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매미의 지혜를 배운다

찰라777 2013. 9. 15. 09:47

 

열세 포기로 줄어든 상추

 

 

▲50포기 상추가 매미애벌레가 먹어치워 겨우 13포기 남았다.

 

 

"하나, 둘, 세, 넷... 열 셋..."

 

오늘 아침에도 상추 밭에 가보니 어김없이 목이 잘려진 상추가 있었다. 50여 포기를 심었던 상추는 이제 15포기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러다간 단 한 포기의 상추도 남아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땅속에 머물고 있는 매미애벌레의 모습

 

그런데 상추 목을 잘라버린 애벌레가 매미애벌레란 사실을 알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매미애벌레는 매미가 되기 위해서 땅속에서 5년 내지 길게는 17년 동안이나 지낸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어제 죽인 매미애벌레는 몇 년 동안이나 살고 있었을까? 나는 매미가 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매미애벌레를 죽이는 우를 범한 것이다.

 

목이 잘려진 상추 밑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둥그런 구멍 속에 매미애벌레의 머리가 보인다. 그 모습이 참으로 신비하게 보인다. 한 마리의 매미가 되기 위해서 저렇게 5년에서 길게는 17년을 버티며 땅속에서 살아간다니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매미가 된 후 길어야 한 달, 짧기만 한 매미의 일생에 비해 애벌레의 일생은 너무나 긴 암흑기를 보내게 된다. 매미가 하루 종일 울어대는 이유는 죽기 전에 짝을 짓기 위해서라고 한다. 소리 내어 애타게 우는 매미는 수컷이다. 수컷매미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종일토록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한다. 이는 죽기 전에 짝을 지어 종족을 퍼뜨리기 위해서다.

 

지상의 한 달 위해 땅 속에서 17년을 살아가는 매미의 일생  

 

▲짝짓기를 위해 겨우 한 달을 살아가는 매미의 일생

 

그렇게 울다가 마침내 짝을 찾은 수컷매미는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는다. 암컷은 적당한 나뭇가지를 하나 선택한 뒤에 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그 속에 알을 낳고 죽는다. 긴 애벌레 상태로 땅속에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매미는 이처럼 기껏해야 한 달 정도 사랑을 나눈 뒤 이렇게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한다.

 

보통 암컷 매미 한 마리가 한 군데에 적게는 5~1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모두 30~40 군데에 알을 낳는다. 암컷 매미 한 마리가 대략 3~4백 개의 알을 낳는데, 800개까지 낳은 수도 있다고 한다.

 

나무껍질에 산란된 매미 알은 1년이 지나면 흰 방추형의 애벌레로 깨어나게 된다. 애벌레는 몸을 싸고 있던 껍질을 벗고 완전한 애벌레가 되어 땅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땅을 파고 들어간 애벌레는 마침내 기나긴 땅속 지하생활을 시작한다.

 

애벌레의 먹이는 풀과 나무뿌리의 즙이다. 끝이 뾰쪽하고 갈고리 같은 앞다리로 흙을 파고 나무뿌리나 풀뿌리를 발견하면 대롱 모양의 입을 꽂아 즙을 빨아 먹는다. 즙을 빨아먹는데 상추의 줄기는 왜 잘려질까?

 

 

▲매미애벌레가 즙을 빨아 먹은 상추

 

아마 애벌레가 상추의 뿌리에서 줄기 쪽으로 입을 대고 즙을 빨아먹으면 상추가 너무 연해서 저절로 목이 부러지는 모양이다. 매미애벌레는 텃밭에 심은 채소 중 부드러운 상추를 주로 골라 즙을 빨아 먹고 있는 모양이다.

 

매미애벌레는 곤충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로 부화된 매이의 유충은 보통 5년, 7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가 성충이 된다. 매미애벌레는 여러 번 허물벗기를 되풀이 하며 점점 크게 자라난다. 땅속 생활이 끝날 때쯤이면 땅 위를 향하여 수직으로 굴을 파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매미들이 성충으로 탈바꿈을 하는 계절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참매미와 유자매미 애벌레는 5년을 주기로 지상으로 나온다. 그런데 미국 중서부에 살고 있는 매미 애벌레는 17년마다 올라온다고 한다. 매미애벌레가 17년 동안이나 땅속에서 보내다니… 보통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빨리 자란 애벌레라도 절대로 먼저 땅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이 꼬박 17년을 채운다고 한다.

 

이 ‘17년 매미’라고 불리는 수십억 마리의 매미가 단체로 울어대는 소리는 가히 공포영화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수컷 매미 한 마리가 내는 소리는 믹서기 소음에 맞먹을 정도로 요란하다는 것.

 

소수(素數)의 비밀을 아라고 있는 매미

 

그런데 매미의 생명주기는 5년, 7년, 13년, 17년 등으로 묘하게도 그 공통점이 모두 소수(素數)라는 점이다. 소수란 자연수 중에서 1과 자신만으로 나누어지는 1보다 큰 수를 말한다. 매미는 왜 짝수가 아닌 소수의 주기를 택할까? 그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종족 보존을 위해서다.

 

매미의 천적은 새, 다람쥐, 거미, 거북이 등 너무나 많다.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명주기를 천적의 수명주기와 달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미의 수명주기가 5년이고 천적의 l주기가 2년이면, 매미가 천적과 만날 기회는 10년 마다 온다. 매미의 주기가 17년이고, 천적의 주기가 3년이라면 51년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

 

매미는 자신을 숙주로 하는 기생충의 생명주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재미있는 설이 있다. 만약에 기생충의 수명이 2년이라면 매미는 2로 나누어떨어지는 수명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족보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미의 주기가 5년이라면 주기가 3년인 기생충과는 15년 마다 만난다. 그런데 주기가 17년인 매미의 경우 기생충은 매미의 수명을 따라가려 노력했으나, 수명이 마의 벽과도 같은 16년에 이르러 272년 간(16년 곱하기 17년) 매미를 만나지 못하고 모두 멸종해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매미는 소수가 종족보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매미의 생명주기는 처음에는 주기가 짧았다가 점점 길어져 현재의 17년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매미처럼 처음에는 주기가 3년이었다가 천적과 만나자 5년, 7년으로 늘렸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지자 미국의 매미들처럼 13년, 17년으로 주기를 늘렸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17년이란 주기도 생존이 불안해지면 19년 21년으로 늘려갈 줄도 모은다.

 

“맴 맴 맴~”

참나무 위에서 매미가 구슬피 울고 있다. 가을이 다가오는데 저 매미는 아직 짝짓기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극성스럽게 울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드물게 들려온다.

 

자연의 신비는 참으로 오묘하기만 하다. 하찬하게만 알고 있었던 매미애벌레인 굼벵이로부터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상추를 잘라버리는 벌레가 메미애벌레란 사실을 알고나서 어찌 이들을 죽일 수 있겠는가? 아마 저 애벌레는 땅속에서 매미가 되기 위해 5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남은 13포기의 상추가 다 없어지더라도 한 달을 매미로 살기위해 인고의 세월을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는 매미애벌레를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참고문헌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