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epal

끝없는 억새 밭-소년부처 람 봄존이 태어난 곳

찰라777 2010. 12. 27. 08:55

   세상의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된 잘못된 생각의 힘이 조작을 해내고 있다. 전쟁, 전쟁의 도구들, 전쟁의 야만성, 살인,  폭탄 테러, 인질극, 시기, 질투, 사랑의 고통도 모두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 생각, 생각... 헛된 생각의 시간을 멈춰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멈출 것인가?

그것은 명상이다.

네팔 라트나푸리 지역의 끝없는 억새밭을 지나며 명상에 잠겨본다. 이곳은 얼마전 소년부처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람 봄존의 고향이다. 그는 10개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보리수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있다가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곳은 평화가 깨졌다"란 말을 남기고 더 깊숙한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

 

네팔은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팔엔 8000m급 히말라야가 8개나 있는가하면, 인도국경으로 가까이 가면 푸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기도 한다. 좌측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세계의 지붕 네팔은 3000m 이상의 산(갈색)과 1000m이상의 언덕(푸른색-네팔 사람들은 3000미터 이하는 언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1000미터 이하의 평야지대로 나누워진다.

  

네팔 동부 일람 차밭을 출발한 버스는 인도국경 근처에 펼쳐진 끝없는 들판을 덜컹거리며 달려간다. 버스가 어느 강가에 다다르자 한없이 넓은 억새밭이 나타난다. 일행들 모두가 "와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버스를 잠시 멈추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가냘픈 억새가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거린다. 일행들 모두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억새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 생애 이렇게 넓은 억새밭은 처음본다.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자연물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사람이 아닌가? 약간의 증기, 한 방울의 물도 하나의 갈대를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매우 연약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자기의 죽음이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강한 존재보다 숭고하다. 강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나, 이를 지켜보는 여행자들 모두가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사람의 존재인 여행자들은 억새밭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르다. 그냥 무심코 보는 사람, 시심이 떠 오른다는 사람,  억새밭을 걷고 싶다는 사람, 갈대밭에서 명상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 생각은 각자의 몫이다.

  

▲네팔 동부에서 치트완으로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 평원

 

억새밭을 지나자 이젠 사라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라나무 숲을 지나며 일행들은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여행은 때로는 침묵의 시간을 가져서 좋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쉬어가는 침묵이 절대로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은 그런 시간을 주기도 한다. 여럿이 때거지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홀로, 혹은 둘이서 하는 여행은 침묵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생각이 지어낸 침묵이 아닌, 두 소음 사이의 침묵이 아닌, 전쟁과 전쟁 사이의 고요가 아닌, 질서의 고요가 그 침묵 속에 있다. 그 침묵, 그 고요 속에 진리가, 이르는 길이 없는 '참'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시간이 없는, 거룩한 불멸의 진리는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명상이다. 인도의 사상가 크리슈나무르티가 한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컴퓨터처럼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생각하고 활동한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생리적으로,  언론적으로, 그리고 지능적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가고 있다. 컴퓨터는 이미 정밀성과 정확성에 있어서 사람의 사고를 앞질러 가고 있다. 컴퓨터가 모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 병원의 데이터, 정부의 행정자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우주를 측량하는 힘 등 컴퓨터 없이는 인간은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동차와 배, 기차, 비행기 등 움직이는 물체도 모두 컴퓨터에 의해서 자동 제어 되거나 움직인다.

 

 

 

 

컴퓨터 같은 기계가 판을 치고 있는 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불멸의 음악가는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분에서 탁원한 발명과 음악, 예술, 사상을 펼쳐왔던 인물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종교적으로도 붓다나, 예수, 공자나 마호메트 같은 큰 인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컴퓨터와 기계문명의 발달이 침묵의 시간을 뺏어간 탓일까? 침묵의 시간, 즉 진정한 명상의 시간이 없는 한 위대한 인물의 탄생은 불가능 한 것일까?

