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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불공을 드리면 S대학에 합격을 한다?

찰라777 2013. 2. 14. 09:26

사각모자를 쓴 관악산 자운암 마애미륵부처

 

관악산 자운암은 그 옛날 관악산 중턱 자하동이라 불리었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가 이곳으로 이주를 하게 된 후, 신곡학관이 세워진 위 골짜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나무가 울창하고 골짜기가 깊은 곳으로 선경(仙境)을 이루고 있어 자하시경(紫霞詩境)이라 불려왔다. 또 조선후기 문신이자 화가·서예가로 알려진 자하의 신위(申緯)가 어려서 이곳에 별장에서 머물면서 공부한 터라고 한다.

 

 

 

 

 

 

내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등사객이 별로 많지않아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기에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봉천고개에서 5513번 버스를 타면 바로 자운암으로 올라오는 입구까지 올 수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설날 다음날인 정월 초이틀, 다시 이곳 자운암을 찾아 마애미륵부처 앞에 섰다. 흰 눈에 둘러싸인 미륵불은 추위를 이겨 내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사각모를 쓰고 있는 미륵부처는 약간 네모진 둥근 타원형으로 심지가 매우 굳어 보인다. 초승달처럼 생긴 눈에서는 한줄기 광채가 번뜩이는 것 같다. 미간의 중심에는 제3의 지혜를 상징하는 혜안이 열려있다.

 

귀는 얼굴보다 길게 어께까지 내려와 있어 복이 줄줄이 붙어 있는 듯 보인다. 몸체의 조각은 의외로 단순하다. 가슴에 네 개의 주름이 있고, 허리에 띠를 둘렀는데, 자세히 보면 이는 단순한 띠가 아니라 양손으로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어깨는 무릎까지 길게 늘어 뜨려져 있다.

 

자운암에 의하면 이 미륵부처의 조성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미륵부처가 서 있는 자리는 명당중의 명당요처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 연일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창건한 명당터

 

특히 입시철에는 자운암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명당에 위치한 미륵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면 서울대학에 합격을 한다고 하여 대학입학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과 불자들 연일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자운암은 원래 조선태조 5년(1396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남허스님이 남긴 자운암 기록에는 영조 13년(1734년)에 중수하고, 정조 원년(1777년)에 다시 중수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성종이 대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위패가 아직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것.

 

 

 

 

 

 

현재의 자운암은 1976년 당시의 주지스님이 대웅전, 칠성각, 산신각을 세워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자운암 대웅전은 원래 관음보살을 모시는 관음전이었으나, 어느 날 주지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나서, 석가모니 불살과 그 좌우에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전각 이름도 대웅전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운암은 서울대학교 신공학관 301동 앞으로 올라간다. 자운암은 우연히도 봉천고개 우리 집 거실에서 보면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서울에 오면 나는 거실에서 자운암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침 명상을 하곤 한다. 그 명상 방향은 또 우연히 자운암 마애미륵부처님과 마주하게 되는 꼴이다.

 

 

 ▲봉천고개에서 바라본 관악산 자운암

 

▲자운암에서 바라본 봉천동

 

 

“봉천동 1번에 있는 현대아파트가 관악산 정기를 제일 잘 받는 곳이라고 해요. 그게 여기서 보면 남쪽에 있는 관악산 정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래요.”

 

어느 날 미장원에 갔더니 미장원 주인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하달에 한 번씩 아파트 상가에 있는 1004(천사)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그 미장원 주인은 여기서 몇 십 년을 살아온 터줏대감이다.

 

뭐, 그런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저런 연유로 인해서 서울에 오게 되면 관악산 자운암을 자주 오르게 된다. 자운암에 오르면 어쩐지 기분이 좋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읽을 책을 들고 와서 몇 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위에는 산신각이 있고, 오른쪽에는 칠성각, 그리고 칠성각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에 마애미륵불이 우뚝 서 있다.

 

미륵불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가면 바위위에 자라난 소나무가 활처럼 휘어져 있고, 그 양편에 큰 바위가 칼로 갈라진 것처럼 대문을 이루고 있다. 그 바위대문을 지나가면 작은 산신각이 나온다.

