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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대화하면서 나와 대화하기 - 목조각가 라병연과 제자 6인전

찰라777 2012. 6. 22. 08:58

 

나무향과 결에 매료되어

24년째 나무를 깎고 있다는 라병연 목조각가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는 "목조각가 라병연과 제자 6인전"이 6월 18일부터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목재가 가지고 있는 특유한 향인 피톤치드 효능까지 느끼며 현대인들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치료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목조각이 왠지 신선하게 느껴져 KBS전시장을 찾았다.

 

 

▲ 라병연 목조각가의 "혼불(참죽나무/육송)"

 

 

나무의 생명 에너지가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6월, 전시장에는 나무들이 품어내는 피톤치드 향기가 짙게 베어나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 중앙에는 원형의 둥근 목판위에 유성이 흘러가는 듯한 '혼불(1200×900×500mm/참죽/육송)'이란 거대한 목조각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 조각상 앞에서 운좋게 목조각가 라병연 씨를 만났다.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둥근 원형의 참죽나무는 무의식의 세계인 바다를 의미하고 그 위에 떠 있는 혼불은 의식의 세계라고 할까요?"

 

 

▲ 24년째 나무를 깎고 있는 라병연 목조각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맑아 보였다.

 

겸손하게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맑아 보였다. 공업디자인을 전공하다가 나무 조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에서 최무안 선생님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후 목공예기능사 2급 자격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후부터, 나무의 결에 기록된 역사와 나무에 담겨 있는 철학에 매료된 그는 24년째 나무를 깎고 있다. 국립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최근에 문화재수리기능사, 전문예술심리치료사 자격까지 취득하며 거의 모든 시간을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의심, 믿음, 구원(육송). 라병연 작품

 

"목조각은 나무의 이치, 곧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깊이 공감하고, 작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나무의 내면에 숨겨진 깊은 이미지를 깎아나가는 것입니다. 나무와 대화를 하면서 나와 나무와의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전시회 부제를 "나무와 대화하면서 나와 대화하기"라 정했다고 한다.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조각부문 우수상 등 공모전에 다수 입상을 한 그는 2003년부터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우드빌리지 아카데미(www.woodvillage.co.kr)'란 목조각 교실을 열고 제자양성에도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 현대인의 끊임없는 욕망을 표현한 "자기십자가(버드나무 고목)"

 

 

버드나무 고목에 새긴 '자기십자가(800×400×950mm/버드나무)'란 작품도 특이했다. 위험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면서도 녹슨 욕망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걸어가는 현대인들의 지친 모습이 크게 부각되어 오는 작품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면서도 힘에 버거운 욕망의 자기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버드나무는 트럭터미널에 버려진 것을 누군가가 알려주어 주어다가 조각을 한 것인데, 나무들과의 만나는 인연도 참으로 묘합니다. 버려진 나무도 작가의 마음과 손길에 따라 멋진 작품으로 둔갑을 하지요.."

 

 

 한알의 밀알(라병연)

 

 맺히고 물리고(라병연)

 벌새(라병연)

 

 남의 눈에 티 내 눈에 들보(라병연)

 

  Day-bed(라병연)

 

 

전시장에는 버려진 나무도 작가의 마음과 손길로 혼을 불어 넣은 작품 ‘한 알의 밀알’, ‘맺히고 풀리고, ’벌새‘ 등 17점 외에도 그의 제자 6명의 작품 20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제자 중에 '겸손(400×300×300mm은행나무)'이란 작품을 출품한 김정광(64세)씨를 만나 보았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등을 씻어주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그는 방송국에 30여 년간 근무를 하다가 5년 전에 정년퇴직을 했다고 한다. 퇴직을 한 후 그는 오래전에 매입을 했던 경기도 화성의 농장에서 "들꽃사랑"이란 간판까지 내걸고 야심차게 야생화와 소나무 묘목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무를 깎으며 겸손을 배우고 외로움을 달랬다는 김정광씨

 

 

▲ 김정광씨의 "겸손(은행나무)".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는 작품. 목조각을 배운지 1년째인 그는 이 작품을 새기며 겸손의 미덕을 배웠다고...

