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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여행⑬]다산과 번영을 기원해주는 치미라캉 사원

찰라777 2014. 1. 19. 06:51

아기가 없는 부부가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면...

 

▲ 룽다 사이로 보이는 치미라캉사원.

 

▲ 치미라캉사원은 다산과 번영을 기원해주는 사원으로 부탄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도 이 사원에서 불공을 드리면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골풍경을 닮은 들판 길

 

 

▲ 들판 가운데 휘날리는 룽다. 멀리 산 밑에 치미라캉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노란 선인장 꽃으로 둘러싸인 치미 라캉 사원

 

계단식 논에는 보리와 밀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밀을 베는 농부들의 바쁜 모습이 보였다. 그 풍경은 우리나라 강원도나 지리산의 어느 계단식 논밭에서 보았던 농촌풍경과 흡사하다. 노란 밀밭 사이로 난 야생화가 만발한 좁은 논두렁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었다.

   

들판에는 크고 작은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며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었다. 룽다 깃발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과히 환상적이었다. 고향 길을 걷는 것 같은 무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진한 노스탤지어에 젖어드는 느낌이랄까? 

 

 

▲ 계단식 밭에서 밀을 베어내고 있는 농부들

 

들판을 가로 질러 건너가니 집이 몇 채 옹기종기 모여 있고, 어떤 집에서는 남근모양을 한 기념품을 팔기도 했다. 치미라캉 사원은 그 마을을 지나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나른한 오후의 서정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길가에는 노란 선인장 꽃이 미소를 지으며 길손을 반기고 있었다. 그냥 가꾸지도 않는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야생으로 자란 선인장이 너무나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바다님이 그 선인장 꽃 가까이 얼굴을 대며 포즈를 취했다.

 

 

▲ 길가에 야생으로 피어 있는 선인장꽃

 

"조심하세요. 선인장 가시가 그 예쁜 얼굴이 찔릴까 겁나네요."

"호호 염려마시고 사진이나 잘 찍어 주세요."

 

꽃을 보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누구나 소녀가 되는 모양이다. 걷기가 불편해서 카페에 홀로 남아 있는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이 선인장 꽃을 보았으면 환성을 지르며 얼마나 좋아 했을 텐데… 사진으로 담아 보여 줄 수밖에 없다.

 

"우와! 저 사원은 온통 선인장 꽃으로 둘러싸여 있네요!"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군요."

 

▲ 선인장 꽃으로 둘러싸인 치미라캉 사원

 

 

 

 

 

▲ 치미라캉 사원으로 가는 들판길. 마치 우리나라 지리산 자락 어느 마을 같은 느낌이 든다.

 

오후의 느긋한 산책 길, 카페를 떠나 30여분 정도 걸어 언덕에 올라서니 노란 선인장 꽃에 들러 싸인 황금빛 사원이 나타났다. 치미라캉 사원이다. 애써 꾸미지는 않았지만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 둘러싸인 황금빛 사원이 수수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괴승 드룩파 쿤리스님은 도출라 고개에 사는 악마가 사람들을 해치자, 금강저로 천둥번개를 쳐서 악마를 제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금강저를 보관하기 위해 그의 사촌 동생 램 나왕 초걀이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일주문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스님

 

보리수 나무

 

▲ 치미라캉사원 앞의 초르덴

 

스님은 때로는 개로 변신을 해서 도망가던 악마를 땅속에 가두고 그 위에 탑을 세워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사원입구에 그 악마를 가둔 탑이 그대로 서 있다. 사 원 으로 들어가는 대문 오른 쪽에는 커다란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떤 스님 한분이 마니차를 돌리며 열심히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마니차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댕댕하고 종이 울렸다.

 

우리도 마니차를 돌리고 나서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보리수나무 한그루가 사원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뜰에는 수많은 하얀색 룽다가 꽂혀 있었다. 청정남님, 바다님과 나는 룽다 사이를 숨바꼭질을 하듯 끼어 다녔다.  

