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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도 떼고 가라? - 여행가방을 챙기며....

찰라777 2012. 4. 26. 00:05

 

아는 것만큼 보인다!

여행배낭을 챙기며…

 

 

눈썹도 떼고 가라?

 

실로 오랜만에 여행배낭(사진-15년 전에 구입한 국산 여행배낭)을 챙겨본다. 2007년 몽골리아 여행을 다녀 온 후로 5년만이다. 아내가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이식까지 하는 바람에 우리들의 배낭여행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회복이 잘되어 다시 여행배낭을 챙기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렇게… 다시 여행배낭을 챙길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분명히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 동안 우리는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살아왔다.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있는 그 자체에 감사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숨을 쉴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먹을 수 있으며, 배설을 할 수 있고, 감촉을 느끼며 두 팔을 움직여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른 모든 자질구레한 불편한 것들은 이렇게 살아 숨 쉬는 모두 감동에 묻혀버린다.

 

 

 

우리에겐 돈이 많아 나보다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나보다 월등히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상대적인 불만을 가질 시간이 없다. 하루를 평생처럼 살아가고픈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길게 사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사람들은 종국에 가서는 모든 가진 것들을 세상에 남겨 놓고 다 어디론가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숨 쉬며 꽃을 감상하고, 산과 들을 거닐고, 강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 : 카메라 필기구를 넣은 작은 가방)

 

 

배낭여행은 ‘눈썹도 떼고 가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깃털처럼 가볍게 하고 떠나야 피곤하지가 않다. 때문에 여행의 고수들은 모두 짐이 가볍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여행 중 필요 한 것이 있으면 현지에서 싼 물건을 구입을 했다가 필요가 없으면 다시 현지인들에게 돌려주고 오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입던 옷에 칫솔 하나를 들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가 다 짐을 싸는 방법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작은 비닐 팩 두 개에다 아웃도어와 언더웨어를 구분하여 넣고 진공청소기로공기를 쪽 빨아내 납작하게 압축시켜(사진) 배낭에 둘둘 말아 넣는다. 바지 두 개, 내의 한 벌, 셔츠 2벌, 언더웨어 2벌, 양말, 재킷 1벌, 융으로 된 아웃도어 1벌, 침낭… 이 전부다. 추우면 이 옷을 다 껴입고 더우면 하나식 벗으면 된다.

 

배낭을 저울에 달아보니 그래도 10kg이 나간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또 3개월 여행이나 15일 여행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여행의 고수는 못 되는 모양이다. 보름이면 한 5kg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복대에 여권, 돈, 항공권을 넣고,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는 허리에 차면되고, 작은 배낭에 책, 수첩, 필기구. 비상약 몇 개를 넣으면 여행배낭 준비는 끝이다.

 

 

배낭도 15년 전에 구입한 구형 배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요즈음은 고어텍스로 신소재를 쓴 신형 가벼운 배낭들이 나와 있지만 턱 없이 너무 비싸다. 이 국산 배낭으로 나는 세계를 두 바퀴나 돌았지 않는가? 좀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배낭과 정도 들고 해서 그대로 쓰고 있다.

 

 

파드마 삼바바의 행적을 찾아서

-두권의 책을 챙겨들고...

 

 

마지막으로 책을 두권 배낭에 챙겨 넣었다. 한권은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이번 여행 중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파드마 삼바바가 쓴 ‘티벳사자의 서’란 책이다.

 

다른 한권은 '파드마삼바바'란 평전이다. 백이제시가 쓴 이 평전은 2003년도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한 책으로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파드마 삼바바는 1,200년 전 티벳왕의 초청으로 히말라야 설산에 둘러싸인 티벳으로 간다.

 

 

 

3년간의 긴 여행 끝에 티벳에 도착한 그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인도에서 가져온 신비의 경전들을 티벳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만년설이 빛나는 설산의 어느 동굴에서 노란 버터기름 등잔아래 100권이 넘는 경전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그 비밀의 책들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아직 세상이 그 내용을 이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비밀의 서를 티벳 전역 히말라야 동굴 속에 한 권씩 숨겨 두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며 몇 명의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전수했다. 그것은 적당한 시기에 다시 육체를 갖고 세상에 환생을 하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후에 그 제자들이 한 명씩 다시 세상으로 환생을 하여 세상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그 경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승 파드마 삼바바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사명이었다.

