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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향기 그윽한 백담사의 가을

찰라777 2009. 10. 17. 22:24

시인의 향기 그윽한 백담사 

 

▲곱게 물든 설악산 백담계곡의 단풍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사랑, 만해-  

 

가을이 오면, 나는 설악산 백담계곡의 단풍나무 숲길이 그립다. 그곳에는 오색찬란한 단풍과 기암괴석, 수정처럼 맑은 수백 개의 소沼, 그리고 자연이 그려낸 아름다운 수채화가 담潭 속에 드리워진 채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단풍이 어디 백담계곡 뿐이겠는가? 천개의 기암괴석 부처를 닮은 천불동 계곡, 설악산의 등뼈 공룡능선, 오색 눈부신 주전골과 하늘 선녀들이 목욕을 한다는 12선녀탕…. 설악산은 그 어느 곳을 가나 단풍의 비경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그리움의 시인 만해의 향기가 그윽한 백담계곡에 타오르는 단풍 

 

그러나 그 어떤 곳보다도 백담계곡의 단풍나무 숲길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직도 가슴 뜨거운 시인의 숨결이 그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노래한 만해 한용운. 그렇다!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세상의 온갖 그리운 것들이 다 님이 되어 아픈 가슴에 찬란하게 맺혀 오는 계절, 그래서 나는 10월이 오면 그리운 님들을 만나러 백담계곡으로 가야만 한다.

 

10월 11일 일요일 12시, 용대리에 도착하니 만원사례다. 공영주차장은 물론 골목골목마다 자동차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다. 흠, 서울에 있는 자동차가 다 이리로 왔나? 교통이 마비된 용대리 길에서 넋을 잃고 있는데 어느 노인이 다가온다.  

 

▲휴일 용대리 주차장은 초만원이다. 주차공간이 없어 옥수수 밭에 겨우 차를 세웠다.  

 

주차를 하려면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 자동차를 겨우 옆으로 빼서 그를 따라 갔다. 골목을 끼어 노인을 따라가니 옥수수 밭이 나온다. 옥수수 밭에 겨우 주차를 하고 한숨을 돌린다. 황태국으로 점심을 먹고 난 후 백담사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타러 갔다.

 

셔틀 버스를 타는 길이 길게 늘어 서 있다. 많이도 변했다. 전에는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8km의 흙길을 전에는 늘 걸어서 다녔다. 지금은 도로에 시멘트가 깔리고, 셔틀버스가 다닌 뒤부터는 초입의 걷는 운치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유명한 용대리의 백담순두집에서 고소한 순두부와 황태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하산하는 등산객과 숨바꼭질을 하듯 버스는 계곡을 더듬듯 기어간다. 드디어 확 트인 계곡에 고래 등 같은 백담사의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엔 징검다리를 건너가거나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갔는데 '수심교修心橋'라 거대한 다리가 계곡을 가로 막고 있다.

 

“나는 나룻배/당신은 行人/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엷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백담계곡은 나룻배 행인 대신 괴물처럼 생긴 수심교에 등산객이 단풍처럼 수를 놓고 있다.

 

경내의 만해 기념관 앞뜰에는 ‘나룻배 行人’이라는 시비가 행인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시인은 흙발로 물살이 급한 이 여울을 건너갔으리라.

 

그러나 대청봉에서부터 100개의 소沼가 있는 자리에 세워진 유서 깊은 백담사에는 언제부터인가 수심교가 괴물처럼 여울을 가로 지르고 있어 이제 시인의 노래처럼 나룻배 행인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나룻배 행인 대신 수심교에는 버스를 타려는 등산객들의 줄이 꼬리를 물고 저 멀리 백담사까지 늘어 서 있다. 버스를 타는 데 2~3시간을 저렇게 서서 기다려야 한다니 기가 막힌다. 좋게 보면 형형색색으로 옷을 입은 등산객들의 움직임이 단풍처럼 보이기도 하다.  

 

 

 

백담사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계곡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돌탑들이 여기 저기 똬리를 틀고 서 있다. 저마다 무슨 소원을 담고 있을까? 돌탑이 세워진 계곡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니 역시 아름답다. 

 

 

▲100개의 소가 있는 자리에 세워진 백담사. 계곡에는 중생들이 세운 돌탑이 저마다 소원을 담고  있다.

 

다리를 건너 수렴동계곡을 오른다. 길은 하산을 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저마다 스틱을 들고 황급히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군대의 행렬 같기도 하고, 두 개의 스틱을 들거나 배낭에 꽂은 모습은 검객들의 모습을 연상케도 한다. 좁은 길에서는 자칫 잘 못하면, 발에 걸리거나 스틱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님의 침묵은 사라지고 등산객의 발자국 소리와 먼지만 가득한 길. 시인은 백담사와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이 숲길을 오가며 도道를 깨쳤다. 그리고 나라와 겨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노래했다. 그것이 바로 ‘님의 침묵’에 실린 88편의 작품이다.

 

▲대청봉에서 100개의 沼 아름다운 백담계곡 풍경

 

등산객들의 군무 속에서 시인의 소리를 듣는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거기,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그리움을 안고 떠난 시인의 ‘그리움’이 아직도 뜨겁게 느껴진다.

 

 

아아, 저 색깔! 정말 해도 너무 하군요! 함께 동행을 일행들은 단풍나무의 고운 빛깔에 취해 탄성을 연발한다. 아기 손바닥처럼 갈라지는 단풍나무 잎새 모두를 책갈피에 끼워두고 싶단다. 유독 단풍나무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은 동행자들에게 나는 단풍나무 숲 해설을 시작한다.

