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

찰라777 2008. 6. 9. 00:46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고 했지...

 

 

 

"와, 저 노란 꽃이 무슨 꽃이지요?'

"칼라파테 꽃이야."

"칼라파테? 무슨 영화 이름같군요."

"저 열매를 먹으면 다시 파티고니아에 온데..."

"정말이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그럼 우리 하나씩 따 먹어요."

"아주 몇 개를 따 먹지. 그래야 여러번 올게 아닌가."

"에그, 정말 한 번만이라도 더 왔으면 좋겠어요."

"그 열매가 당신의 소원을 꼭 들어줄거야."

 

 

▲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칼라파테 꽃과 열매

 

 

밀로돈의 동굴을 빠져 나와 숲 속을 걷는데 노오란 칼라파테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파타고니아 전설에 의하면 이 꽃의 열매를 먹으면 다시 파타고니아에 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내와 나는 마치 기도를 하듯 설익은 칼라파테 열매를 따 먹었다. 정말 이 열매가 다시 이 곳에 오게 해줄까? 암튼 전설의 열매를 먹었으니 파타고니아 바람의 신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겠지. 

 

밀로돈의 동굴에서 다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데니카(Danica) 호스텔로 들어가니 호스텔 주인 Danoca가 웃으며 반긴다. 데니카 민박집으로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은 소박한 호스텔이다. 그리고 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듯 이야기를 한다.  

 

"초이, 저기, 코레아 프렌드."

 

 

 ▲ 인구 17,000명의 푸에르토 나탈레스 거리.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전진기지다. 

 

 

눈치로 보아서는 한국인이 와 있다는 말이다.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저녁을 지어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정말 나랑 비슷하게 눈이 찢어진 한국인 청년 한 사람이 식탁에 외롭게 앉아있다. 반갑다. 이런 오지에서 동포를 만나다니. 특히 아내가 정색을 하며 반긴다. 한국말에 얼마나 배가 고팠던 아내인가!

 

정용문. 그는 한국을 떠나 온지 10개월째라고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 기념으로 세계 일주를 떠나왔는데 아내가 먼저 귀국을 해 버렸다는 것. 장모님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산티아고에서 아내를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파타고니아를 홀로 여행을 하고 있단다. 그는 원래 암벽을 타는 등산전문가였는데 어느 날부터 여행이 좋아져 이렇게 세계 일주까지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늘 눈가에 웃음을 짓는 그의 인상이 너무 좋아 아내는 마치 반가운 사위를 만난 듯 좋아한다.

 

여행을 다니면서는 그의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했다는데, 정작 아내가 곁을 떠나고 나니 너무나 심심해져서 여행도, 먹는 것도 별로 흥미가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아내가 곁에 있을 때에는 제발 좀 따로 떨어져 혼자 홀가분하게 여행을 좀 할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었는데, 막상 아내가 떠나고 나니 그녀가 없는 여행은 알맹이가 통째로 빠져 버린 것 같아 김이 빠지고 여행이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 그렇지 부부란 알콩달콩 싸우면서 정이 드는 거야.

 

우리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좀 사다가 구어 먹기로 했다. 육체노동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영양보충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다. 데니카가 가리켜 준 정육점으로 가는데 정군이 따라 나섰다. 심심하던 차에 우리 부부를 만나니 마누라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는 것. 푸줏간에서 남미 산 소고기를 사들고 호스텔로 오는데, 오마이 갓! 또 한사람의 한국인이 거기에 와 있질 않은가!(▲세상끝에서 만난 한국인 미스터 정)

 

더구나 그는 한 달 전에 페루 쿠스코와 티티카카에서 만난 이군이었다. 참 세상 정말 좁군. 세상의 끝에서 그를 다시 만나다니. 이군 역시 홀로 세계 일주를 다니고 있는 여행광이다. 암튼 내가 고기를 사오자, 정군이 포도주 한 병을 샀고, 이군이 쌀밥을 지어 가져왔다.

 

우리는 정말로 우연히 다시 만나 소고기에 쌀밥에 포도주 잔을 기우리며 여행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말이 이렇게 편한데… 만날 잘 알아듣지도 말을 할 줄도 모르는 슬픈 외국어에 시달리며 여행을 다니다니… 더구나 남미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아내는 세상의 끝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고기가 물을 만난듯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밤이 지지 않는 세상의 끝에서 붉은 포도주 잔을 마주치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마다 독특한 여행담을 신나게 늘어놓는 우리들은 마치 자신들만의 왕국을 꿈꾸는 몽상가들처럼 보였다. 모두가 긴 여행길에 만고풍상을 겪은 지친 모습이지만 눈빛 하나만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군과 이군은 아직 파이네 국립공원 투어를 하지 않아서 며칠 이 곳에 더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정군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보고 피츠로이 산을 등반을 할 예정이란다. 그리고 다시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데 그가 묵었던 호스텔 가리켜 주며 인연이 되면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이군은 원래 말이 별로 없는 여행자인데, 그는 이곳에 머물다가 리오갈레고스로 가서 우수아이아로 갈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그는 항상 목적지를 유보한 여행자였다. 말하자면 발길 닿는 대로 그때그때 때와 장소에 따라 여행을 즐기는 방랑객이라고나 할까? 쿠스코에서도 스페인어를 배우며 그냥 호스텔에 죽치고 있던 그였다.(▲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와준 민박집 주인 데니카 아주머니)

 

다음 날 아침 우린 푼타아레나스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데니카가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며칠 머무는 동안 정이 들었던 것. 데니카와 이별의 포옹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을 하자 데니카가 손을 흔든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린다. 그녀가 점점 멀어져 간다.

 

"데니카 잘 있어요."

"꼭 다시 한 번 오세요."

"칼라파테 열매를 먹었으니 평생에 한 번은 다시올거야."

"굿 바이~"

"바이~바이~"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온다고 했지

 

바람의 신이 데려다줄까?

파타고니아에 강한 바람이 분다.

 

땅에 바짝 엎드린 너도밤나무가

여인의 머릿결처럼 바람에 휘날린다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고 했지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고 했지…

 

 

-파타고니아에서 글/사진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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