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여보 우리 완전 대박 났어요! -쑥차와 버섯

찰라777 2012. 4. 23. 06:58

 

 

실로 오랜만에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기상대 발표를 보니 연천지역에 어제(4월 21일) 43mm, 그리고 오늘 24mm가량의 비가 내렸다. 봄비는 온 산천을 적시고 있다. 메마른 대지에, 임진강물위에, 댓돌위에, 마당 잔디에, 지난주 내내 땀을 흘리며 일구어 놓은 집 뜨락 채마밭에… 그리고 내 마음 속까지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 봄비는 온 산천을 촉촉이 적셔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이번 봄비는 그냥 조용하게 내리지 않았다. 강풍을 동반한 바람이 대지를 요란하게 흔들어 깨우며 내리고 있다. 바람은 잠든 새싹을 깨우고, 땅속의 씨앗을 깨우고, 임진강 물 속의 물고기들을 살랑살랑 깨워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촉촉이 젖어든다. 바람 불어 대지의 속옷까지 흥건히 젖어든다. 봄비에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젖어든 나는 흥분과 기대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좀 멎으면 밖으로 나가 보아야지.

  

▲ 봄비를 맞고 임진강변에 자라난 물쑥

 

오후가 되자 그렇게도 심하게 온 세상을 흔들어 깨우던 바람이 언제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방안에 틀어 박혀 있던 나는 아내와 서울에서 온 큰 아이 영이랑 함께 우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손에는 각자 비닐봉지 하나와 나물 캐는 칼 하나씩을 들고서. 아내는 비가 그치기만을 잔뜩 벼르고 있었다.

  

"부드러울 때 조금이라도 쑥을 더 캐내야 해요."

 "그렇긴 해. 그 맛있는 쑥국과 쑥차를 만들려면."

 "당신도 맛있다고만 하지 말고 함께 쑥을 캐러 가요."

 

 

 ▲ 길섭에서 이슬비를 맞으며 쑥을 캐는 아내와 영이

그렇게 해서 칼을 든 우리 삼총사는 옆에 비닐봉지를 하나씩 채우고 이슬비를 맞으며 쑥을 캐러 나갔다. 쑥은 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 여기저기에도 있었다.

 

 

"여보, 저기 좀 봐요. 잔디가 벌써 파래졌어요!"

 

"히야, 정말이네!"

 "잔디 자라는 소리가 쑥쑥 들리는 것 같아요!"

   

▲ 이틀간 내린 봄비로 촉촉이 젖어 금방 파래진 잔디밭.

잔디가 쑥쑥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잔디가 갈색으로 누리끼끼 했었는데, 하루 사이에 이렇게 파랗게 자라나다니 자연의 힘은 정말 놀랍다. 봄비에 대지가 온통 젖어들기 시작하더니 온 집안이 파란 싹으로 뒤덮여지고 있다.

 

지난주에 채마밭에 뿌린 씨앗들도 일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있다. 상치, 감자, 강낭콩, 그리고 나팔꽃, 분꽃, 채송화 씨들이 발아가 되어 여린 떡잎들이 젖은 땅을 뚫고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있다. 앞뜰에 심어 놓은 꽃잔디, 제비꽃, 돌단풍, 괭이밥, 수선화, 국화, 원추리 등 야생화도 함초롬히 물을 머금고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 대지를 맹렬히 밀고 올라오는 여린 떡잎

 

섬진강에서 옮겨온 블루베리도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금붕어 입처럼 앙증맞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지난번 구례 수평리 마을 혜경이네 집에서 가져온 영산홍도 분홍빛 미소를 잔뜩 머금고 웃고 있다.

 

 

 

"영이야, 아빠랑 빨리 와 봐라!"

 

"왜?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아빠랑 빨리 와 보기나 해."

 

 

 

▲ 이틀간 내린 봄비로 송이송이 열린 참나무버섯. 올래 참나무버섯은 안전 대박이다!

 

뒤뜰로 돌아간 아내가 거의 까무러지는 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쑥은 뒤뜰에도 무성하게 돋아나 있었는데, 무슨 일이지? 혹 저혈당 증세라도 일어났나? 앞뜰에서 쑥을 캐던 영이와 나는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는 아내의 소리에 황급히 뒤뜰로 뛰어갔다.

  

"여보, 우리 완전 대박 났어요!"

 "뭐? 대박?"

 "그래요. 여길 좀 봐요."  

 

아내는 덮어둔 검은 멀칭비닐을 벗겨내고 우산처럼 무성히 자라난 참나무 버섯을 가리켰다. 우와! 이런! 이렇게나 많이 자라다니! 영이와 나는 우산처럼 송이송이 자라난 버섯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정말 열려도 너무 많이 열렸다.

   

 ▲ 섬진강에서 옮겨온 참나무 버섯에 대박이 열렸다!

