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얼마나 답답했을까?

찰라777 2013. 4. 29. 15:25

비닐 속에서 질식할 뻔한 감자 새싹

 

농촌에 살다보니 자연히 새벽 형 인간으로 바이오리듬이 변해간다. 언제부터인가 새벽 4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대신 저녁에는 저절로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 4시에 일어나니 갑자기 번개가 치며 일진광풍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2층 다락방에 앉아 있는데 유리창이 흔들리고,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금년 봄에는 비바람이 유난히도 많이 몰아치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잦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텃밭에 심은 야채들이 매우 더디게 싹을 틔우고 있다.

 

 

▲비닐 속에 갇혀 있다가 나온 감자새싹. 매우 여리다.

 

 

날이 밝아오면서 비가 점 가늘게 내리더니 이내 그치기 시작했다. 텃밭에 나가보니 그새 감자와 당근, 완두콩이 쑥쑥 올라와 있다. 옥수수도 드디어 싹을 틔우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런데 감자 싹이 어떤 것은 잘 나오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비닐을 친 부문이 위로 쏙 올라와 있었다. 그 부분을 찢어보니 놀랍게도 그 속에는 연한 감자 싹이 퍽 하고 올라왔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처음부터 밖으로나와 있는 감자싹은 푸르고 건강하다.

 

 

"휴우~ 숨이 막혀서 죽을 뻔 했어요!"

 

하늘을 본 감자 새싹들이 이제야 살겠다는 긴 한숨을 토해내며 봄바람에 춤을 추어댔다. 햇빛을 잘 받은 감자는 짙푸른 색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데, 비닐 속에 갇혀 있는 감자 싹들은 마치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아기처럼 연하고 약하게 보였다. 역시 모든 생물은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잘 받아야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미처 나오지 못한 감자 싹들은 모두 그런 상태였다. 나는 비닐을 하나하나 떠들고 감자들의 새싹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주었다. 그동안 이 어리석은 주인을 얼마나 원망을 했을까? "감자야 정말 미안하다. 이 어리석은 주인을 용서해다오." 나는 어린 감자 새싹들에게 사죄를 하듯 일일히 사과를 하며 답답한 비닐을 걷어냈다.

 

비닐을 치지 않고 노지에 심은 감자들도 씩씩하게 솟아나오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비닐을 치지 않고 심어야 할 것 같다. 비닐을 씌우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저렇게 숨이 막히게 놓아두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옥수수 새싹

 

 

같은 날 심은 파종 중에 땅콩과 강낭콩은 아직 싹을 내밀지 않고 있다. 아마 지금쯤 녀석들도 땅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용틀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둘 다 비닐을 씌우지 않고 그냥 노지에 심어놓아서 싹을 틔우는 것이 좀 더딘 모양이다.

 

내가 잠간 집을 비운 사이 친구가 심어놓은 머우대도 잘자라나고 있다. 이제 내일 모래면 5월이다. 산수유의 노란색이 퇴색되어 빛바랜 걸레처럼 변해가고 대신 파란 새싹들이 꽃 사이로 돋아나고 있다.

 

 

▲산수유

 

▲머우대

 

▲완두콩 새싹

 

 

▲상추

 

 

금굴산에는 이제야 산 벚꽃과 진달래가 한참 피어나고 있다. 비가 개이고 나면 땅속에 있는 새싹들도 금방 밖으로 나오겠지. 잔디정원에는 잔디 새싹들이 점점 푸른 물감을 칠하듯 변해가고 드문드문 노란 민들레가 미소를 짓고 있다. 아, 그래서 봄은 이렇게 좋은 것인가 보다.

 

 

▲금가락지로 들어오는 길에 있는 덕의터와 진달래

 

 

▲이제 한창피어나는 벚꽃

 

▲푸른 보리밭에 둘러싸인 금가락지 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