는 항해기에 기록하고 있다.

 

푸에고 섬에는 원래 약 8,000여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백인들의 배가 들어오면서부터 폐렴, 연주창, 독감, 백일해, 성병 따위의 질병으로 거의 멸종하다시피 줄어들어 순수한 원주민은 단 한명도 없고 혼혈족만이 수십 명 정도 남아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보면, 원주민은 거의 예외 없이 침입자에게 정복을 당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버리진, 태평양의 마오리 족 원주민들도 외지인의 침입으로 걸린 전염병과 약탈 사냥으로 사라져 갔다.

 

원래 푸에고 섬의 원주민은 수천 년간 대자연을 잘 견디며 잘 살아왔다. 그러나 문명의 세계에서 온 질병은 무력보다도 더 무섭게 그들을 멸종시켜 버렸다. "비누와 교육은 총과 같이 치명적일 수 있다. 다만 사람을 죽이는데 총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라고 말한 마크 트웨인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우수아이아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곳이 푸에르토 윌리암스이다. 그곳에는 '세계 최남단의…'이라는 이름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세계 최남단의 우체국', '세계 최남단의 레스토랑', '세계 최남단의 호텔', 등… 어째든 아내와 나, 그리고 미스터 정 세 사람은 덜컹거리는 나의 애마 로시난테에 몸을 의지하고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로시난테, 펜 벨트 떨어지다

 

"여보, 어쩐지 으스스 하기만 해요."

"뭐가?"

"원, 이렇게 마을 하나, 자동차 한 대 구경하기가 힘드니 말이에요."

"흐음… 허지만 이런 게 진정한 여행이 아니겠소?"

 

우수아이아로 가는 길은 그리 녹녹치가 않았다. 길은 가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엉망진창으로 질척거리기도 했다. 아내가 말을 한 것처럼 파타고니아의 팜파스는 으스스 했다. 집 한 채는커녕 자동자도 구경하기가 힘드니 말이다.

 

이건 어쩌면 마젤란이나 다윈이 이곳을 탐험했던 것보다도 더 위험하고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영락없이 오도 가도 못할 신세가 되고 말겠지. 유사시에 어떤 통신수단도 우리를 보호해주는 보호막도 하나 갖춘 게 없으니 말이다. 하여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린 그런류에 속했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저만치 황량한 벌판에 트럭을 세워놓고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마도 트럭이 고장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내가 일단 자동차를 멈추자 그가 우리 곁으로 와서 양손으로 제스처를 하며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그는 기름때가 디룩디룩 묻은 꾀죄죄한 원피스 작업복을 입었는데, 콧수염을 기르고 마른 얼굴에 눈 꼬리가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몇 세기를 걸쳐 피가 섞인 혼혈인인자 뭐라고 딱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표현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스페인어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의 말을 대강 유추해 보건대 자기 트럭이 고장이 나서 그러니 좀 태워달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단 그를 태웠다. 산 그레고리오 어쩌고저쩌고 하는 걸로 보아서 여기에서 가까운 도시까지 가야 하는 모양이다.

 

영어가 도통 통하지 않으니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1시간여를 달려갔다. 그러자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그는 거기에서 전화를 걸어 더 큰 도시에 자동차를 수리요청을 하겠다는 시늉을 하며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내렸다.

 

그 트럭운전사를 내려 주고 1시간쯤 갔을까? 갑자기 엔진 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엇! 나의 로시난테 무슨 일이지? 엑셀을 밟으니 그래도 자동차는 굴러가기는 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젠장, 로시난테, 어찌 된 거야.

 

자동차를 세우려고 하는데 마침 전방에 트럭 두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트럭도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린 구세주를 만난 듯 일단 트럭 옆에 차를 세웠다. 본 네트를 열어보니 오 마이 갓! 펜 벨트가 떨어져 있질 않은가.

 

떨어진 펜 벨트를 들고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트럭을 수리하던 기사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다행히 영어가 좀 통하는 기사였다. 그는 여분의 벨트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하기 전에 마뉴엘이 준 벨트가 생각이 나서 짐칸에서 벨트를 찾아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벨트를 끼어 보더니 이건 너무 커서 맞지 않으니 다른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그것밖에 없다고 하자 그는 벨트를 철사로 줄여서 묶더니 동여 멨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보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내가 우수아이아로 간다고 했더니 그는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뜨고는 이 자동차로는 도저히 거기까지 갈 수 없다고 한다. 빨리 가까운 도시로 가서 자동차를 수리해야 한다는 것. 임시방편으로 펜 벨트를 고정시켜 놓았는데 곧 다시 고장이 날거라고 하면서 살살 달래며 가까운 도시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가까우 도시는 푼타아레나스라는 것. 그러니 제발 다시 오던 길을 가는 것이 좋다고 귀띔을 해준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오고 갈 길은 멀다. 아내와 미스 정과 협의 끝에 우리는 그 트럭운전사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아까와는 반대로 우리 자동차를 수리해준 트럭 기사에게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오던 길로 자동차를 돌렸다. 로시난테, 할 수 없다. 일단 오늘은 후퇴다.

