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꿩과 고라니가 후다닥~ 뛰어노는 임진강 억새길

찰라777 2013. 11. 18. 06:53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 

 

새삼스럽게 파스칼의 이 유명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늘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갈대 숲을 걷다보면 인간은 한 줄기 갈대보다 더 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생명은 한 호흡과 한 호흡의 사이에 있지 않은가. 내 쉰 숨을 들이쉬지 못하면 숨이 끊어져 죽음에 이르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다. 그러나 인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와 다른 점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존재라는 것이다.

 

 

 

생태계의 보고를 걷는 사색의 길

 

늦가을은 갈대와 억새의 계절이다. 갈대와 억새는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갈대꽃과 억새꽃은 다르다. 갈대는 주로 바닷가에, 억새는 산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둘 다 벼과식물로 모양이 비슷하다. 억새는 영남알프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갈대 또한 순천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 연천 임진강변에도 억새와 갈대 길(이하 억새길)이 열리고 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사색의 창이 열린다.

 

갈대

 

억새

 

요즈음은 이 호젓한 억새 길을 아침저녁으로 걷고 있다. 갈대와 억새가 하늘거리는 초목의 숲을 걷노라면 늘 마음이 유쾌해지고 맑아진다. 다소 머리가 무겁고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에도 이 길을 걷다보면 어질어진 마음이 정리가 된다.

 

인간의 마음은 풍경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과 강과 주상절리 절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억새길을 걷는 순간의 차이는 크다. 집안에 있는 동안에는 답답하고 여러가지 번뇌로 가득차기 마련이지만 강변을 걷다보면 풍경이취해 생각이 유연해지고 번뇌도 사라져간다.

 

 

 

깊어가는 가을, 임진강 억새 길은 나만의 '사색의 길'이자 내 사색의 창고이다. 사색의 길은 사장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동이 1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억새길은 임진강 주상절리를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다. 같은 억새 길이라도 강변을 따라 걷는 기분은 사뭇 다르다. 아름다운 억새길을 따라 걷다보면 저절로 사색의 창이 열린다.

 

 

 

갈대와 억새가 푸른 임진강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억새길은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몽들이 깔려 있는 임진강변에는 하얀 억새꽃이 만발하게 피어나 주상절리 단풍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늦가을의 서정을 만끽하게 하여주고 있다.

 

 

 

 

 

꿩과 고라니가 뛰어 노는 생태계의 보고 

 

갈대숲을 걷다보면 꿩들이 "파드득!"하며 날아가기도 하고, 고라니들이 "후다닥!" 달아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래지만, 한편으로는 천혜의 자연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청둥오리와 갈매기, 왜가리, 학들이 푸른 임진강위를 날거나 헤엄을 치기도 하며, 맑은 가을 하늘 위로 기러기들이 "끼룩끼룩"하며 날아가기도 한다.  나는 천혜의 자연속에서 생태계의 보고를 걷고 있는 샘이다.

 

갈대길을 걷다보면 꿩과 고라니들이 후다닥 달아나며 놀라게 한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

 

 

이맘때쯤 임진강은 가을 하늘처럼 푸르다. 짙푸른 강변을 따라 주상절리 샛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다 보면 진초록의 이끼가 낀 약수터가 나온다. 사계절 흐르는 약수는 유리알처럼 맑다. 약수를 손으로 떠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걷는다.

 

 

 

푸른 이끼 속에서 사계절 덜어져 내리는 약수

 

북한 땅에서 흘러내린 임진강변에는 여름 장마 때 흘러내려온 각종 쓰레기들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아마 북한 주민들이 쓰던 옷가지며, 쓰레기들도 있으리라. 이번 여름장마에는 주상절리가 턱에 차도록 물 폭탄이 흘러내렸다. 주상절리 절벽에는 수십 개의 폭포수가 흘러내리고, 강물은 노도와 같이 흘러내려갔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바람이 불자 절벽에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낙엽들은 푸른 하늘에서 공중재비를 돌며 나뭇가지에 걸리기도 하고 임진강 푸른 물로 하나 둘 떨어져 내리기도 한다. 강물에 떨어진 낙엽은 그대로 일엽편주가 되어 둥둥 떠내려간다. 말 그대로 일엽편주一葉片舟다. 달마대사는 저 일엽편주를 타고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하는데…….

