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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친 시아버지?

찰라777 2013. 2. 15. 18:23

[서평] 정신과 의사 이근후 박사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멋지게 나이들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딩동! 우리 집 반장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번 주 토요일 모임을 북악스카이웨이의 한 경양식집에서 할까 하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으면 그곳에서 만나자는 내용이다. 나는 흔쾌히 'OK' 답장을 보냈다. 반장은 나의 맏아들이다. 장남이라서 반장을 맡은 것이 아니다. 식구들이 6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반장을 한다. 반장 제도는 10년 전 우리 가족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면서 시작되었다.('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하 책 35페이지에서)

저자는 한 지붕 아래서 두 아들과 며느리, 두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들까지 3대에 걸쳐 무려 열세 명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가족이다. 그런데 이 대가족 제도의 아이디어는 저자 본인이 낸 것이 아니라 장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나이 든 부모를 돌보고 육아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에서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에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시부모이면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한 지붕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갈등과 문제가 생겨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상호 불간섭의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부모인 내가 자식 집에 갈 때에도 비록 계단 몇 개만 올라가 문을 두드리면 되었지만 반드시 전화를 걸어 자녀들에게 허락을 먼저 구했다. 그리고 각 가정의 일과 개인의 일이 가족 전체의 일보다 우선하도록 했다. 또 공동 전기료와 같은 공통비용은 나눠서 똑같이 내도록 했으며, 가족전체가 모여 식사를 하는 일은 철저한 합의를 거쳐 결정했다.(책 40페이지에서)

 팔십을 바라보는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50여 년간 정신과 의사 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은 체험과 지혜를 담아낸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는 장남의 제의를 가족회의를 거쳐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했다. 나이 든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 자식들에게나 본인들에게도 결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내 상호 불간섭의 원칙과 독립성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한 지붕에서 살기로 결정을 했다. 집터는 저자가 마련하고, 집을 짓는 비용은 네 자녀가 형편대로 마련했다.

연립주택 식으로 지어진 가구의 거주 공간은 각자의 능력만큼 평수가 정해졌고, 내부 구조와 출입문 또한 각자의 취향대로 했다. 한 지붕 아래 살더라도 철저하게 개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공동 전기료 등 공공요금도 나눠서 똑같이 내도록 했고, 가족 전체가 모여 식사를 하는 일은 반드시 상호합의를 거쳐 결정했다. 저자가 그렇게 대가족을 이루고 산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서로가 만족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출간된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미래 사회는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 살 것이라고 미리 예측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정보화 시대에 누가 얼마나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형성되는데, 현대 사회의 정보력은 옛날의 노동력과 같은 개념이라는 것. 그러면서 1인 가족과 5인 가족 가운데 누가 더 부자겠는가 하고 묻는다.

그가 자녀들과 한 집에서 살기로 결정을 한 속사정도 자식들과 정보를 나누고,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언젠가 선배 교수가 연구소를 찾아왔을 때 일이다. 나와 한담을 나누던 중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 그러니까 내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아마도 아내가 무슨 일을 부탁하는 것 같았다. 며느리는 "예? 그럼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라고 묻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그건 안 되겠는데요."

며느리가 자리를 비우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자네 며느리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 며느리교육 한번 제대로 시켰구먼." 선배의 눈에는 시어머니의 부탁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단박에 거절하는 며느리가 마뜩찮았던가 보다. 정작 시아버지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선배 교수 말대로 며느리 교육은 내가 '제대로' 시켰다. 큰아들이 결혼한 뒤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책 42페이지에서)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장남이 결혼하여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 뒤 진정한 가족의 모델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을 가르친 것은 시부모와 며느리로서의 상하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누구보다도 자식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민주적인 아버지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하루 종일 녹음기를 켜 두고 가족끼리 오가는 대화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지시를 하는 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부터 그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이 거절을 흔쾌히 받아들여 마음에 앙금이 없는 것이야말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비결이라는 것, 그는 이를 '거절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와! 눈떴구나! 하하하!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세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 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의 찰나적인 신비감이라니! (책 21페이지에서)

저자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간다고 억울해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좋은 점도 많다는 것. 우선 생활이 단순해지고, 책임도 줄어든다고 말한다. 시간이 늘어나고 인내심도 많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나이를 탓하지 말고 오히려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해보라고 한다.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연천 기자의 집을 찾아왔던 저자. 오래된 '화이트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저자는 지난해 설날 무렵 영하 20도 추운 날씨에 기자가 살고 있는 연천 임진강변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는 저자와 10여 년 전, 네팔에 의료 봉사를 함께 다녀오면서 알게 되었다. 

팔십 노구인 그가 하필이면 50년 만에 찾아온 추운 날씨에 최전방을 찾아온다고 하여 나는 내심 무척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사람들도 감내하기 힘든 강추위를 무릅쓰고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지금도 방한복에 러시아 털모자를 쓰고 위문품(?)으로 쌀포대를 들고 온 그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며칠째 추운 날이 계속되었지만 나는 연천 행을 감행했다. 날이 풀린 후에, 따뜻한 봄이 되어 찾아가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섬진강 근처에서 살 때도 언제 한번 찾아가겠다던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또 약속을 어기게 될 것만 같았다. ……
나는 두툼한 점퍼에 러시아 털모자까지 쓰고 일행과 함께 아침부터 서둘러 연천으로 출발했다. 떠나기 전날, 최 선생에게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물었더니 농담처럼 군량미가 떨어졌다기에 쌀 한 포대와 라면 한 박스를 샀다. 그가 사는 마을은 비무장지대가 코앞이었다. …… (책 27페이지에서)

그는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며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날도 추위 때문에 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무료하게 보내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

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인데, 그 외로움은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내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은퇴 후에 나를 찾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봉사를 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봉사는 젊었을 때부터 몸에 익히지 않으면 당장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천천히 찾아보면 할 일이 쌓여 있다는 것.

