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솔트 레이크 시티

찰라777 2012. 7. 29. 16:38

 

몰몬의 땅, 솔트 레이크 시티

 

 

 

▪ 말일성도의 땅

 

창문 밖으로 멀리 깎아지른 듯한 산들이 흰눈에 덮인 채 펼쳐지고 있었다. 산 아래는 푸른 들판이 전개되기도 하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노란 유채 꽃이 핀 유채 밭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눈에 덮여 있는 산위로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산맥은 로키산맥의 지류인 와사치 산맥이었다. 브라이스 캐니언을 출발하여 와사치 산맥을 따라 고원의 도시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미국의 사해(소금바다)라고 일컫는 솔트 레이크 시티는 와사치 산맥의 기슭 1280m의 고도에 자리 잡은 첫인상이 매우 깨끗한 도시. 도시의 북쪽 16km지점에 바다보다 6배의 염도(25%)를 함유한 거대한 호수가 그레이트솔트 레이크가 자리하고 있어 도시의 이름을 솔트레이크라고 명명했다.

‘퀄러티 인’에 여장을 푼 우리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템플 스퀘어로 갔다. 버스를 타고 본 거리의 표정은 수정처럼 맑다고 할까? 바둑판처럼 그어진 도로는 질서정연하면서도, 꽃으로 장식해 놓은 거리는 매우 부드럽고 자연친화적인 모습이었다.

 

눈 덮인 산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 솔트 레이크 시티는 말일성도 교회의 본산이 있는 도시다. 인구의 70% 이상이 말일성도의 교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시 중심 전체에 교회건물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템플 스퀘어 광장에서 내려 꽃으로 장식된 템플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화초를 가꾸고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요! 화초를 가꾸고 있는 사람들도 아름답게 보이구요.”

화초를 가구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내는 정원 내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과 정원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쓰리마생?(실례합니다)”

우리가 정원을 바라보며 템플을 산책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일본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일본인 아가씨 두 사람이 가슴에 명찰을 달고 우리를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다시 일본말로 무어라고 말을 걸어오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를 하자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저희들은 일본사람인줄 알았어요.”

“천만에요. 이웃나라 사람을 만나서 반가워요.”

“저희들도 반가워요. 아 참, 여기에 한국인 자매님이 계시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희들이 그 자매님을 모시고 올 깨요.”

 

 

▪ 한국에서 온 자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인 아가씨가 그 일본여자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고, 여기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정말로 반갑네요!”

아내가 나보다 더 반가워하며 그 아가씨와 서로 포옹을 했다. 성이 구씨라고 하는데 이름을 잊어먹었다. 그녀는 한국의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말일성도교회에 관심이 있어 선교사 연수를 받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홀홀 단신으로 이곳 솔트레이크에 왔다고 했다.

“두 부부님께서 이렇게 여행을 다니시는 모양이지요?”

“네, 그렇답니다.”

“아주 좋아 보이고, 부러워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보아주시니. 저희들은 속이 텅 비어서 이렇게 다니고 있답니다.

“별말씀을……. 이곳까지 오셨으니 제가 이 템플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몰몬교회의 여러 곳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교회박물관, 패밀리박물관, 라이언 하우스, 대예배당, 대사원, 브리감 영 기념비 등을 그녀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패밀리 박물관에는 컴퓨터로 자신의 뿌리를 찾는 도서관도 있었다. 우리는 컴퓨터의 자판을 두 두려 우리들의 조상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우리들의 성씨가 나왔다.

템플의 최대 볼거리는 대예배당의 오르간 연주였다. 그 때 마침 파이프오르간에 맞추어 성가대의 리허설이 전개되고 있었다.

“저 오르간의 수는 11,623개로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지.”

구 자매가 파이프오르간에 대해서 귀 띰을 해주었다. 성가대 정식 콘서트는 일요일 오전 9시 반에 있고, 파이프오르간 리사이틀은 평일은 12시, 일요일은 오후 2시에 있다고 했다.

“여기가지 오셨으니 모르몬교의 유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가시지요?”우리는 그녀의 안내로 무료로 상영하는 모르몬교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다.

 

 

▪ 미국 판 출애굽기

 

솔트레이크 시티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시는 150여 년 전만해도 북미대륙 중서부에 위치한 텅 빈 사해의 공간이었을 따름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해서 모르몬교인들이 미국의 동부에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말일성도는 1805년 미국 버몬트 주에서 태어난 요셉 스미스가 14살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1823년 모로나이라는 부활한 천사의 인도에 따라 팔마이라 근처의 한 언덕에서 고대 미 대륙의 종교역사가 새겨진 금판을 발견한다. 이 금판이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부활한 후 고대 미 대륙에서 베푼 성역의 기사(奇事)들이 기록된 것으로 바로 몰몬 교도들이 성경으로 인정하는 몰몬경이다.

