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공포스런 김장, 하하 호호 웃으며 담그니 김치맛 한번 죽여주네!

찰라777 2013. 11. 11. 07:16

 

하얗게 서리가 내리던 날 담은 김장김치

 

아침에 일어나니 서리가 하얗게 내려있다. 지금까지 서리가 간간히 내리긴 했지만 이렇게 지붕이 하얗도록 내리기는 처음이다. 기온도 영하로 떨어져서 입김이 하얗게 서린다. 장독대에도, 배춧잎에도, 낙엽위에도 온통 서리가 하얗게 덮여있다.

 

 

 

▲ 배추를 뽑아낸 텃밭에 서리가 하양게 내려앉아 있다.  몇 포기 남겨둔 배추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다.

 

서리를 맞은 고춧잎과 호박잎, 그리고 당근 잎이 맥을 추지 못하고 축 쳐져 있다. 그러나 배추, 보리, 시금치, 갓, 국화, 상추는 서리 속에서도 싱싱하다. 입동날인 어제(11월 7일) 김장배추와 무를 뽑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집 지붕에 하얀서리가 내려 있다.

 

 

 

 

 

 

 

 

 

오늘은 어제 절여놓은 배추에 양념을 넣어 비비는 날이다. 이렇게 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날이나 첫눈이 내리는 날 손을 호호 불어가며 담근 김치는 예부터 맛이 그만이라고 했다. 햇빛이 나자 서리가 금방 녹았다. 서리가 녹은 후 환상의 김장 팀은 드디어 김장비비기에 돌입을 했다.

 

요즈음은 전화 한통화면 전국 어디서나 절임배추를 택배로 받을 수 있다. 고추, 마늘, 젓갈 소금 등 각종 양념만 대기시켜 놓으면 김장은 식은 죽 먹기라들 한다. 그러나 김장은 주부들에게 여전히 주눅이 드는 일이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넣이 비비는 것은 여전히 주부들에게 공포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배추, 무, 갓, 당근, 쪽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 소금, 액젓, 생굴, 배, 당근, 대파, 새우… 아휴~ 그 많은 양념을 외우기도 힘들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입을 해야 할지, 재료는 믿을 만한 것인지? 그렇다고 마트에서 김치를 사먹기도 찜찜하다.

 

 

 

▲ 거실 바닥에 각종 양념과 그릇을 늘어 놓고 김장 준비를 하는 풍경. 김장은 여전히 주부에게 가장 부담스럽고 공포스런 일이다.

 

김장에 넣을 양념과 간을 적당히 맞추는 것도 만만치 않고, 1년에 단 한 번 하는 행사라서 양념을 어떻게 배합을 하고, 어떻게 비벼야 할지. 혼자서 김장을 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머리 아픈 일이다. 큰 그릇 작은 그릇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쪼그리고 앉아 양념을 버무려 비비는 일은 정말이지 녹녹치 않은 일이다. 이 힘든 작업은 해 본 자만이 안다.

 

그런데 무공해 배추를 절여서 씻어놓고, 텃밭에서 직접재배를 한 무, 당근, 쪽파, 갓, 생강 등 싱싱한 재료로 양념을 만들어 여섯 명이 팀을 이루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수다를 떨며 김장을 하다 보니 모두들 피곤한 줄 모르고 김장을 진행했다. 김치를 비비고 각자의 저장고에 옮겨 넣는 내내 호호 하하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 각종 양념을 넣어서 휘휘 버무려 만든 김장양념. 김치를 양념에 비벼 버무리고 있다.

 

속 죽은 절인 배추에 무 송송송 썰어 넣고, 각종 싱싱한 재료를 휘휘 저어서 만든 양념을 배추 겉과 속에 골고루 버무려 둘둘 말아서 차곡차곡 김칫독에 넣고 있는데 부엌에서 아내가 소리를 쳤다.

 

"여기 돼지고기가 다 삶아 졌어요."

"저런, 김이 모락모락 나네요! 여기 방금 비빈 김치도 대령이요!"

"막걸리도 대령했습니다."

"우와~ 맛있겠다!"

 

 

 

 

 

▲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돼지고기. 김치를 북북 찢어 삶은 돼지고기를 말아 넣고 막걸리 한잔 마시는 기분이란... 김장은 나눔과 소통의 문화다.

