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쫀득쫀득한 쑥개떡에 사랑을 담다

찰라777 2013. 4. 22. 20:56

봄비 내리는 곡우... 금년엔 어쩐지 풍년 들 예감이...

 

오늘은 4월 20일 24절기의 마지막인 곡우다.  "곡우(穀雨)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침부터 봄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한동안 마른 대지가 봄비에 촉촉이 젖어드니 숨쉬기가 훨씬 편하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반대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속담도 있다. 곡우에 가뭄이 들면 그 해 농사는 꽝이 되어 치명상을 입는 다는 뜻이다. 이때 비가 안 오면 파종한 씨앗이 싹이 트지 않아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 두껍고 무거운 흙을 파죽지세로 밀고 나오는 감자새싹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텃밭으로 갔다. 매일 이른 아침마다 파종한 씨앗들을 돌아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난 4월 1일 파종한 감자, 완두콩, 옥수수, 강낭콩, 당근 등이 싹이 트지를 않고 정중동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어찌 되었을까?

 

 

 

맨 앞줄에 있는 옥수수와 강낭콩이 아직 싹이 보이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감자를 심어 놓은 땅이 금이 가고 절편처럼 위로 들려 있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나서 가까이 가서 금이 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오! 이건 감자새싹이 아닌가! 여린 감자새싹이 그 두꺼운 땅을 파죽지세로 밀어 올리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보, 감자가 드디어 새싹이 나왔어요!"

"정말이요?"

 

나는 거실에서 쑥을 다듬고 있는 아내를 향하여 큰 소리를 질렀다. 감자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우리에게는 빅뉴스이기 때문이다. 비닐을 덮어 놓은 땅에 10cm 정도 깊이 구멍을 파고 씨감자를 묻었는데, 그 무거운 흙을 밀어내고 새싹을 틔우는 감자가 신기하기만 하다.

 

 

 

▲ 지진이 일어난 것처의 땅에 균열을 일으키며 힘차게 솟아나오는 감자 새싹

 

털이 보송보송한 여린 싹이 힘차게 땅을 뚫고 나오는 새 생명을 보니 힘이 절로 솟구친다. 매년 보는 생명들이지만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신비스럽고 경이롭기만 하다. 어떻게 하면 저 여린 싹이 이렇게 두껍고 무거운 흙을 밀어 올릴 수 있을까? 그것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말이다. 두껍고 무거운 땅에 균열을 일으키며 세상 밖으로 밀고 나오는 감자새싹은 마치 지진이 일어난 후에 새로운 천지창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로 대단한 힘이다! 고개를 다소곳이 내밀고 때마침 내리는 봄비를 맞고 있는 감자새싹이 귀엽기 짝이 없다. 감자밭을 지나 당근을 심어놓은 곳으로 가니 당근새싹도 바늘잎처럼 돋아나고 있다. 그 작은 씨앗이 움을 트고 솟아올라오다니 장하기만 하다. 어디 그뿐인가. 완두콩도 부드러운 새싹을 내밀고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고 있다.

 

 

 

▲ 당근 새싹이 바늘잎처럼 돋아나고 있다.

 

 

 

▲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짓는 완두콩의 여린 새싹

 

그동안 변덕스런 날씨로 잠잠하기만 하던 텃밭이 봄비 내리는 곡우를 맞이하여 새싹들의 힘찬 합창으로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곰취와 취나물도 질세라 소리를 지르며 맹렬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난 가을에 심었던 마늘과 시금치도 한층 푸르러지며 성숙해지고 있다. 다만, 같은 날 파종을 한 강낭콩과 옥수수만 아직 늦잠을 자고 있는지 소식이 감감하다. 녀석들도 머지않아 깨어나겠지.

 

쫀득쫀득한 쑥개떡에 사랑을 담다

 

곡우에는 증편과 개피떡을 해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아내는 요 며칠간 뜯은 쑥으로 쑥개떡을 만들어 먹자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아내는 쌀과 찹쌀을 8대2 비율로 섞어 물에 담가 놓았다. 그리고 쑥을 정성스럽게 다듬어 여러 번 씻어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쳤다. 산처럼 많게만 보이던 쑥이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니 엄청 졸아들고 만다.

 

 

 ▲ 텃밭에서 캐낸 싱싱한 쑥

 

 ▲ 물로 살짝 데쳤는데 엄청 줄어들었다.

 

▲ 찹쌀을 섞은 쌀을 가루를 만들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건져냈다.

 

우리는 쑥과 쌀을 왕징면 사무소 옆에 있는 <왕징방앗간>으로 가지고 갔다. 방앗간에서는 쌀과 쑥을 섞어서 기계로 잘게 빻은 다음, 마치 진흙처럼 반죽으로 짓이겨 주었다. 옛날에는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했던 것을 기계가 대신해 주고 있다. 쑥이 들어간 반죽은 연한 연두색을 띄고 있다.

 

 ▲ 왕징방앗간

 

▲ 쌀가루와 쑥이 섞어져 나오는 모습

 

방앗간을 다녀오다가 못자리판에 볍씨 파종 준비를 하고 있는 이장님을 만났다. 곡우가 농사에 가장 중요한 절기임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볍씨를 담글 때는 상가에 들렀거나, 부정한 일을 본 사람은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한다.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담그면 싹이 잘 트지 않아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속설이 있다. 우리야 부정한 일을 본 일이 없지만 조심스러워 차 안에서만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갔다.

 

쑥개떡은 말랑말랑한 반죽이 마르기 전에 만들어야 한다. 쑥반죽을 집으로 가져온 아내와 나는 손으로 반죽을 적당히 떼어서 둥글납작하게 개떡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쑥의 향이 온 집안에 가득 번진다.

 

▲방앗간에서 만들어 온 반죽으로 쑥개떡을 만들다. 

 

 

 

▲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하트모양의 쑥개떡

 

"여보, 하트모양으로 만든 이 개떡이 마음에 드오?"

"호호, 별걸 다 만들었군요. 좀 서툴게 보이지만 마음에 드는데요!"

"하하, 내 실력이 이거 밖에 안 되나 보오."

 

곡우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데

금년에는 어쩐지 풍년이 들것 같은 예감이...

 

내 생애 처음 만들어 보는 쑥개떡이다. 나는 아내를 웃기게 할 요량으로 작란삼아 개떡을 하트모양으로 만들어 보여 주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곡우 날에 아내와 쑥떡거리며 만든 쑥개떡이 쟁반 위에 하나하나 늘어갔다. 이 쑥개떡을 위생 팩으로 싸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간식으로 먹으면 맛이 그만이란다. 아내는 비가 그치면 쑥을 좀 더 뜯자고 한다.

 

다 만들어진 쑥개떡을 위생 렙으로 일일이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쑥개떡 만들기를 끝낸 후 아내는 여린 쑥을 방앗간에서 빻아 온 쌀가루를 버무려 쑥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쑥밥을 접시에 담아 들고 왔다.

 

 

 

▲ 여린 쑥으로 버무려 든 쑥밥

 

"오늘 저녁은 특식으로 쑥밥을 먹어요."

"아하, 어릴 적에 고향에서 먹어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쑥밥을 먹어보네요. 흐음~ 맛이 그만인데!"

 

어릴 적 춘궁기에 시골에서는 쑥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 때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만들어 먹던 쑥밥이다. 그러나 지금은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귀한 음식이다. 쑥으로 만든 쫀득쫀득한 쑥밥과 개떡을 만들어 먹고 나니 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곡우에 이렇게 봄비가 내리니 아무래도 금년에는 풍년이 들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2013.4.20 곡우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