 

지금 현대 인간들은 모두 빌 게이츠가 발명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서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는 컴퓨터형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영국인도, 인도인도, 러시아 인도, 북한사람들도.... 점점 모두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스찬도, 불교도들도, 힌두교인들도 점점 컴퓨터로 프로그램화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우리는 지금 엄청난 위기에 처해있다. 사회 각부문에서 컴퓨터란 생각의 그물에 휘말려 허덕이고 있다. 원자폭탄이 도처에 널려 있고, 어떤 미치광이가 핵폭탄을 언제, 어느 곳에 터트릴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심리적 공포, 욕구,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생존이 그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않고, 근심걱정, 불안 초조, 불확실성, 절망, 외로움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질투와 탐욕, 선망과 고통, 이기주의에 파 묻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혀없어져 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된 잘못된 생각의 힘이 조작을 해내고 있다. 전쟁, 전쟁의 도구들, 전쟁의 야만성, 살인,  폭탄 테러, 인질극, 시기, 질투, 사랑의 고통도 모두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 생각, 생각... 헛된 생각의 시간을 멈춰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멈출 것인가? 그것은 명상이다.

 

 

 

 

여행자들은 이 움직이는 자동차를 타고가며 여행이 주는 풍경에 따라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거기에 비어 있는 명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을 생각하는 나 자신이 우스꽝스런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네팔의 명상소년인 람 봄존(Ram Badadur Bomjon)이 태어난 곳입니다" 아식이 침묵을 깨면서 람 봄존의 존재를 알려왔다. 나는 몇년전 신문과 TV에서 보았던 명상소년 람 봄존의 모습을 애써 떠올려 보았다. 이곳 라트나푸리(Rantnapru)는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와도 그리 멀지않는 지역이다.

 

 

▲10개월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명상을 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네팔 명상 소년

람 바하더르 봄존(Ram Bahadur Bomjon). 우리는 그가 명상을 하고 있다는 란탄푸르 숲을 지나갔다.

 

 

"람 봄존은 2005년도에 이 지역 보리수 나무 아래서 10개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명상을 했던 곳입니다."

 

소년부처 알려진 람 봄존, 그는 2005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보리수 나무 아래서 몇 개월 동안이나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던중 2006년 3월 자신이 수행하던 곳에 인파가 몰려들자 "평화가 사라졌다. 6년 뒤 나타나겠다"며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겠다"는 말을 남긴채 홀연히 사라졌다.

 

람 봄존은 명상에 들어가기전에 6년 후에 깨어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봄존의 수행과정은 붓다와 비슷하다는 점이 증폭되고 있다. 소년이 명상하고 있는 이곳으로부터 250km 떨어진 인도의 보드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서 붓다는 6년 고행을 멈추고 49일 동안 수행한 뒤에 득도를 했다.


그런데 6년 뒤에 나타나겠다던 람 봄존은 사라진 뒤 1년여만에 이곳 정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침묵을 깨고 1만여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평화와 차별 철폐"에 대하여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5년 째 명상을 하며 가끔 나타나 연설을 하고 있다. 6년 뒤에 나타나겠다던 그가 침묵을 깨고 1년만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라트나푸리 정글은 많은 사라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억새밭과 사라나무, 그리고 소년부처 람 봄존, 네팔 남부평원을 여행하는 동안 사색의 정글은 멈추지않고 있다. 생각을 멈춰야 하는데 생각이 마구 뒤엉켜서 그물을 만들고 있으니, 속세의 틀에 갇힌 중생은 별수 없나 보다. 그래도 나는 하루에 단 1분만이라도 가부좌를 틀고 침묵의 명상을 해보자는 결심을 한다. 생각이 멈춘 자리, 그 고요 속에 진리가 있고, '참'이 있다.

이윽고 버스가 치트완국립공원에 도착을 하자 태양이 숲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2010.10. 12 명상 소년 <람 봄존>이 명상을 하고 있다는 네팔 남부 란탄푸르 숲을 지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