 

 

산신각 툇마루는 최적의 독서 장소

 

산신각 위로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요새를 이루고 있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산신각 앞에는 두어 뼘 정도의 툇마루가 있는데 그 툇마루에 앉으면 삼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그 툇마루가 독서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책을 읽기에 최적의 장소인 툇마루

 

독서란 잡음이 없는 곳, TV나 인터넷, 사람들과 격리된 장소가 좋다. 말하자면 마음이 가난해지는 장소, 저절로 한곳으로 집중해지는 곳, 다른 생각이 잘 안 나는 곳. 이런 장소가 책을 읽기는 딱 좋은 장소다.

 

서울대학교 교정을 바라보게 되면 누구나 학구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 거기에다가 사각모를 쓴 마애미륵부처님이 명당터에 떡 버티고 서 있어 학구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서울에서 이만한 독서 장소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바람도 막아주고, 햇볕도 따사롭게 비추인다.

 

 

 

그런데 오늘은 산신각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기에는 너무 춥다. 책을 읽는 대신 대웅전으로 들어가 108배를 시작했다. 108배는 번뇌를 덜어내는 작업이다. 번뇌는 우리 몸속에 있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눈, 귀, 코, 혀, 몸, 마음) 육근(六根)이란 감각기관이 몸 밖에서 오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색, 소리, 냄새, 맛, 감각, 뜻) 육경(六境)과 부딪쳐 끊임없이 일어난다.

 

번뇌를 덜어내는 108배를 하고…

 

육근과 육경 부딪칠 때마다 그 하나하나에 좋고(好)·평등하고(平等)· 괴롭고(苦)·나쁘고(惡)·즐겁고(樂)·버리는(捨) 여섯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그러므로 육근과 육경이 부딪치면 즉 서른여섯 가지((6×6=36)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이 36번뇌가 과거에도 했었고, 현재에도 하고 있고, 미래에도 할 것이기 때문에, 즉 과거·현재· 미래의 3세를 곱하여 108번뇌(36×3=108)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108번뇌가 수없이 번지고 번져서 순식간에 팔만사천 번뇌가 바다처럼 퍼지고 드디어 중생은 고해(苦海)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고해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 절에 가면 108배, 1080배, 3,000배를 한다.

 

 

 

 

 

절을 하다보면 마음속의 번뇌 망상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조금씩 공간이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자신을 만나려고 하면 누구나 반드시 3000배를 하라고 했던 것이다. 스님을 시험하려는 번뇌로 가득 찬 사람에게 그 어떤 마을 한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1배 2배… 108배를 하고 나니 그 추운 날씨에도 몸에 땀이 났다. 마음속 번뇌가 조금은 덜어졌을까? 대웅전을 나서는 마음이 좀 가벼워진 것 같다. 대웅전에서 바라보이는 삼성산이 영험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웅전 뒤꼍에는 스님이 눈을 치울 때 쓴 눈삽과 빗자루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스님은 이 제설도구로 서울대공학관에서 자운암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에 쌓인 눈을 다 치었나 보다.

 

 

 

응달진 장독대에는 두꺼운 눈 모자를 쓴 장독들이 그대로 도열해 있다. 눈이 다 녹으려면 아마 3월도 다 지나가야 할 것 같다.

 

 

 

공양간(밥을 먹는 장소) 앞에는 새들에게 주는 모이가 눈 위에 흩어져 있다. 추운 겨울, 새들과 함께 나누워 먹으려는 스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다시 대웅전 마당을 돌아 나오는데 대웅전 기둥에 새겨진 주련(柱聯-기둥에 세로로 쓴 글씨)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온다. 닿고 달아서 아래부문은 잘 보이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서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佛身普扁十方中(불신보편십방중) 부처님 몸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삼세 여래가 한 몸이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넓고 크신 원력구름 항상 다함이 없으니

汪洋覺海玅難窮(왕양각해묘난궁) 넓고 먼 깨달음의 바다 헤아리기 어려워라

 

 

 

 

 

 

 

 

 

 

 

대웅전을 나서 자운암을 내려오는데 아파트와 빌딩숲이 스모그에 가려 가물거렸다. 저 속에서 중생은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고해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교정을 걸어 내려와 사바세계로 가는 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