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11월 11일 11시 11분!

찰라777 2013. 11. 17. 15:57

1박 2일로 떠나는 결혼기념여행①

 

11월 11일, 아침 태양이 신비하게 구름 속에서 빛나고 있다.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5도. 춥다! 처마 밑에 받아 둔 물통에 얼음이 땡땡 얼어 있다. 장독대 위에 빗물도 얼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려나 보다. 

 

 

▲처마 밑에얼어 붙은 물

 

▲11월 11일 아침, 신비한 아침 태양

 

40년 전 그날은 첫눈이 내렸다. 면사포를 입고 첫눈을 맞으며 작은 암자로 걸어 들어오던 아내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다. 그날, 우리는 결혼 예물로 각자 일곱 송이의 국화를 들고 노스님의 주례로 남도의 어느 작은 암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우리 집 가족과 아내의 가족, 그리고 아주 절친한 친구 몇 사람뿐이었다.

 

11시에 올리기로 한 결혼식은 노스님이 좀 늦게 도착하시는 바람에 11시 11분에 시작되었다. 11월 11일 11시 11분! 도대체 작대기가 몇 개나 되지? 그래서인지 그 날 결혼식에 참석 했던 하객들은 우리들의 결혼식 날짜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얼어 붙은 장독대 

 

그렇게 시작은 우리들의 결혼생활이 벌써 40년이 지나다니… 도대체 믿기지가 않는다. 마음은 그 때 그대로인데 모습은 어느 듯 초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흰머리가 귓밥을 덮고, 얼굴엔 잔주름이 늘어만 간다. 아무리 시공을 초월하여 살아가려고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문득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정말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현상이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직포로 덮어 둔 배추

 

▲콩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오직 현재의 순간을 숨 쉬며 살아갈 뿐이다. 현실의 삶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어제까지 월동준비를 끝낸 우리는 여행 가방을 챙겼다. 지난주까지 김장을 해서 당에 묻어 놓았다. 이제 쌀만 있으면 겨울은 날 수 있다. 아직 덜 뽑은 배추와 상추에는 부직포를 덮어 두었다.

 

콩은 꺾어서 테라스에 세워두었다. 거실에 카펫을 깔고 화분도 모두 거실로 옮겨놓았다. 거실에 화분을 옮겨 놓고 보니 갑자기 식구가 엄청 늘어 난 것 같다. 저 식물들도 생명이 있기는 인간과 똑 같다. 얼어 죽지 않게 돌보아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텃밭에 자라준 야채와 곡식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꽃을 피워 우리에게 기쁨을 준 화초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거실로 들어온 화초

 

해마다 11월이 돌아오면 우리는 결혼기념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것이 해외이든 국내이든 상관없다. 결혼기념일 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다시 신혼여행을 떠나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금년에는 1박 2일 간 지리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함께 김장을 했던 <환상의 김장팀>과 떠나게 되어 더욱 의의가 깊다.

 

내일 아침(11월 12일), 일직 서울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중턱에 자리한 미타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연기암으로 오르는 호젓한 화엄골을 걸으며 지리산의 마지막 단풍과 조우를 하고 시간이 나면 순천만 갈대 길도 걷기로 했다.

 

▲바다님이 보내준 가래떡. 바다님은 매년 우리으 결혼기념일인 빼빼로 데이를 기억하고 가래떡을 선물로 보내준다. 바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늦은 오후에 연천을 출발하여 서울 집에 도착하니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택배꾸러미를 뜯어보니 청국장과 가래떡에 들어 있었다. 바다님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보내준 택배다. 바다님은 해마다 <빼빼로 데이>을 기억하며 가래떡을 선물로 보내준다.

 

11월 11일 11시 11분! 빼빼로 데이, 이날은 과연 우리들의 날이다. 가래떡을 보내준 바다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40년을 함께 살아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그리고 오늘까지 우리를 있게 해준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빼빼로 데이... 우리들의 날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

 

(2013.11.11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