 

그러나 처음 접해보는 농장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몸에 배인 직장생활의 습관과 자존심이 잘 굴복이 되지 않았다. 농업대학까지 다니며 매일 농장에 나가 야생화와 나무들과 씨름을 하며 보냈으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 뿐이었다. 그런데다가 몇 해전 사랑하는 딸까지 미국으로 시집을 가버리자 그는 정신적으로 더욱 외로워지고 삶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니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농장에 홀로 있는 시간이 자연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자기생활이 따로 있으니 힘든 농장에 자주 올 수 있는 처지도 못 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 보니 괜히 외로워지고 약간의 우울 증세까지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붓글씨를 시작하며 마음을 달래려고 했으나 붓이 손에 잘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 한 것이 우드빌리지 아카데미였습니다."

 

 

▲ 김정광씨의 "봄(Spring)". 그는 뽕나무에 이 작품을 새기며 희망의 메시지를 얻었다고 한다.

 

우드빌리지 아카데미를 우연히 들른 그는 목조각에 매료되어 시간만나면 손에 나무를 들고 깎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투른 솜씨로 나무를 깎다가 검지를 베어 다섯 바늘을 꿰매는 고통도 감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에서 풍겨나는 특유한 향과 나무가 빚어내는 입체적인 생동감에 매료된 그는 지난 1년 동안 쉬지 않고 나무를 깎으며 나무와 대화를 하며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나무와 대화를 하며 다시 삶의 에너지를 얻었다는 김정광씨

 

"나무를 깎고 있으면 나무로부터 강한 에너지를 전달받게 되어서인지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말아요. 농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틈틈이 나무를 깎으며 나무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래주고 외로움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무를 계속 깎아 볼 생각입니다."

 

목공예에 전혀 문외한인 그는 은행나무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등을 씻어주는 작품을 새기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배웠다고 한다. 목련나무에 '꽃향기'를, 뽕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봄(Spring)'란 작품을 새기면서 다시 삶의 희망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목련나무에 새긴 김정광씨의  "꽃향기"

 

나무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얻은 그는 "들꽃사랑" 농장에 산수유, 산딸나무, 팥베나무, 베롱나무를 묘목을 식재를 하고, 최초로 자신이 기른 반송을 10그루를 팔기도 했다. 

 

"내 손으로 직접 기른 반송 10그루를 최초로 판매를 했는데요, 꼭 내 식을 시집을 보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작은 수확이지만 작은 묘목을 죽이지 않고 키웠다는 보람이 컸습니다."

 

나무를 기르며 나무를 깎는 작업은 이제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제2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며 그는 나무처럼 신선한 미소를 지었다.

 

 

끌질을 하고 있으면 도대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요!

 

▲ 주난숙씨의 작품 "질그릇 속에 보배(육송, 금, 잣나무)". 수천 번의 끌질을 한 작품이다.

 

 

'질그릇 속에 보배/L650m/육송/금/잣나무(제8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입선작)'란 주난숙(가정주부)씨의 작품은 육송과 잣나무에 수천 번의 끌질을 하여 질그릇을 만들고 그 질그릇 위에 금을 입힌 보배를 얹어 놓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표현 같기도 했다.

 

"나무를 깎고 있으면 도대체 아무 생각이 나질 않고 그냥 끌질 삼매에 들어가게 되요."

 

 

▲주난숙씨의 "계란 꾸러미"

 

목조각을 배우기 시작한지가 7년째라는 그녀는 나무를 깎으며 끌질 삼매에 들다보니 '인형공모대전금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기독교미술공모대전 입선 등 수상도 여러 차례 하게 되었다며 활짝 웃었다.

 

목조각은 조각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어도 몇 개의 끌과 칼만 준비하면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진한 나무 향과 아름다운 나뭇결을 느끼며 나무를 깎아가는 입체적인 작업은 경직된 정신을 환기시켜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피톤치드 향이 짙게 풍겨나는 목조각품

 

 ▲페르조나(라병연)

 ▲사향 고양이(주난숙)

 ▲빛바랜 추억(라병연)

 

 ▲커피(한영미)

 ▲전사(박호진)

 

 ▲숲의 정령(강정훈)

 

 ▲Whale tail강정훈)

 

 ▲예수님(임정택)

 

▲소년과 강아지(임정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