 

 

이 위대한 사명을 가진 자들을 사람들은 ‘테르퇸’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티벳어로 ‘보물을 찾아내는 자’란 뜻이다. 테르텐들은 파드마 삼바바가 숨겨놓은 경전을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찾아낸 책만 해도 65권에 이른다. 나머지 책들은 아직도 세상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테르퇸인 ‘릭진 카르마 링파’란 제자가 찾아 낸 책이 바로 이 ‘티벳사자의 서’란 책이다. 링파는 티벳 북부지방의 한 동굴에서 이 비밀의 책을 찾아냈다. 릭진은 이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원제는 ‘바르도 퇴돌’이었다. '바르도Bardo'는 ‘둘do 사이bar'라는 뜻이다. 그것은 낮과 밤의 사이, 곧 황혼녘의 중간 상태를 말한다. 곧 이승과 저승의 틈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사후의 중간 시간이다. 그 기간은 49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티벳 사자의 서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타 곰빠Bhutia Busty Gompa)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thos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grol'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을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 번역된다.

 

 

이 책은 티벳 불교 연구의 선구자이며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교수인 에반스 웬츠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는 인도의 북서부 다르질링의 한 사원에서 이 필사본을 구했으며, 시킴으로 건너나 티벳 승려 라마 카지 다와 삼둡의 제자로 입문했다. 라마 카지 다와 삼둡은 영어와 티벳어, 산크리스트어에 능통한 학승이었다.

 

 

1919년 시킴의 강톡에서 이들은 ‘바르도 퇴돌’의 번역을 마쳤다. 그리고 그 초판본을 ‘티벳 사자의 서’라는 제목으로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인쇄되었다. 이 책이 서구세계에 일으킨 반응은 엄청났으며, 당시 대표적인 심리학자인 칼 융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서기 746년 파드마삼바바는 티벳에서 8가지 형상 중의 하나인 도르지 드락포Dorji Drakpo로 변신하여 암 호랑이를 타고 파로 있는 탁상으로 날아왔다. 탁상이란 ‘호랑이 둥지’라는 뜻이다. 탁상에 도착한 파드마 삼바바는 금강저와 신통술로 잡신들을 차례로 조복시키고 100일 동안 명상에 든 뒤에 다시 티벳으로 돌아간다. 후에 티벳의 대 선지식인 밀라레파도 이 석굴에서 오랜 긴간 명상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646년 불세출의 영웅 ‘샤브드롱’은 부탄을 순례하던 중 탁상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 후에 숨겨진 보물인 ‘테르마’를 발견한다. 테르마는 탕통 걀포로 불리는 부탄의 보물로 부탄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파드마 삼바바가 자신이 입멸 후에 불교가 박해를 받을 것을 미리 예견하고 동굴에 숨겨 놓은 비밀의 경전이다. 이 경전은 ‘바르도 퇴돌’과 일맥상통하는 경전이다.

 

 

1692년 파로의 성주였던 ‘기스 텐지 랍게’에 의하여 파드마 삼바바가 명상을 하였던 동굴에 사원이 세워진다. 그 사원이 바로 ’탁상사원‘이다. 따라서 이 번 여행은 모두 파드마 삼바바의 행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들이다.‘바르도 퇴돌’이 발견된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타 곰빠Bhutia Busty Gompa , ’티벳 사자의 서‘가 탄생한 시킴의 갱톡, 그리고 파드마 삼바바가 명상에 잠겼던 탁상사원이 그것이다. 나는 시간이 내서 이 역사적인 현장을 방문할 것이다. 그레서 이 지역을 방문하게 전에 여행을 하면서 '티벳 사자의 서'를 다시 읽고 싶어 두껍고 무겁지만 마지막으로 이책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지 않은가?

 

 

곰치장아찌와 오리고기

 

 

여행배낭을 거의 다 챙겨가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이, 친구야, 여행 짐 싸느라고 바쁘제?”

“바쁠 게 뭐 있나? 그냥 둘둘 말아서 떠나면 그만이지.”