 

단풍나무는 당단풍, 좁은 잎단풍, 고로쇠나무, 신나무, 복자기나무, 산겨릅나무, 설탕단풍 등 그 종류만도 무려 30여종에 이른다. 그러나 설악산에 자라는 단풍나무는 거의가 당단풍나무이다.

 

 

단풍나무는 대부분 잎의 모양을 보고 구분하는데, 당단풍나무는 잎이 아홉 개에서 열한갈래로 갈라지고,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색깔이 다른 단풍나무에 비해 유난히 곱다. 설악산의 단풍이 유난히 곱게 보이는 이유도 당단풍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단풍나무는 왜 붉게 물드는 것일까? 이는 날씨가 차가워지면 잎의 생활력이 쇠약해져 빨강 색소인 화청소가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단풍나무 꽃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것은 단풍나무 꽃이 너무 작아 않아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긴 타원형의 날개를 가진 2개의 열매가 수평으로 마주하며 달린다. 날개를 가진 열매는 떨어질 때 마치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회전하며 땅에 떨어져 씨앗을 번식시키며 생존한다. 기가 막힌 나무의 생존 방법이다!

 

단풍나무의 일종인 우리나라의 고로쇠나무는 위장병에 좋다하여 해마다 수액을 짜내는 바람에 수난을 겪고 있다. 허지만 캐나다의 국기인 설탕단풍도 그 수액을 채취하여 매플시럽maple syrup이란 것을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

 

 

단풍나무 목재는 재질이 매우 강하여 가마, 배의 키, 바이올린 뒤판, 스키, 테니스 라켓, 볼링 핀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예부터 가뭄이 들 때 단풍나무 토막을 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기 내렸다하여 신목으로 간주되었으며, 서양에서는 지하수 수맥을 찾는 다이빙 로드diving rod로 사용하기도 한다니 과연 단풍나무의 신통력은 대단하다.

 

  

사실 단풍나무는 매우 신비한 에너지 파장을 가지고 있어 명상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단풍나무 에너지는 사람의 표현능력을 증가시켜 필요 없는 고집과 적대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그래서 단풍나무 아래서 주기적으로 명상을 하면, 삶 속에서 매 순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를 받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끌어내는 방법들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

 

 

단풍나무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다 보니 어느새 오세암에 도달한다. 오세신동! 뒤쪽으로는 관음봉, 우측에는 만경대, 좌측에는 공룡능선, 앞쪽으로는 용아장성능이 에워싸고 있는 오세암은 과연 오세신동이 나올 법도 한 명당처럼 보인다.

  

한 때 백담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시인 만해는 이곳에 머물며 불도에 정진했다. 시인은 떨어지는 물체의 소리를 듣고 도를 깨쳤다고 한다. 오세암 중앙에는 오세신동이 조롱박을 들고 감로수를 따라주고 있다. 오세신동이 따라준 약수를 한 사발 쭉 들이켰다. 어, 시원해!

 

 

설악의 가을 해는 짧다. 단풍도 기암괴석도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동자전에 들어가 천진무구한 동자의 미소를 친견하노라니 비시시 웃음이 나온다. 세상을 늘 저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도인이게? 찬물에 발을 씻고 누우니 곧 잠에 떨어지고 만다.

 

 

☞맛집소개

●백담순두부(전화 033-462-9395)-용대리 백담계곡 초입 다리건너 왼쪽집

 

내설악 백담계곡을 통해 대청봉을 오르려 하거나, 반대로 대청봉에서 백담계곡으로 내려올 때 가볍게 식사겸 해장을 할 수 있는 맛 집이 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 초입, 다리를 건너자 마자 우측에 계곡을 끼고 돌로 지어진 '백담순두부'집이다. 1989년도 백담계곡에서 처음 개업을 한 식당인 이 집은 이곳에서 생산된 콩으로 주인이 직접 만든 순두부와 된장 맛은 일품이다. 또한 자체덕장에서 말린 황태요리도 순두맛 못지않게 맛이 있다.

당초 이 집 바깥주인은 전자공학을 전공하였고, 안주인은 연대 음대출신의 첼리스트였다고 한다. 이런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는 부부가 산간오지에서 어째서 '두부집'을 열개 되었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그저 山을 좋아하는 등산광이다보니, 70년대초에 이곳에 눌러 앉게 되어버렸다는 것.

  

 그러던 중 백담사를 드나드는 고승이자 기승인 서울법대출신 혜수(慧修)란 스님을 만나 불가에서 전수되어 오는 두부제조비법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담사 입구에는 전에는 거의 백담사 소유의 밭으로 되어있었으며, 마을사람들이 주로 콩을 심어 경작을 하였다고 한다. 혜수스님은 이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백담계곡의 차디찬 샘물에 담갇었다가 백담사를 찾아드는 불자들에게 두루 그 맛을 즐기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 이집 주인 정경림이 스님의 두부제조에 조수처럼 참여하여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게기가 되어 그가 순두부집을 내게되었다는 것. 특히 이 순두부집에서는 설탕, 소금, 화학조미료 이른바 3白을 직접적으로는 절대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설탕대신 감초나 엿을 고아쓰고, 소금대신 최고의 한국산 영양콩으로 담근 간장으로 맛을 내며, 화학조미료를 쓰지않는 다는 것.

두부 이외의 쌀밥도 자작으로 벼를 심고 농약을 주지않는 쌀로 밥을 짓는다고 한다. 아침에도 일찍 문을 열어 해장겸 아침식사를 할 수 있으며, 겨울철에도 종일을 문을 열어 겨울산행전후에도 구수한 순두부에 싱싱한 쌀밥으로 속풀이를 할 수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각종 나물과 해산물도 맛갈스럽다.

이번 산행시에도 동료들과 함께 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갔는데, 옛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좋았고, 일행  모두들 입을 모아 찬사를 아끼지 않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