그러나 몰몬교는 이단으로 몰려 탄압을 기독교인들로부터 받게 된다. 이 때부터 몰몬성도들은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 그들만이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나선다.

브리감 영. 요셉 스미스의 뒤를 이은 몰몬교의 실제적인 지도자였다. 브리감 영은 미국 동부에서 몰몬성도들을 인도하고 서부로 머나먼 길을 떠난다. 그들은 마침내 장장 2100km의 먼 길을 걸어서 1847년 7월 24일 날 이곳 로키산맥 서쪽에 위치한 솔트 레이크 계곡에 다다른다.

솔트 레이크에 다다른 브리감 영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발길을 멈추고 지팡이로 땅을 두드린다. 이때부터 솔트 레이크 시티의 대역사는 시작되었다.

1868년까지 약 8만 명의 몰몬성도들이 미국의 대평원을 횡단하여 이 이곳으로 왔고, 일부는 뉴욕 항에서 배를 타고 남미를 돌아 캘리포니아 항을 통하여 이 곳에 오기도 했다.

 

마치 미국속의 출애굽기와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들은 이 불모지의 땅, 솔트 레이크 지역을 일구고 가꾸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해 놓았다. 그들은 먼저 관개 농업을 시작하였다. 사막성 기후 탓에 물이 귀하고 고지대라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매우 견디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인내하며 혹독한 노동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목재파이프로 산중의 물을 끌어들여 관개농업을 일구고, 풍부한 광산자원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광산, 제련 사업에 이어 최근엔 첨단사업과 관광사업에 눈을 돌려, 오늘날 깨끗하면서도 풍요한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는 기틀을 다져 나갔다.

인구가 고작 20만도 채 안되는 도시지만 이곳은 델타항공을 비롯해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근의 브라이스, 자이언 캐니언, 옐로우스토운, 시다 브레이크, 모뉴먼트 밸리 등 유명 국립공원과 관광지로 가는 허브도시의 구실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몰몬교인들을 ‘일하는 꿀벌’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쉴 새 없이 일을 한다는 것. 그래서 유타 주를 상징하는 깃발에도 꿀벌문양이 새겨져 있다. 솔트 레이크에는 비만 여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거리엔 뚱뚱해 보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 아, 이 김치와 쌀밥!

 

몰몬의 역사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는데, 구 자매가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잘 보셨나요?”

“네, 아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그녀는 우리들을 패밀리 관으로 안내했다.

“몰몬교는 가족을 아주 중요시하고 그리고 결혼을 매우 신성시 합니다. 그래서 혼전순결을 크게 강조 하고, 근면, 성실, 정직, 정절, 봉사, 낙관주의, 가족중심, 상호협조 등을 주요 계율로 삼고 있지요.”

구 자매는 패밀리 관에서 전시된 결혼 풍습 등에 대한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또 율법에 따라 술, 담배, 홍차, 커피 등은 금하고 있지요.”

솔트레이크는 시 자체에서 술 판매를 금지시키고 있어(최근 2002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맥주판매를 일부 해제시킨바 있음), 길거리에서 술을 팔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거의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내일은 일정이 어떻게 되어있나요?”

“아, 내일요. 그레이트솔트 레이크와 빙엄 구리광산을 방문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솔트레이크에서 꼭 가 볼만한 곳이지요. 그런데 제가 구치에다가 쌀밥을 좀 대접하고 싶은데……. 이따 저녁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걸 어떻게?”

“실은 제가 이곳에서 자취를 하거든요. 이곳에 있는 선교사 지망생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제가 사는 집이 너무 누추해서 가시자고 하기가 민망하고요. 이따가 집에 가서 지어 가지고 올 깨요. 한국음식을 드신 지도 오래 되신 것 같고 해서요.”

“저희들이야 좋지만 미안해서 어떡하지요?”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인걸요. 그럼 시내 구경을 좀 더 하시고 이곳 템플 정문에서 6시에 만나지요.”

“그럴까요.”

알큰한 구치가 먹고 싶다는 아내는 거절을 아니 했고, 구 자매가 구치 이야기를 하자 나도 입에서 군침이 돌아 그만 고개를 끄덕끄덕 해 주었다.

