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벤쿠버의 어글리 영국 신사

찰라777 2012. 7. 29. 16:58

 

[자동차에 꿈을 싣고]

- 7일간의 렌터카 여행 -

 

 

어글리 영국 신사

 

 

▪ 언제나 이별은 아쉬워

 

오늘도 이별을 아쉬워하듯 비가 내렸다.

이별! 만남은 즐겁고 이별은 항상 서글프다.

20일간 정들었던 여행객들과 이별을 고해야했다. 맥스부부, 싱글로 온 여행 광 마이클, 떠버리 매리, 치스넬 부부, 제인, 수산……. 모두가 포옹을 해주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맥스 부부는 토론토로 간다고 했고, 마이클은 남미로 간다고 했다. 제인은 알라스카로 간다고 했고, 매리는 펜실베이니아로 간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진 뒤 우린 스탠리 파크를 잠시 산책을 한 뒤, 오늘의 숙소인 밴쿠버의 '인터내셔널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다음 여정을 다시 한 번 재고하기로 하고…….

“잘 가시요. 맥스! 샌드라!”

“초이, 팍! 호주에 꼭 한번 와주오. 호주에 오면 우리 집에서 머물러요.”

“맥스, 고마워요! 샌드라, 굿 바이!”

“팍, 우리 다시 만나요!”

우리들과 이별을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맥스 부부였다. 한 달 내내 아내의 건강을 걱정해 주고 돌보아 주었던 사람들. 아내와 샌드라와 서로 포옹을 하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별! 이별은 언제나 아쉽다. 이렇게 해어진 맥스 부부와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졸지에 우리의 숙소는 유스호스텔로 강등되었다. 코스트 세이버 형 다국적 여행은 할인을 크게 하여주어 모텔이나 로지로 싼값에 잘 수 있지만 개별로 자려고 하면 거의 배 정도가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단둘이 배낭여행을 할 때는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우리들의 숙소무대가 된다. 우리가 유스호스텔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세계의 젊은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덧 우리들 자신이 젊은 청년으로 변한 다는 것. 그리고 여행정보가 항상 홍수를 이루고 있어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무지 편리하다는 것이다.

밴쿠버 중심가에 위치한 인터내셔널 유스호스텔도 역시 세계의 젊은이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래서 호텔분위기와는 달리 언제나 매우 역동적이다. 우리는 겨우 4사람이 함께 쓸 수 있는 도미토리를 하나 구했다. 하루 밤에 1인 19캐나다달러. 도심이라 좀 비싼 편이었다.

도어 쪽의 1,2층 침대는 영국에서 왔다는 젊은 남녀 대학생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창가 쪽의 1,2층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부부 한방으로 잘 수 있는 방은 몇 개 되지 않아 이미 동이 나고 없었다. 유스호스텔이란 도리가 없다. 누에고치처럼 한방에서 층층 이 잘 수밖에.

 

 

 

▪ 어글리 영국 신사

 

런던에 서 왔다는 그 친구는 아예 처음부터 웃통을 벗고 있었다. 이 무례한 영국신사야! 그러나 싼 비용으로 여행을 즐기려면 그런 숙소에 익숙해져야 한다.

 

짐을 방안에 들여 놓은 뒤 렌터카 예약을 변경하기 위해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AVIS’ 밴쿠버 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렌트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반납하면, 리턴 피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 거의 정상요금의 배가 되었다.

리턴 요금이 없는 구간을 물으니 포틀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이므로 포틀랜드 영업소로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포틀랜드 공항영업소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예약한 번호를 알려주고, 추가요금이 없는 렌터카로 변경을 원한다고 했더니 아, 반가운 모국어가 들려왔다.

"I am korean, let me see…….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너무 반가워 구세주를 만난 듯 한국말이 막 쏟아져 나왔다. 어쨌든 그 친구의 도움으로 포틀랜드에서 추가요금이 없는 렌터카를 예약하는데 성공하였다. 일단 렌트를 하면, 돌아다니는 것은 어느 지역이던지 프리마일리지로 마음대로 갈 수 있으므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나는 다음날 포틀랜드 공항영업소에서 그 한국인 직원을 다시 만났는데, 그의 말이 내가 운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마침 내가 전화를 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자동차가 한대 있었다는 것.

왕래가 잦은 구간은 원 웨이 렌털(one-way rental)이 가능하나 그것도 반납차량이 없을 경우에는 요금이 또 달라진다.

 

밴쿠버에는 한인들이 꽤 많이 살고 있으므로 아내와 나는 한인가게를 찾아 나섰다. 김치, 고추장 등 밑반찬과 버너용 가스 등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제부턴 완전히 자취를 하며 여행을 해야 하므로…….

다행히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전라도 순천이 고향이라는 한국인 가게주인은 매우 친절했다. 자기 가계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은 다른 가계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며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쇼핑을 한 후 아내가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여 인근의 한인식당을 찾았다. 의정부부 부대찌게, 김치 찌게, 라면 땅, 떡 뽑기…….

우~ 없는 게 없었다. 우리는 얼큰한 부대찌게에다 소주까지 한잔 걸치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우리들 옆에는 한국학생들이 일본 학생들과 어울려 부대찌게에 소주를 연거푸 마시며 상당히 취해 있었다. 일주일전에 한국에서 왔다는 학생의 환영파티란다. 분위기로 봐서 전공을 찾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아닌 것 같고 언어스쿨 코스를 밟고 있는 듯 하였다.

연신 품어대는 담배연기와 소주에 취한 벌건 얼굴, 큰소리로 떠드는 광경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한국에서 부모님들은 뼈 빠지게 일하여 학비를 보내는데…….

나 역시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이 있었다. 언젠가 작은 아이가 한 학년을 쉬고 어학코스를 가겠다고 말 하 길래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가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왠지 마음이 우울해 졌다.

담배연기 자욱한 식당을 빠져나와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밴쿠버의 밤풍경은 아름다웠다. 웨스트 15번가에서 하차 하여 밴쿠버 제너럴 호스피탈을 중심으로 항구에 인접한 휠 하우스 스퀘어의 화려한 밤거리를 걸어서 둘러보고 곧장 숙소로 돌아 왔다. 내일은 그래이 라인버스로 아침 일찍 포틀랜드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호스텔의 누에고치 방으로 들어가니 그 어글리 영국신사는 여전히 웃통을 벗은 체 위 침대에서 책을 보고 있었고, 숙녀님은 아래 침대에 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아내를 아래 침대에 자도록 하고, 위 침대로 기어 올라가 눈을 붙였으나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아내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모양. 이리저리 뒤치다꺼리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1시간여가 지나자 이 영국 신사가 불을 끄더니 아래 침대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도미토리의 침대는 좁기가 일 말할 수 없으므로 둘이 자려면 자연히 거의 포개져야 한다.

‘요 녀석 보게, 넌 영국신사가 아니고 어글리 영국인이로구나. 옜다, 나도 모르겠다! 그럼 나도 아래 침대로 내려가야지.’

아래 침대로 내려가 슬그머니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때서야 아내는 겨우 잠이 들었다. 아메리카에 온 뒤 가장 작은 침대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잤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