 

   

 

 

 

 

 

강물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에 떠나려가는 낙엽 쪽배, 내 마음도 한 잎 일엽편주 되어 강물을 따라 한없이 흘러내린다. 저 낙엽처럼 집착이 없는 마음이 되어 둥둥 떠내려 갈 때에 마음이 쉬어지고 더 넓은 바다의 세계로 갈 수가 있겠지…….

 

 

 

 

 

 

강 건너편에는 나룻배 세척이 한가롭게 걸려있다. 나는 한 번도 저 나룻배를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나룻배는 거기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며 강물위에 떠있다. 강변에 걸려있는 나룻배, 누구를 기다리는가. 춘하추동 사계절 빈 몸으로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래도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저 나룻배를 바라보면 홀로 걷는 마음이 훈훈해진다.

 

 

 

 

나룻배를 지나면 부여의 낙화암처럼 생긴 절벽이 나온다. 그 절벽 밑으로 푸른 임진강이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다. 그 절벽 앞에는 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저 강톱 벌판에서 2009년 9월 낚시를 하며 야영을 하던 낚시꾼들이 북에서 갑자기 무단 방류한 급류에 휘말려 무고한 생명이 여섯 명이나 희생을 당했다. 하늘에 별이 총총 떠있는 맑은 가을날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강변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늘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아무리 맑은 날이라 할지라도 강심에 떠 있는 모래톱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예고도 없이 댐을 열어 물을 방류한 북한이 원초적으로 잘못을 했지만, 조금만 더 지혜 있게 생각을 하여 강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자제했더라면 그런 참변은 면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실낙원을 쓴 눈 먼 작가 밀턴의 말이 생각난다. "마음은 그 자신의 터전이다. 그 안에서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그의 생각 범주 내에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지혜롭고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갈대 숲에 몸을 던지다

 

드디어... 나는 낙화암 앞에  한없이 펼쳐져 있는 갈대밭 속으로 몸을 던진다. 내가 2년 전에 이곳 연천으로 이사를 왔을 때에 이 강변에 갈대밭이나 억새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이곳 강변에는 잡초와 버드나무, 잡목들로 우거져 있었다.

 

 

 

 

물론 이 잡목들도 물을 정화하는 데는 한몫을 톡톡히 한다. 그런데 당국에서 뽕나무 숲을 조성한다고 잡목을 다 베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뽕나무를 심었는데, 어린 묘목들이 물에 잠기자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이 흘러 생각지도 않게 강변은 갈대와 억새 숲으로 우거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하더라도 그릇된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으로 인간은 그릇된 길을 가게 마련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한 가지 문제는 올바른 생각을 선택하는 일이다. 올바른 생각을 선택하는데 성공한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올바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조용히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번민을 한다는 것은 불쾌하고 이익이 없으며 문제의 둘레를 빙빙 도는 것과 같다.  

 

 

 

 

독일 하이델부르그에 가면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의 길은 하이델부르그 중심가를 흐르는 네카르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테오도르 다리를 건너, 낮은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약 1시간가량의 산책길이다. 이 '철학자의 길'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괴테 등이 즐겨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책길 정상에 올라서면 시내와 아름다운 하이델부르그 성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도인들과 철학자들은 길을 걸으며 사고에 잠겼다. 그들도 길을 걸으며 번민을 털어내고 삶의 진리를 올바르게 정리했으리라. 지나치는 자연의 풍경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걷다보면 사고가 건전해지고 올바른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 회원들이 천천히 길을 걷고 있다.

 

 

땅거미가 질무려 갈대길을 걷고 있는데 한무리의 도보꾼들이 몰려왔다. 그 중에 한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이라는 단체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은 군남홍수조절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임진강변을 따라 15km 정도를 걸어왔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갈 버스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요. 저희들은 걸어서 가는 것은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때문에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참 좋은 생각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않는 나라가 아닌가. 어차피 걷기로 하고 떠나온 여행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지않겠느냐는 것이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을 본다.  젊은 남녀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주상절리에 환상적으로 비추인다. 참으로 건강한 모습이다. 걷는 사회는 갈대처럼 여유롭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풍요롭다.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강변을 따라 억새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꼭 이곳 임진강 억새길이 아니어도 좋다. 사람의 마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집에서 가까운 억새길이나 갈대길을 걸으며 번뇌를 털어버리고 생각을 정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