 

▲ 치미라캉사원 뜰에는 거대한 보리수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룽다

 

 

지리산 벽송사의 소나무를 닮은 소나무

 

 

 

▲ 지리산 벽송사의 소나무처럼 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와 룽다

 

마당 한 가운데는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소나무처럼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리산 벽송사에 있는 소나무와 비슷했다. 동자승들이 산책을 하며 오후의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사원 벽에는 작은 마니차들이 빙 둘러쳐져 있었다. 우리는 마니차를 돌리며 사원을 한 바퀴 돈 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부탄을 통일한 샤브드롱과 관음상이 모셔져 있었다.

 

▲ 치미라캉사원을 산책하고 있는 동자승

 

드룩파 쿤리스님과 그의 애견 '사치Sachi'가 괴이한 모습으로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쿤리스님이 들고 다녔다는 남근상도 보관되어 있었다. 쿤리스님은 항상 그의 애견 사치와 함께 다녔다고 한다. 좀 아쉬운 것은 사원 내부 있는 이런 보물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원에서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도리다.

 

이 사원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갖게 된다는데...

 

"미스터 초이, 당신의 미래 운을 한 번 봐 달라고 해볼까요?"

"오케이, 좋아요.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쉐리가 안에 있는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우리들의 운을 보아달라고 부탁을 하자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는 바처럼 생긴 두개의 남근상과 볼펜처럼 좁고 긴 카드가 담긴 작은 상자를 들고 나왔다. 두 개의 남근 상 중 하나는 나무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의 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님 앞에 있는 접시에 얼마간의 돈을 놓고 고개를 수그리며 합장을 하자 스님은 마치 마정수기(摩頂授記:다음 생에 부처가 될 인연을 가진 사람에게 예시를 내리면서 행하였던 수기방법)를 하듯 남근을 내 이마에 대고 뭔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하더니 내게 주사위를 주면서 던지라고 했다.

 

▲치미라캉사원에 기도를 하러 오는 부탄 불자들

 

스님이 건네준 주사위를 던지자 스님은 주사위에 나타난 숫자를 보고 종가어로 뭐라고 했다. 쉐리가 스님의 말씀을 통역해 해주었는데 내가 던진 주사위는 "베리 굿"이라고 했다. 단 한 번에 '베리 굿'의 점괘가 나오다니 내 운수는 앞으로 좋을 모양이다.

 

부탄의 불교사원에서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축복을 내려준다. 그리고 불자들이 원하면 그들의 소망을 염원하게 하고 그 소망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미리 점을 쳐주기도 한다. 불자들은 자신의 분수에 맞게 얼마간의 시주를 하고, 자신의 소원을 빈 후 스님이 건네주는 주사위를 던지게 된다.

 

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주사위 세 개를 던져서 나오는 숫자의 조합을 가지고 스님이 그 사람의 미래를 점치게 된다. 한 번 던져서 수의 조합이 좋지 않으면 보통 두 번, 세 번까지 던져서 좋은 운이 나올 때까지 운을 점치기도 한다. 이때 주사위에 나타난 의미는 스님만이 안다고 했다.

 

점괘는 <아주 좋음 Very Good>, <보통Good>, <나쁨Bad> 등 보통 세 가지로 결론이 나는데, 스님은 주저하지 않고 즉석에서 숨기지 않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운을 솔직히 밝혀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님이 불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절대로 꾸며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님은 주사위의 점괘에 나온 그대로 솔직하게 전해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다섯 번을 던졌는데도 점괘가 나쁘게 나오자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

 

▲ 치미라캉사원에 핀 선인장 사이로 바라본 들판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불자들에게는 스님은 그 주사위에 나타난 숫자를 보고 상자에 든 긴 카드를 무작위로 하나 뽑아 준다. 그 카드에는 어떤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이름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성과 이름이라고 했다. 스님은 태어날 아기의 운명을 미리 알아보고 거기에 적합한 이름을 지어준다고 한다.