 

구 자매와 해어져 우리는 시청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백악관을 연상케 하는 시 청사는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마치 중세기의 교회 건물처럼 아름답게 서 있었다. 건물 중앙에는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성조기 밑에는 인디언의 동상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뜰 안에는 파란잔디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채워져 파란 하늘과 어울려 매우 평화스럽게 보였다.

시청사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시가지는 모든 게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이는 공해가 전혀 없고 공기가 맑기 때문이었다.

“너무 공기가 좋아서요, 빨래를 자주 안 해도 되고요, 세차는 열흘에 한번정도 해도 차가 더럽지가 않아요.”

도시의 깨끗한 환경에 대하여 자랑했던 구 자매의 말이 상기 되었다. 정말 거리의 차들이 더러운 차가 별로 없었다. 이는 세차를 자주해서가아니라 먼지가 없고 공기가 맑아서라고 한다. 서울의 그 탁한 공기를 생각하니 부럽기만 했다.

종교적인 건물이 많이 들어 서있는 시 가지는 과연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말을 들어도 될 만큼 평화롭게 보였다. 우리는 시청사의 정원을 한동안 거닐다가 솔트 팰리스 센터로 갔다.

이 센터는 템플 스퀘어 남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안에는 비지터 센터를 비롯하여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솔트레이크 아트센터에서는 회화, 사진, 조각 등의 작품을 전시되어 있었고, 몰몬 교도들의 역사자료나 회화, 미술품들을 수장하고 있는 교회사 박물관 및 미술관이 있었다.

6시가 되어 우리는 구 자매를 만나기 위해 템플의 정문으로 갔다. 그녀가 손을 흔들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맛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구치와 쌀밥을 별도로 싸왔어요.”

“어머나! 이 구치와 쌀밥!”

“맛있게 드시고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 2년 만에 한국인 부부 여행자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두 분을 뵙고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더욱이 건강도 좋지 않은 부인과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 깊군요.”

“너무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허허, 감사할 따름이군요. 이 구치와 쌀 밥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의 뜨거운 정을 느끼며 그 자매와 석별을 나누었다. 3년 기간으로 이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구 자매. 내 주소와 전화 연락을 적어간 그녀는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에 있는 몰몬 교회의 장로들이 방문을 하게끔 주선을 했던 모양.

우리가 귀국을 한 후 건국학교 입구에 있는 몰몬교회의 버거 장로와 맥머리 장로가 구의동에 있는 우리 집을 방문을 했다. 그들은 한글판 몰몬경을 우리에게 선물을 해 주면서 특히 다음의 니파이서 11장을 우리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임하는지라, 저들이 눈을 들어 주변을 살피나 그 음성을 깨닫지 못하는 지라. 이는 거친 음성도 아니요 큰 소리도 아니요 비록 적은 음성이었으나 온 몸을 속속 파고드는 지라…….(니파이삼서 11장 3절)

 

이 구절은 예수가 부활하고 나서 기원전 600년부터 북미대륙으로 왔다는 니파인 들에게 강림하여 성역을 베푼 내용의 기록이다. 두 장로들은 우리에게 이런 내용을 이야기 하여 주면서 틈이 있으면 영어회화공부도 할 겸 교회로 나오라고 했다.

 

구 자매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 온 그 날 밤, 우리는 구 자매가 준 구치와 쌀밥을 배불리 먹었다. 김치 맛 속에서 한국인의 끈끈한 정을 느끼며…….

여행이라는 인연의 끈으로 맺어진 몰몬경과의 만남은 우리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꼭 우리들에게 연락을 준다고 했던 구 자매.

그녀는 아직도 솔트레이크 시티에 머물고 있을까? 그녀에게 진 구치와 쌀밥신세를 갚아야 할 텐데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보면 아마 그곳 몰몬교의 성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 그레이트솔트 레이크

 

다음 날 우리는 그레이트솔트 레이크 Great Salt Lake 로 갔다. 호수에는 강열한 6월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유람선들이 한가롭게 선창에 서 있었고, 멀리 돛을 단 배들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여보, 여긴 미국석의 요단강이라오.”

“요단강이라니요? 요단강은 이스라엘에 있지 않아요?”

“사해는 세계에서 이스라엘과 이곳 솔트레이크 두 군데 밖에 없다는 데, 이 두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강의 이름도 요단강이래.”

“아하! 거참 알쏭달쏭 하군요.”