양로원에서 신문 읽어 주기, 출퇴근 시간에 도로 교통 수신호를 해 주는 일 등. 직장에서 물러난 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까봐 걱정하기 전에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봉사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자동차, 휴대전화, 손목시계가 없는 이유

자동차와 손목시계, 휴대전화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원시인 취급한다. 자식들은 내가 이기적이라고까지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내는 필요할 때 바로 통화를 할 수 없어 답답하고, 자식들은 내가 외출할 때 자동차로 모셔다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전용 자가용 '택시'가 있으니 절대 눈치 보거나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책 298페이지에서)

 이하늬 손녀가 그린 이근후 명예교수의 초상화

 

저자는 자동차와 휴대전화, 손목시계가 없다. 그러나 그의 자동차는 벤츠보다 뛰어난 BMW(BUS, METRO, WALK)라고 말한다. 44년 된 무사고 면허증이 있지만, 그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아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시계는 딱 하나, 결혼을 할 때에 아내에게서 결혼선물로 받았었는데, 가정교사하면서 가르친 아이가 훔쳐 가 엿으로 바꿔 먹은 뒤로 사지 않았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벽에 시계가 붙어있어 필요가 없더라는 것.

또 가는 곳마다 공중전화가 있고, 근무를 할 때에는 사무실에 전화가 있으니 휴대전화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편하다고 하지만 사실 촌각을 다투는 급한 용무는 그리 많지 않고, 오히려 휴대전화 때문에 천천히 알아도 될 일을 미리 알아 마음고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1인당 소득이 몇 배나 증가했지만 이들 국가의 행복지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최신 자동차와 휴대전화, 카메라 등 전자제품을 소유해도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박완서 선생의 죽음에서 얻은 교훈

첫해 시상식 날에 박완서 선생은 말했다. "나는 평생 이런 일에 참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모임에 나서는 것이 거북하고 내 이름 걸고 상 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일은 마음이 끌립니다. 부디 이 상을 오래 주기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습니다."(본문 310페이지에)

저자가 오랫동안 봉사를 해 오던 광명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 공모전 시상식에서 고(故) 박완서 선생이 저자에게 한 말이다. 저자는 일면식도 없는 박완서 선생에게 아이들의 시상식을 부탁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수락을 하여 죽을 때까지 매년 시상식에 참여해 아이들에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상을 받은 아이가 학교 담임교사에게 박완서 선생님에게서 직접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가 거짓말을 한다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소개 한다.

저자는 항상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상을 주시던 박완서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죽고 난 다음에 사랑하는 이들이 덜 슬프도록 미리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평소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 '밝은 얼굴로 생활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쓴다. 게으르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큰 업적보다 차곡차곡 쌓여 내 주위를 좋게 만들고 평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기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존재가 된 박완서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저자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고 했다.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고 그는 강조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 나이 드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족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팔십을 바라보는 노익장인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란 제목으로 펴낸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읽어 갈수록 '쿡쿡쿡'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재미있는 책이다.


거기에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로 20만 명의 독자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선경씨가 마흔 살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이근후 명예교수와 함께 엮어 펴낸 책이라 읽기에도 매우 편하다.

그는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별똥별을 줍던 철들지 않는 소년이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가끔 가족과 동료, 제자들에게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양복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다거나, 메고 다니는 크로스백 안에 사막에 떨어져도 사흘간은 버틸 수 있는 서바이벌 키트가 들어있다고 소문을 내기도 한다는 것.

이 책에는 그렇게 아직 철들지 않은 소년의 티 없는 익살과 유머가 팔십 노익장의 지혜 속에 녹아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가다 보면 소년의 익살과 노익장의 지혜를 이중으로 느끼게 된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서 50년간 환자를 돌보며 학생들을 가르쳐 온 정신과 의사이다. 그런 그에게도 숨겨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려운 집안 형편을 혼자서 해결하며 살아야 했다. 대학 시절에는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가해 감옥 생활도 하며 고난을 겪기도 했다.

 저자는 80 노익장이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별똥별을 줍던 철없는 소년티가 나는 젊음이 살아있다.

 

그런가 하면 30년 넘게 네팔에 의료봉사를 하고, 40년 동안이나 광명보육원 아이들을 돌보아왔다.  또한 76세의 나이에 사이버대학에서 늦깎이로 공부를 하여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으로 졸업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재미있어서 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란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7가지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심장협심증으로 대수술을 받았고, 왼쪽 눈은 완전 실명 상태이다. 그럼에도 그는 퇴임 후에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살 거라고 말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가지가 아주 재미있게 기술되어 있다. 책을 머리맡에 두고 심심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신문의 가십(gossip)처럼 흥미롭게 읽다보면 예상치 않았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김선경 저, 갤리온 펴냄, 2013.02.01, 1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