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망가진 텃밭을 수습하며...

찰라777 2012. 6. 21. 06:17

텃밭은 심신을 수련하는 도량이다!

 

 

텃밭은 내 마음을 수행하는 도량이다. 수행은 잡생각을 털어내는 일이다. 말하자면 마음을 공하게 하여 근심과 걱정을 덜어 내는 일이다. 근심과 걱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번뇌다. 108번뇌, 8만 4천 번뇌… 인간은 번뇌 때문에 고통을 받고 여러 가지 업을 짓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박이 내리기 전의 텃밭

 

▲우박이 내린 후의 텃밭

 

이곳 동이리로 이사를 와서 텃밭을 가꾸다 보니 생각이 점점 단순해진다. 새벽에 여명이 밝아오면 제일먼저 달려가는 곳이 텃밭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것보다 텃밭을 가꾸는 일이 훨씬 마음을 단순하게 만들고 잡생각이 없어지게 한다.  

 

▲텃밭은 내 마음의 수행도량이다. 

 

나는 텃밭에 자라나는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고스란히 다 알고 있다. 오이가 어디어디에 달려 있는지, 호박은 어느 넝쿨 밑에 맺혀 있고, 접붙이기를 한 것인지 아닌지, 고추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상태, 가지와 토마토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어느쪽에 달려 있는지, 그리고  곁가지를 매일 잘라 주는 일, 처진 상추 잎을 뜯어내고, 수분이 어느 정도 있는지 등등.

 

 

▲갓난아기 고추처럼 작은 오이가 자고 일어나면 저렇게 커 있다.

 

정말 오이가 크는 속도는 대단하다. 저녁에 물을 줄때는 갓난아기 고추처럼 생긴 작은 오이가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아기 팔뚝처럼 커 있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주며 녀석을 바라보노라면 갑자기 없던 성욕이 다 생길 지경이다. 그런데 돌풍에 우박세례를 맞은 오이가 엉망진창이다. 나는 오이 넝쿨을 다시 잘 풀어서 조심스럽게 지주 대에 감아 주었다.

 

 

▲치마 상추, 청오크, 로메인, 청치마, 쑷갓 등 다섯가지 종류를 심어놓은 상추밭

 

전날 아침에 상추를 뜯어 먹었는데도 저녁에 물을 골고루 주고 나면 다음날 또 자라나 있다. 상추도 여러 종류를 심었다. 치마상추, 오크상추, 청상추, 로메인 상추, 쑥갓 등 나는 이 녀석들을 만지고 나면 갑자기 시장 끼를 느낀다.

 

요즈음 식탁에는 항상 싱싱한 상추와 된장이 오른다. 오늘 상추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추가 걸레처럼 갈가리 찢어져 있다. 찢어져 쳐진 상추를 뜯어내고 다시 물을 주었다. 뿌리가 튼실하니 상추는 다시 자라나겠지.

 

▲가지와 토마토

 

 

가지와 토마토는 매일 아침 곁순을 잘라 주어야 한다. 곁순을 잘라주지 않으면 영양분을 곁순에 다 뺏겨 열매가 튼실하게 가라나지 않는다. 녀석들 역시 어제 맞은 우박과 돌풍으로 허리가 댕강댕강 부러져 있고 줄기가 이리저리 꼬여 있다. 부러진 허리를 잘라내고 꼬인 줄기를 바로 잡아 주었다. 부러진 허리가 얼마나 아플까? 다행히 지주 대를 튼튼하게 박아서 통째로 넘어지지는 않았다.

 

고추 대는 거의가 다 넘어져 있었는데 지주 대를 튼튼하게 해 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쇠지주대를 사오기전에 약한 나뭇가지로 대강 받쳐주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망치로 지주 대를 깊게 박아서 고추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호박잎은 정말 벌집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얼마나 세차게 우박을 맞았으면 신축성이 있는 호박잎이 저렇게 벌집이 되어 버렸을까? 넝쿨은 그래도 튼튼하다 . 호박 구덩이를 워낙 깊게 판데다 퇴비를 한포대나 주고 물을 자주 주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앓았더라면 줄기 채 뒤집어 지고 말았을 것이다.

 

 

▲수확을 한 완두콩

 

완두콩을 거의 다 뒤집어져 있다. 어차피 수확기가 다 되었으므로 큰 걱정이 없다. 완두콩 밑에는 이미 대두콩을 심어 놓았다. 나는 차제에 완두콩을 다 거둬 내 버렸다. 금년에 완두콩 농사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마 비료를 제때에 주지 않아서 일게다.

 

 

들깨 잎도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그래도 들깨는 호박보다는 더 낫다. 어제 내린 소낙비와 우박으로 땅에서 흙탕물이 튀겨 붙어 잎이 흙 천지다. 잎에 튀겨 붙은 흙탕물을 물을 뿌려 씻겨주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복수박은 정말이지 난도질을 당하듯 잎과 줄기가 부러지고 구슬처럼 달렸던 수박도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아직 줄기와 잎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어쨌든 부러진 줄기와 잎을 거둬내고 남아 있는 줄기를 정돈시켜 놓았다.

 

 

 

 

고구마 순은 헝클어진 머리처럼 이리저리 쏠려있다. 여린 잎은 절반정도가 동강이 나서 잘려져 나가 떨어져 있다. 녀석을 생명력이 강하므로 다시 살아나리라.

 

 

▲와중에 가장 싱싱한 땅콩밭

 

그런 와중에서도 땅콩은 잎이 가장 성한 것 같다. 땅콩 잎은 땅에 바짝 엎드려 돋아나 있어서인지 가장 피해가 적다. 다만 잎과 줄기에 흙들이 씻겨나가 좀 허술해 보인다.

 

나는 차제에 복합비료를 뿌려주며 복토를 해주었다. 땅콩을 심고 나서 한 번도 비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기마다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땅콩을 바라보니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된다. 포기 옆을 호미로 파서 복합비료를 뿌려주고 흙을 덮으며 복토를 해주고 나니 땅콩이 더 싱싱해 보인다.

 

문제는 콩이다. 검은콩과 대두콩을 일주일전에 자투리땅에 심어 겨우 여린 싹이 돋아나고 있는 차에 우박세례를 맞았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보기만해도 귀엽고 안아주고 싶은 녀석인데... 식물이나 사람이나 어린 싹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은 험난하다.

 

▲바라보기만해도 귀여운 여린 콩잎

 

애들아, 너희들도 큰 체험했겠지? 너희들이 줄기를 키워 열매가 달리기까지는 아직 긴 여정이 남아있다. 만고풍상을 격어야만이 어른이 되어 열매를 맺는 법이지. 그러나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멘토가 되어 네 곁에 있을 것이니까. 대신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내 자양분이 되어 주겠지? 오늘은 너희들 옆에 있는 잡초들을 뽑아주마.

 

날씨가 너무 더워진다. 나는 잠시 텃밭 일을 멈추고 잔디밭에 여기저기 돋아나 있는 개망초와 마디풀, 쑥을 뽑아냈다. 땅이 마르면 뽑아내기 힘든 것들이 잡초다. 녀석들은 얼마나 빠르게 뿌리와 줄기를 뻗어내던지, 정말 잡초근성은 대단하다.

 

채마밭은 심신을 단련하는  수련의 장이다. 매일 텃밭에서 하는 운동도 상당히 많다. 더구나 생명을 가진 채소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꼭 내 자신이 성장해 온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후에 서늘해지면 콩밭을 메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