 

 

연료가 떨어져도 신기하게 굴러가는 로시난테

 

우리는 '불의 땅'을 눈앞에 두고 후퇴를 해야 하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길을 잘 못 들어 우리는 아르헨티나 국경까지 가고야 말았다. 더욱이 연료계기판을 보니 거의 바닥까지 내려와 연료가 떨어지기 직전이다. 로시난테, 어찌된 일이야. 길을 제대로 인도해야지.

 

칠레 측 국경수비대 직원에게 이 근방에 주유소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이 지역에는 없고 이곳에서 푼타아레나스 쪽으로 70km를 더 가야 주유소가 있다고 한다. 마냥 이곳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일. 우리는 일단 우리는 자동차를 살살 달래며 가는 데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동차의 계기판이 바닥에 있는 데도 로시난테는 덜덜거리며 잘도 굴러갔다. 엑셀을 세게 밟기도 겁이 났다. 펜 벨트는 임시로 갈아 끼었지, 기름은 바닥이 났지, 한 번 서기라도 하면 로시난테는 영 멈추어 버릴 것만 같았다. 허지만 신기하게도 로시난테는 주유소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을 하였다. 오, 나의 로시난테여 장하도다!

 

 

그래도 베리 굿 카냐?

 

▲ 펜 벨트가 떨어진 1975년산 도요타를 '베리 굿 카'라고 박박 우기는 마뉴엘부부와 함께. 그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매사에 걱정이 없고 편안하게 보였다. 푼타아레나스에서 조그마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주로 아내의 잔 심부름을 하며 빈둥빈둥 놀고, 그의 아내는 집안 청소와  허드렛일 하며 사는데 서로가 불평이 없어 보였다.

 

 

끝없는 팜파스가 이어지는 외딴 곳에 바다를 등지고 있는 작은 주유소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그를 만나자 우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우리는 Terminal Gregorio란 곳에서 기름을 넣고 가까스로 푼타아레나스에 도착을 하였다. 마뉴엘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왜 벌써 돌아왔느냐고 묻는다.

 

"헤이 마뉴엘, 펜 벨트가 떨어져 죽을 뻔 했다. 그래도 베리 굿 카냐?"

"그렇고말고. 베리 굿 카가 아니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겠느냐. 아마 내 고물차였다면 도저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뭐라고? 푸하하하하하~."

 

우리는 그의 말에 그만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웃어야지 별 수가 있나.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대고 비까지 내렸다. 우리들의 폭소가 바람 속에 묻혀 사라져 갔다. 그리고 불의 땅 티에라 델 푸에고와 우수아이아, 비글해협, 지옥 같은 케이프 혼도 바람에 사라져 갔다. 수많은 항해자들과 탐험가들을 거친 파도 속에 가라앉혔던 비글해협의 케이프 혼은 1년 내내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이키고 있는 곳이다.

 

"초이, 돌아오길 잘했소. 만약에 우수아이아까지 갔더라면 이 비바람을 어떻게 견딜 뻔했소. 아마 케이프 혼의 물귀신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르지. 하하하."

 

에고, 저 넉살을...걍... 그러나 우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저 넉살를 배워야 한다. 떨어진 펜 벨트를 교체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농 섞인 말을 토해내는 넉살이 오히려 귀엽게만 보이니 말이다. 그가 왠지 밉지가 않다. 그가 우리를 위한답시고 걱정을 하는 채 했더라면 되려 이상할 것만 같았다. 거친 환경에서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훨씬 건조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있었다.   

 

번개 불이 번쩍이더니 하늘은 천둥소리로 곧 무너질 것만 같다. 자동차를 날려버리기라도 할 듯 강풍이 불어왔다. "마뉴엘의 말처럼 우수아이아로 가는 길을 강행을 했더라면 이 폭풍 속에 귀신이 될 법도 한데요?" 아내가 비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어째든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인간은 가끔씩 놀이공원으로 가서 무서운 귀신의 집을 즐기듯이 누구에게나 두들겨 맞는 마조키스트적인 기질이 있나보다. 펜 벨트가 떨어져 우수아이아로 가는 여행이 무산이 되고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공포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

 

 

*P/S : 강풍이 몰아치는 오후, 밖에는 나가지 못하고 푼타아레나스의 PC방에서 우리는 우수아이아와 불의 땅에 대한 사진을 실컷 구경했다. 펜 벨트가 떨어져나가 우수아이아를 가진 못한 나는 푸에고 섬과 우수아이아에 대한 내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여기에 실은 사진들은 PC방에 구경하며 주로  http://www.trekearth.com에서 가져온 사진들이다. 목숨을 걸고 찍은 그들의 노고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나는 원래 남의 사진을 싣지 않는 데, 우수아이아를 가지못한 안타까움과  공개된 명작의 기쁨을 독자여러분과 나누고자  "내 마음의 우수아이라"란 제목으로 이 사진들을  감히 이곳에 싣는다.

 

 

 

♣ 내 마음의 우수아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