 

 

▲ 썩은 참나무 몇토막에서 두 광주리나 따낸 버섯 대박

 

이 참나무 버섯나무는 작년에 우리가 살았던 섬진강 수평리마을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년 봄 우리는 개구리집 부부와 함께 남해 거금도 송광암에 갔다가 주지스님한테서 참나무 버섯 몇 토막을 얻어왔었다. 우리는 작년 가을에도 제법 참나무 버섯을 따서 먹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작년에 비해 월등히 많은 버섯이 열렸다. 종균을 심어 놓은 지 2년 반 정도 되는데 비가 오자 이렇게나 많이 자라난 것이다. 우리는 쑥을 캐는 것을 제처 놓고 참나무 버섯을 따기 시작했다.

   

썩은 참나무 몇 토막에서 자그마치 두 바구니나 버섯을 따 내다니, 이건 정말 대박중의 대박이다! 참나무 버섯을 따서 방바닥에 말려 놓으니 엄청 부자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방바닥에 버섯을 말려 놓고 다시 쑥을 캐러 밖으로 나갔다.

 

▲ 봄비를 함초롬히 머금고 있는 제비꽃.

봄비가 내린 임진강변은 야생화 천국으로 변해 있다.

 

 

  ▲ 살며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괭이눈

 

임진강변은 쑥 천지다. 발밑에 걸리는 것이 쑥이다. 비가 내린 산천에는 벚꽃이 팝콘처럼 퍽퍽 터져 나오고, 노란 개나리가 색동옷을 입고 살며시 보조개를 짓고 있다. 주상절리 적벽에는 돌단풍, 진달래, 봄맞이, 제비꽃, 괴불주머니꽃…봄꽃들이 부지기수로 피어나고 있다. 봄비가 내린 임진강변은 야생화 천국으로 변해 있다.

 

봄비에 젖어 흥분한 대지는 속수무책으로 꽃을 피워내고 있다. 꽃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기야 때를 놓치면 꽃은 피지 못한다. 모든 만물은 꽃을 피울 시기가 있다.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때가 왔을 때 꽃을 피워야 한다. 때를 만난 벌과 나비가 활개를 치며 날고 있다. 아, 무한한 대지의 생명력이여!

 

 

▲쑥을 캐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이슬비에 흥건히 젖어든 우리 삼총사는 비닐봉지에 가득 찬 쑥 봉지를 들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영이는 쑥을 정성스럽게 다듬어 버섯을 말려놓은 자리 옆에 잘 펴서 널어놓았다. 아주 부드러운 어린 쑥은 쑥차를 만들고, 조금 큰 것들은 쑥국을 끓여 먹을 것이다.  

 

▲ 캐온 쑥을 다듬고 씻어서 방바닥에 말렸다.

 

저녁 밥상에 쑥국이 올라왔다. 쑥을 살짝 데쳐 들깨가루와 된장을 풀어 넣은 쑥국 맛이 기가 막히다. 쑥향이 가미가 되어 입맛을 돋구는 쑥국이 입에서 살살 녹아났다.

  

"이거, 셋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르겄는디."

"호호, 죽지는 말아요. 살아 숨 쉰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축복이니까요."

"하하, 허긴 그렇지. 그런데 방금 뜯어온 쑥향맛이 정말 죽여주는데."

   

▲ 쑥향이 입맛을 돋우는 쑥국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는 지난주에 덖어 놓은 쑥차를 달여서 마셨다. 고소한 쑥차 향이 온 집안을 가득히 채웠다. 쑥의 효능은 만병통치약이라 할 만큼 모든 질병을 다스려 주는 묘약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쑥은 그 맛이 쓰면서 비장, 신장, 간장 등에서 기혈을 순환시키며, 하복부가 차고 습한 것을 몰아내는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쑥은 속을 덥게 하고, 냉을 쫓으며, 습을 없애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쑥국으로 입맛을 돋움은 물론, 쑥차, 쑥뜸, 쑥연기, 쑥조청 등 기호에 따라 쑥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용된다.

  

 

▲ 쑥으로 덖어 빚은 쑥차. 고소한 쑥향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

 

"여보, 오늘 우리 정말 대박이네!"

 

"모두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선물들이에요."

 

"그렇지. 봄비에 젖은 대지는 정말로 위대해."

 

 

우리는 엄청 부자가 된 듯 오후 내내 싱글벙글 거렸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봄비에 젖은 채마밭에 가지가지 채소와 꽃이 자라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대박이 따로 없다. 저 자연이 주는 선물이 바로 대박이다! 행복은 이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게 하는 날이다.

 

봄비에 젖어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자

바람이 생명을 불어넣으며 

만물을 깨워낸다. 

 

봄비에 흥건히 젖어든 대지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속살을 밖으로 드러낸다. 

 

산천은 온통  

꽃으로 뒤덮이고 

물고기는 하늘로 솟구친다.

 

봄비에 젖어든  

만물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오, 위대한 자연이  

선물한 대박이여!

  

(2012.4.22 봄비에 젖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