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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의 포구, 푸에르토 델 암브레

찰라777 2008. 6. 19. 19:13

굶주림의 포구, 푸에르토 델 암브레

 

 

▲굶주림의 포구, 푸에르토 암브레. 이곳에 도착한 항해자들은 거의가 굶어 죽었다.

 

 

푸에르테 불네스에서 나와 해변을 따라간다. 갈매기가 길을 인도한대로 도착한 곳은 푸에르토 델 암브레(Puerto del Hambre)이란 조그마한 항구다. 항구에는 낡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자동차를 파킹하자 어디선가 개들이 우르르 몇 마리나 모여든다. 개들은 굶주린 듯 로시난테의 주변을 코를 킁킁 거리며 빙빙 돈다.

 

"개들이 사납게 생겼군요. 차에서 내리기가 겁이 나는데요?"

"괜찮아, 이 용감한 돈키호테가  옆에 있지 않소."

 

다행히 개들은 사람을 물어 뜯지는 않았다. 푸레르토 델 암브레는 '굶주림의 항구(Port Famine)'라는 뜻이다. 마젤란해협에는 스페인이 이 지역을 개척했던 슬픈 역사가 남아있다. 바로 그 역사가 이곳 푸에르토 암브레 항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포트패민 포구에 도착하자 굶주린 개들이 여기저기서 달려 들었다. 

 

 

1580년 마젤란 해협까지 왔던 스페인 장군 '페드로 사르미엔토 데 감보아'는 대양을 제압하려는 전략에서 마젤란 해협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펠리페 왕에게 마젤란 해협을 장악하기 위해 요새를 지을 것을 제안했다.

 

스페인은 당시 자주 출몰하던 영국 해적에게 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1584년 3월, 그는 마젤란 해협 북쪽 해안 두 곳에 요새를 짓고 사람을 살게 했다. 그러나 두 곳 다 거친 자연환경과 함께 원주민의 공격이 잦아 사람이 살기 힘들었다.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려 거으 다 죽고 말았다. 

 

 

 

▲굶주림의 항구에 몰려든 갈매기와 낡은 어선들

 

 

1586년부터 1588년에 걸쳐 역사상 세 번째로 세계를 일주했던 영국 항해가 이자 해적인 토머스 캐번디시는 마젤란 해협을 지나가면서 사람이 살았던 두 곳 가운데 하나였던 '킹 돈 펠리페'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한 사람을 구조했다.

 

는 그곳을 '사람이 굶어 죽은 포구'란 뜻으로 '포트 패민'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은 칠레 정부가 세워 놓은 표지판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또 그 근처에는 마젤란 해협에서 죽은 영국선원들의 묘지가 있다. 다윈이 다녀간 다음인 1840년 이곳은 칠레 영토가 되어 요새가 건설되었다.

 

"돌아갈 때는 제가 운전을 하면 안 될까요?"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나 되었는데?"

"사실은 면허만 따고 실습을 한 두 번 밖에 하지 않았어요."

"여보, 자동차도 없는 데 한 번 해보라고 하지요."

"흠… 아직 운전면허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겠는데……"

 

 동행한 정군이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직 운전면허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텐데, 아내의 간곡한(?) 권유도 있고 하여, 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로시난테의 고삐(핸들)를 정군에게 넘겨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몇 미터도 가지 못하고 자동차를 도랑에 처박아 넣고 말았다.

 

"아이쿠, 이런! 그러니까 아무나 로시난테를 운전하는 게 아니라고."

 

그는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엑셀을 밟아 버렸던 것. 마젤란 해협의 바다가 지척에 있어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다. 다행히 그는 핸들을 반대편으로 돌려 육지 쪽의 작은 도랑에 빠졌던 것. 나는 정군에게서 핸들을 뺏어 겨우 도랑에 빠진 로시난테를 도로 위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사진 : 굶주림의 항구에 세워놓은 표지판)

 

"하마터면 '굶주림의 포구'에서 우리 세 사람 모두 물귀신이 될 뻔 했구먼."

"죄송합니다. 대신 한국에 돌아가면 제가 두 분을 암벽 타기를 도와드려 인수봉 꼭대기까지 올려 드릴게요."

 

아서라, 아서. 인수봉 꼭대기는 올라가지 않아도 되니 제발 다시는 운전을 하겠다는 말만 하지 말라고. 우린 다시 파타고니아의 야생화에 한 참이나 취해 있다가 늦은 밤에야 마뉴엘의 집으로 돌아왔다.

 

 

 

▲끝없이 펼쳐진 야생화 군락과 대륙의 길이 끝나는 도로. 멀리 보이는 섬이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이다.  

 

 

 

-파타고니아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