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아파트 베란다에 핀 꽃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찰라777 2013. 3. 25. 11:00

3월 21일, 오늘은 서울에 가는 날이다. 23일 날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인 자비공덕회 기도법회에 참석해야하고, 24일, 26일은 아주 오래된 모임인 ‘부부사랑’ 친구들의 커플 모임이 있다. 3월 25일, 28일은 아내의 병원 외래진찰이 잡혀있다.

 

 

이렇게 연달아 징검다리처럼 잡혀 있는 모임과 약속 때문에 일주일 넘게 서울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사소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두가 소중한 모임과 약속이다. 시간이 나면 영화관에 가서 멋있는 영화도 하나 볼 예정이다.

 

 

 

 

 

 

아내와 나는 집안 이곳저곳을 말끔하게 청소를 하고 버릴 쓰레기를 정리하여 지정봉투에 차곡차곡 넣었다. 집을 비울 때는 항상 청소를 한다. 문단속을 하고, 전기를 끄고, 전자제품의 코드를 뽑아둔다.

 

 

실내에 있는 화분과 화분에도 물을 충분히 준다. 블루베리 나무에 싹이 맺혀있다. 한참 나오려고 하다가 꽃샘추위의 위력에 잠시 움츠러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없는 동안 잘 자라다오. 너의 예쁜 새싹을 보고 싶구나.” 텃밭 안쪽에 서 있는 산수유도 노란 꽃망울이 터져 나오려다가 잠시 주춤하고 있다. 마늘, 시금치들도 파란 싹이 머뭇거리고 있다.

 

 

“애들아 잠시 우리가 없는 사이에 잘들 있어.”

 

 

지난 한 달간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 사슬이 풀리자 삽과 쇠스랑을 들고 텃밭에서 노동을 했다. 땅을 파고, 퇴비를 주고, 이랑을 만들고, 비닐 멀칭을 하고, 솥단지를 만들고,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하루하루가 모두 신성한 노동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과 감사기도를 하고나면 창틈으로 찬란한 햇빛이 스며든다. 마음의 눈과 육안 떠지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홀로 있는 즐거움이랄까? 여럿이 있으면 발견하지 못할 즐거움,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된다.

 

 

대문을 걸어 잡구고 나의 오래된 낡은 애마(12년 된 산타페)에 시동을 건다. 애마는 금굴산 자락 작은 길을 돌아 동이리 마을을 지난다. 주상절리와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이 우리를 환송한다. 동이1교의 교각 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잠시 동이리 마을과 이별이다.

 

 

 

 

마전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삼화교을 지나. 어유지리 삼거리에서 37번을 국도를 타고 자유로로 향한다. 37번국도와 자유로는 오른쪽에 임진강을 끼고 시원하게 뻗어 있다. 봄을 맞이하는 풍경이 차창에 어린다. 봄은 풍요의 시작이다. 풍요! 풍요의 l반대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핍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부족함, 즉 결핍이다. 우리는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날마다 허둥거린다. 새벽에 별을 보고 출근을 하고, 밤에 별을 보고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편함에 쌓이는 청구서를 막기 위해, 갖고 싶을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부족한 돈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돈은 벌면 벌수록 더욱 부족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갖고 싶은 것이 자꾸만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성능이 좋은 카메라와 컴퓨터, 스마트 폰, 텔레비전, 멋진 여행의 유혹…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많은 유혹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듯이 줄줄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부족함을 느낀다. 부족함을 느끼는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우울증과 상실감의 멍에를 씌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비관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비관에 젖어서는 안 된다. 다른 눈을 떠서 주위를 살펴보면 부족한 것보다 풍요로운 것들도 꽤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어 주는 찬란한 햇빛, 신선한 공기,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 점점 훈훈해지는 봄바람…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지낼 뿐이다.

 

 

절망과 비관을 모르는 우리의 위대한 스승 헬렌 켈러는 말한다. “비관주의자 중에 인생의 비밀을 발견하거나, 지도에 없는 땅으로 항해하거나,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홀로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보면 행복은 자구만 공허해지는 경제적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큰집, 더 좋은 자동차 등 사는 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마음을 억누르는 재테크 5개년 계획 같은 억눌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곳 남북이 대치한 휴전선 부근에서 1년 남짓 생활을 하면서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평온을 느끼고 있다. 하루 종일 사람의 그림조차도 볼 수 없는 날이 많다. 그러나 나는 텃밭을 일구며 나무와 풀들과 대화를 한다. 새들과 고라니, 들 고양들과도 말을 걸어본다

 

 

우리 집에는 들 고양이들이 자주 드나든다. 녀석들은 베란다 밖을 어슬렁거리며 거실에 있는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한다. 녀석들의 표정은 “뭐 먹을 것 좀 없나요?”라고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먹다 남은 음식 중에 생선이나, 육류가 있으면 고양이들한테 주고 있다. 정원의 퇴비장에 작은 그릇 하나를 두고 그곳에 음식을 갔다 놓으면 녀석들은 귀산 같이 알고 맛있게 먹는다.

 

 

과연 동물들의 후각은 인간의 후각보다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뛰어난 것 같다. 어떨 때는 새들이 먼저 알고 가로 채 먹는 경우도 잇다. 녀석들은 생선 한 토막, 고기 한 점을 먹고 나면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결핍을 모르는 표정이다.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배가 불러도 만족함을 모른다.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을 자꾸만 욕심의 창고에 저장을 하력 하다 보니 결핍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오지에 살다보면 서울 은행 CD기에서 찾아 온 돈이 한 달 내내 그대로 지갑에 잠들고 있을 때도 많다. 땅을 파고 텃밭을 가꾸다 보면 돈을 쓸 시간도, 쓸 곳도 없다. 워낙 오지인지라 돈을 쓸 만한 장소가 없다. 영화관도, 그 흔한 7일레븐도 없다. 서울에서 올 때에 생활필수품을 사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식량으로 밥을 짓고, 땅 속에 묻어 놓은 김치를 꺼내 세끼 밥을 먹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제3의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면 내 삶 곳곳에 풍요로움이 존재해 있다. 이미 가진 것에 감사를 할 줄 모르고 어떻게 더 많은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임진강을 지나면 드디어 넓은 한강 하류가 나온다. 한강 하류에서 88도로를 따라 오면 곧 제1한강교가 나온다. 강변 양쪽에는 하늘을 찌는 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휴전선 인근 동이리마을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풍경이다.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현충원 뒷길을 따라 봉천동 고개에 다다르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한다.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아파트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람 사는 냄새가 확 풍기는 동네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의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짐을 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 도착하여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 거실에 꽃향기가 확 풍겨온다. 아파트 베란다에 핀 영산홍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관악산이 바라보이는 베란다 정원! 그 작은 정원에 빼꼭히 들어찬 화분들. 아파트의 베란다에도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잠시 다른 생각을 멈추고 주변을 에워싼 고마운 것들에게 감사해보자. 매일 물을 주고 꽃을 키워준 아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 물과 햇빛을 받고 꽃을 피워준 화분의 화초들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멀리 베란다의 꽃 사이로 보이는 관악산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감사의 눈을 뜨고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아, 오늘 하루도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사를 드리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