 

점심 무렵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돼지고기를 쟁반에 담아서 밖으로 가져왔다. 김치를 비비던 J여사가 양념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김치 몇 포기를 그릇에 담아왔다.

 

손맛, 양념 맛, 모두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김치를 북북 찢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돼지고기 둘둘 말아 한입 입에 물고 움질움질 씹는 맛이란…고소하고 달콤하고, 매콤하고…

 

정말이지 한국의 김치맛이란 한마디로 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모든 복합적인 맛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고나 할까? 거기에 쌀 막걸리 한잔을 죽 들이키니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마침 윗집에 사는 장 선생님 부부도 텃밭에 심은 김장배추를 뽑으려 와 있었다. 주말에만 오는 부부인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미리 온 것이다. 나는 윗집으로 올라가 장 선생님 부부를 불렀다.

 

"우리 김장김치에 막걸리 한잔 하시죠."

"아니 벌써 김장을 담그셨어요?"

"네 어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비비고 있어요. 돼지고기도 삶았으니 한 점하러 가시지요."

"아, 그거 맛있겠는데요."

 

▲ 금방 만든 김장김치에 선채로 삶은 돼지고기를 둘둘 말아 먹는 맛이란...

 

 

장 선생님 부부가 텃밭에서 배추를 뽑다가 내려왔다. 그리고 야외에서 선채로 김치에 돼지고기를 둘둘 말아 맛을 보더니 눈이 크게 떠졌다. 맛이 그만이다는 표정이다.

 

"와아, 김치 맛이 짱인데요!"

"불러 주셔서 고마워요!"

"무공해 배추라서 맛이 담백할 겁니다. 많이 드세요."

 

 

김장을 담가 함께 나누어 먹는 김장 문화는 우리민족의 오랜 풍습이다. 수많은 양념과 싱싱한 배추가 버무려진 김장김치를 이웃과 함께 맛을 보는 문화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집집마다 담근 김장맛을 이웃간에 정겨운 소통을 해왔다.

 

또 다양한 채소와 발효식품이 들어간 김치는 뉴욕타임스에서 세계 건강 음식 5번째로 선정될 정도로 영양가 높은 한국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최근 유네스코는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유산으로 등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땅 속 김칫독에 총각김치를 담고 있다.

 

 

추운 겨울 먹을 걱정은 뚝!


 

김치비비기는 오후 4시경에야 끝났다. 우리가 먹을 김치는 천연냉장고인 땅속 김칫독에 묻었다. 배추김치독 2개, 총각김치, 갓김치, 생배추 등을 항아리 다섯 개에 가득 채우고 나니 부자가 부럽지 않다.

 

 

친구 부부와 J여사, S여사도 각자 가지고 온 김치 상자에 김치를 가득 채워 넣었다. 사방에 어질어진 김장 쓰레기를 함께 치우고 청소를 하고 나니 집안이 금방 말끔해졌다. 이제 김장 팀이 헤어질 시간이다. 우리는 새참으로 삶은 고구마에 차 한 잔을 하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 땅을 파서 만든 인디안 천막집 천연냉장고에 김칫독을 묻어 김장김치를 보관했다.

 

 

"이 환상의 김장 팀은 내년에도 계속 유지를 하는 겁니다?"

"우리야 좋지만 찰라님네가 너무 번거롭고 힘들어서 어떡해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작년에 우리 둘이서 김장을 할 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하하 호호 웃고 떠들다 보니 언제 김장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기만 했어요."

 

서울에서 온 환상의 김장 팀은 오후 5시경에 금가락지를 떠나갔다. 트렁크를 가득채운 김치상자가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며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괜히 즐겁고 행복해진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서로의 마음과 맛이 버무려진 김장을 함께 담그고 김치 한쪽을 나누어 먹는 바로 이 맛이 아닐까?

 

 

 

▲ 서울에서 온 친구들의 김치상자에도 김장김치가 가득 채워졌다.

 

"여보, 저 김칫독에 김치를 가득 채워넣으니 이제 아무 걱정이 없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눈이 와도 걱정 없어요. 그 힘든 김장을 거든하게 해치웠으니…"

 

아내와 나는 김치를 저장한 천연 저장고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김칫독에 가득 찬 행복! 이제 쌀만 있으면 추운 겨울 동안 먹을 걱정은 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