“오늘 점심이나 같이할까? 내가 영양보충을 좀 해주려고 하는데.”

“허허, 거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여기 오리고기 잘하는데 있는데 이리로 올 수 있으면 더 좋고, 시간이 안 되면 내가 그리로 가지.”

“응, 자네가 이리로 와주면 댓 길이지. 여기도 오리고기는 있으니까.”

 

 

신정동에 사는 캡틴 서가 부인과 함께 12시에 봉천역으로 오겠다고 했다. 옆 동네에 사는 응규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도 좋다고 했다. 응규는 11시에 우리 집으로 쇼핑백 하나를 들고 왔다.

 

 

“이거, 곰치나물장아찌야. 마누라가 싸주더군. 여행가서 밑반찬 하라고, 그리고 이건 무공해 유기농 시금치인데 한번 먹어봐 맛이 죽여주거든.”

“허허, 별걸 다 가져왔군. 각하가 좋아하겠는데. 그건 그렇고 우리 없는 동안 연천에 가서 채마밭에 돋아난 귀여운 녀석들이나 좀 잘 돌보아주게.”

“그거야 여부가 있나. 걱정 놓아버리고 잘 다녀오기나 하라고.”

 

 

친구가 좋긴 좋다. 밑반찬을 가져다주고, 영양보충까지 해주니 말이다. 12시에 봉천역 6번 출구에 가니 캡틴 서가 부인과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친구란 언제 만나도 그립고 반가워야 한다. 자주 만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친구는 아니다. 띄엄띄엄 만나도 언제나 그립고 반가워야 한다. 이 친구들은 어떨 때는 1~2년에 1번 만나는 경우도 있고, 한 달에 서너 번 만날 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립고 반가운 막역한 친구들이다.

 

 

각하가 병원에서 좀 늦어 20여분 정도 늦겠다고 전화가 왔다. 지금 강남역이니 먼저 식당에 가 있으면 찾아가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나 친구들은 지하철역에서 좀 기다렸다가 함께 가자고 했다. 밖은 강풍이 불고 비가 내렸다. 요즈음 지하철역에는 앉아서기다릴 수 있는 벤치가 대부분 놓여 있다. 벤치에 앉아 짐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각하가 도착했다.

 

우리는 가야집이라는 봉천역 인근의 오리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미나리가 가미된 오리고기였다.

 

 

“이거 오늘 먹은 오리고기 덕분에 3000미터 고지를 거뜬히 올라 갈 수 있겠구먼. 하하.”

“좀 더 시킬까?”

“아니야 이거면 충분해. 많이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나거든.”

“하여튼 잘 다녀오게.”

“하믄이제, 부탄에서 행복을 배낭에 가득 채워 와서 좀 나누어 줄게. 하하.”

 

 

이 친구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응규가 가끔 막걸리(그는 막걸리 외에는 마시지 않는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곡차라고 하면서)를 한두 잔 마시지만 캡틴 서도 나도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앉은 자리가 짧고 가볍다. 나이가 든 남자들이란 술을 마시게 되면 말이 길어지고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엉덩이가 가볍다. 그래서 이 친구들은 만나서 식사를 해도 2시간 이내로 끝난다.

 

 

나이가 들어 술을 마시게 되면 했던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어 진을 빼게 마련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 낫다. 아무리 친구라도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든 것은 정말이지 지루하다. 점심을 시작한 지 1시 반에 우리는 오리집을 나와 각자가 갈 길로 해어졌다.

 

 

큰 아이가 살고 있는 봉천동 고개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하철 9번 노선을 흑석역에서 타고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전철로 갈아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흑석역에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논스톱으로 가는 방법이다.

 

 

전철로 가면 값이 싸지만 갈아타야 하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리무진은 전철에 비해 값이 몇 배 비싸지만 편하다. 우리는 리무진을 타는 호사(?)를 누리고 인천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젠 그 정도의 호사는 누리며 여행을 떠날 나이도 된 모양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인다는 아내,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부탄으로 가기위해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내 마음은 그저 감개가 무량하다! 오늘의 나와 아내가 있게 해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 짐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 행복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존재한다.

 

(2012.4.26 부탄으로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