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그랜드 티톤과 슬픈 ‘제니 레이크’

찰라777 2012. 7. 29. 16:43

 

슬픈 사연을 간직한 ‘제니 레이크’

 

 

그랜드 티톤!

“로키에 와서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을 보고 가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입니다.”

과연 이곳에 와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났다. 스네이크 강의 보트여행을 마치고 무스에서 잭슨 레이크에 이르는 ‘환상의 17마일 숲 속 드라이브’는 또 다른 오묘한 맛을 느끼는 멋진 코스였다.

캘리포니아 1번 도로 상에 있는 ‘몬트레이 17마일 드라이브 코스’가 바다를 끼고 있는 환상의 코스라면, 그랜드 티톤의 숲 속 17마일 드라이브는 만년설로 덮여진 3000m이상의 고봉들이 수정같이 맑은 호수에 비추이는 절경을 끼고, 태고의 자연을 만끽하며 달려가는 천혜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버스는 제니 호수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스톱을 했다.

“제니 호수는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호수랍니다. 1860년경 영국인 딕 레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탐험대들과 사냥꾼들을 안내원 노릇을 하면서 인디안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인디언의 이름이 제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날 병든 어떤 인디언 여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제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천연두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제니는 그들을 맞아드려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던 중, 제니 자신까지 그만 천연두에 전염되어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제니를 잃어버린 딕은 이 호수의 이름을 ‘제니 레이크’라 이름을 짓고, 20여 년간을 제니호수 옆에서 독신으로 살다가 쓸쓸히 죽어 갔습니다.”

“아빠, 너무 슬픈 이야기야! 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해…….”

“그럼 울어 버려.”

“아빠는 슬프지 않아?”

“슬프지만 운다고 그녀가 돌아오지도 않을 거 아니여.”

사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거울처럼 맑은 제니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묻어 놓은 슬픔은 있다. 그러나 딕은 아마도 그의 슬픔을 이 호수에 묻어가며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아내가 사경에 헤매 일 때 나 역시 ‘만약에 이 여인이 먼저 가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절박한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딕의 심정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다. 끌끌, 가여운 제니…….

 

버스는 제니레이크를 출발하여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제니호수보다 훨씬 큰 호수 앞에서 정차하였다. 벌써 시간이 오후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스네이크 강에서 2시간이 넘게 보트여행을 하다보니 점심 때가 훌쩍 지나고 있었다.

잭슨 레이크에서 바라보이는 그랜드 티톤의 장엄한 봉우리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만년설에 덮인 ‘그랜드 티톤’과 마운트 모란(Mount Moran)의 두 봉오리는 마치 쌍둥이 같이 마주보고 있었다. 두 봉오리 다 4000m 전후 한 거대한 봉오리였다.

“저 두개의 거대한 봉오리가 여자의 찌찌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실제로 1800년경 프랑스의 모피 사냥 군들이 이곳에 와 저 봉오리를 보고 여자의 거대한 유방처럼 생겼다 하여 여자의 유방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그랜드 티톤이라고 명명하였답니다. 호호, 재미있지요?”

수잔이 넉살맞게 웃으며 재치 있게 설명을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처녀의 유방처럼 생기기도 하였다. 나는 만년설이 덮인 봉오리가 잭슨호수에 비추이는 풍경에 취해 호수 쪽으로 다가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에 홀린 듯 비디오를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호수 가에 핀 꽃들을 비디오에 담으며 버스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미스터 초이! 빨리 버스로 올라 가 봐요.”

“아니, 무슨 일이 있나요?”

“당신 와이프 박이 쓸어 졌어요.”

저혈당! 나는 버스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아내는 심한 저혈당으로 혼절해 있었다. 점심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만 저혈당이 왔던 것. 아내에게 설탕을 찾아 물에 타서 먹였다.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는 아내는 잠에 취한 듯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의식을 회복하였다.

“미스터 초이, 괜찮아요?”

수산과 멕스, 그리고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도 매우 근심스런 표정으로 염려를 하며 나에게 물었다.

“네,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질 겁니다. 염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응? 여보, 여기가 어디야?”

아내는 의식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여보, 괜찮소? 점심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어. 빨리 점심을 먹읍시다. 자, 우리 저쪽에 있는 벤치로 가요.”

나는 아내를 부축하고 나무그늘 아래 벤치로 갔다. 배낭에서 아침에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어 벤치의 캠핑 대에 올려놓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여보, 미안해요. 저 땜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어서…….”

“미안하긴, 몸이 아픈 걸 어떡하겠어. 자자, 점심이나 먹자고.”

울먹거리는 아내에게 야채와 햄을 넣은 빵을 건네주었다. 아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빵을 뜯어 먹었다. 저혈당이 오면 칼로리를 곧 섭취해야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아내는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거, 하마터면 내가 슬픈 딕이 될 번했잖아. 다신 식사시간을 늦추지 않을 거야.”

“여보, 미안해요.”

잭슨호수를 떠나 옐로스톤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니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호수와 만년설이 점점 숲 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