그레이트솔트레이크는 120km, 세로 80km에 달하는 바다와 같은 소금의 호수로 유타호 사이에 요단강이 있다. 이스라엘의 사해와 갈릴리해 사이에 있는 요단강과 같은 이름.

또한 우연치 않게도 이곳은 몰몬교도들이 이단의 박해를 피해 몰몬교도들의 모세격인 브리감 영을 따라 갖은 수난을 겪으며 동부에서 대륙을 횡단하여 이곳까지 탈출하여 정착을 하였던 것. 이는 모세의 출애굽기와 종교적인 역사도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깊고 작은 반면, 이 호수는 얕고 넓다. 염도는 25% 비슷하다. 보통 바다의 염분보다 6배 이상의 염도가 많은 호수. 그레이트솔트레이크 안에는 크고 작은 섬이 10개가 있다.

요단강, 베어강, 웨버강 등에서 이 호수로 흘러들어 오는 물은 일단 나가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증발량에 의해서만 수위가 조정되고 있다.

호수 안에는 조류(藻類), 작은 새우, 원생동물 등이 살고 있다. 특히 말일성도에서 말하는 '갈매기의 기적'을 이룬 바다갈매기의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이 호수의 섬에 수천 마리의 갈매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모여들어 둥지를 튼다. 유타주에서는 산란하는 4월에서 6월까지는 호수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1825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이 호수는 1900년대 초에 호수를 횡단하는 태평양철도가 건설되어 호수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다. 호수 안에는 모래밭과 수영장, 요트 정박지 등이 있어 여름철에는 사해에서의 수영과 요트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수영을 하면 몸이 둥둥 뜬대.”

“정말로요?”

“한번 들어가 볼까?”

“수영복도 없는데요?”

드넓은 사해에는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 인간이 만든 거대한 협곡

 

“와아! 저건 꼭 달팽이 모양처럼 생겼네요.”

“내가 보기에는 그리스의 고대 원형극장처럼 생겼는걸.”

그레이트솔트 레이크를 떠나 남서쪽으로 201번 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려 다시 111번 도로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마치 거대한 원형극장 같은 노천 채굴장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빙엄 노천 채굴장(Open Pit Mine).

깊이가 거의 1km에 달하고 폭은 3㎞를 넘는다는 채굴장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우주의 블랙홀을 연상케 했다. 세상에 태어나 오픈 되어 있는 광산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

 

“세상에는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이 만든 두 개의 불가사의가 있다. 그 하나는 중국의 만리장성이요, 또 하나는 바로 이 빙엄 오픈광산 캐니언이다.”

 

이 말은 나사당국에서 한말이다. 이 지구최대의 노천 구리광산은 인간이 만든 것들 중에서 우주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오직 두 곳 중에 하나라는 것.

위에서부터 원을 그리며 점점 파 내려가다 보니 채굴장의 모습은 마치 달팽이관처럼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협곡이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이 협곡을 인간이 만든 ‘빙엄 캐니언’이라고 부른다.

달팽이처럼 생긴 홀에는 거대한 덤프트럭들이 홀의 맨 밑바닥에서 원광석을 싣고 빙빙 원을 그리며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어떤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름모를 외계의 나라에 온 기분.

“이 광산에서는 1년에 약 32만 톤의 구리를 생산합니다. 또한 구리 외에도 1년에 약 1백만 온스의 은과 5십만 온스의 금도 생산을 하고 있지요.”

광산의 안내인은 그 밖에도 많은 종류의 광산물질을 이곳에서 채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리는 반도체, 메모리 칩, 무기, 동 파이프 등 국가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노천 채굴장에서 부지런히 파 올리는 트럭들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가까이 보면 거대한 트럭인데 깊이 1km 바닥에서 원형극장의 주름처럼 생긴 홀을 기어 올라오는 트럭들의 모습은 마치 부지런히 무언가를 물어 나르고 있는 개미처럼 보였다.

전망대 옆에는 구리 박물관과 광산의 역사를 말해주는 기록영화가 매 15분마다 상영되고 있었다. 또한 박물관 앞에는 그곳에서 채굴한 원광석의 조각들을 관광객들이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놓고 있었다. 구리로 만든 기념품을 판매하는 숍도 있었는데,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아내와 나는 인디언의 화살과 창이 그려진 목걸이를 하나씩 기념으로 샀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빙엄 캐니언은 단순한 광산이라는 의미를 뛰어 넘어 자라나는 아이들의 산 교육장으로, 또한 솔트레이크 시티의 중요한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