 

부탄사람들은 특별히 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스님이 그때그때 지어준 것으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과 성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래서 부탄사람들은 주로 도르지, 카르마, 페마 등 50여개의 범위내애서 비슷한 이름이 정해진다고 한다. 성이 없다보니 씨족끼리 다투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 어떻게 보면 그 풍습이 편리한 것 같기도 한다. 족벌을 따지는 일이 없으니 오히려 수평적으로 화합이 잘 된다는 것이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 사십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있었는데, 스님의 축복을 받은 후 아이의 이름을 받은 두 부부는 얼굴이 상기되며 아주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두 부부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나도 정말 그 부부에게 아기가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 난

 

치미 라캉 사원은 지금도 아이가 없는 부탄의 많은 커플들이 이 사원을 꼭 한 번은 들러 기도를 할 정도로 부탄에서는 다산과 번영의 사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소문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여 외국에서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커플들이 해마다 찾아오는 숫자가 점점 늘어날 정도라고 한다.

 

쉐리의 말에 의하면 아이를 갖지 못한 어떤 일본의 50대 부부가 이곳을 방문하여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 돌아갔는데, 그 후 귀국을 한 그 부부가 놀랍게도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기를 갖게 되어 너무나 감동을 받은 이 부부는 매년 이곳 치미라캉 사원을 들려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아들보다는 딸을 낳아달라고 불공을?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부탄 사람들은 남근 상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지만, 불공을 드릴 때에는 아들보다는 딸을 낳아 달라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아들만 낳아달라고 불공을 드리는 한국과는 아주 대조적인 현상이다.

 

부지런한 부탄 여성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남자들보다 상당히 우월하며 독립적이다. 따라서 결혼을 한 딸이 친정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 부탄의 동부 지방에서는 가족의 재산이 주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해지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부탄에서는 상점 이름도 <일곱 자매>라든지 <여덟 자매>란 상호는 있지만, <일곱 형제>나 <여덟 형제>란 이름은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이는 부탄인들이 그만큼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이다. 아들들은 결혼을 하면 쉽게 부모들을 잊어버리지만 딸은 끝까지 부모들을 잘 보살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연못

   

기자의 여행을 주선해준 여행사의 여자 사장 '치미Chimi'도 그녀의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그녀는 어머니의 관절염 치료를 위해 태국 방콕에 있는 병원까지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우연히 이 치미라캉사원의 '치미Chimi'라는 이름과 똑 같아 혹시 그녀의 부모가 이 사원에서 기도를 한 후 얻은 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쉐리에게 물었더니 그럴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 치미라캉사원에서 카페로 돌아가는 길

 

아무튼 부탄에서 남자들은 다분히 종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경제적인 활동을 더 악착같이 하고 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보다는 경제적으로 우월하고 자신의 노후를 끝까지 보살펴주는 딸을 갖는 것이 훨씬 실속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탄사람들이 절에 가서 아들보다는 딸을 낳아달라고 불공을 드리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우리나라도 '딸을 잘 두면 비행기를 탄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딸들이 부모를 더 생각하는 풍습도 부탄과 우리나라가 서로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사원에서 점괘를 본 우리는 각자 소망을 염원하며 밖으로 나왔다. 수많은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고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사원의 뜰은 어쩐지 꿈에 그리던 고향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포근했다.

 

▲ 계곡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강물

 

치미라캉사원 뜰에 길게 누운 청정남님

 

"아, 낮잠이나 한숨 늘어지게 잤으면 딱 좋겠네요!" 청정남이 돌연 보리수 그늘 아래 길게 누우며 말했다. 하늘엔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계곡사이로는 푸른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다산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남근상

 

우리는 선인장 꽃이 만발한 사원을 떠나 황금 밀밭이 펼쳐진 아련한 들판 길을 다시 건너왔다. 카페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예의 남근상이 그려진 벽들이 눈에 띠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 놓아서 처음에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 였는데, 그러나 이제 남근상은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쩐지 예술적이고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글을 읽는 독자님들도 이해를 하리라 생각되어 여과 없이 자신을 올린다.

 

▲ 치미라캉 인근 마을 레스토랑 벽에 그려진 다산과 번영을 상징하는 남근상.

남근의 귀두에 두개의 눈이 그려져 있는 벽화. 저 눈이 나쁜 기운과 악마를 쫓아낸다고...

 

 

여행자들은 치미라캉 사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벽에 그려진 남근벽화를 보고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떤 남근상은 귀두에 눈이 두 개나 그려져 있어 폭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근 상에 그려진 저 눈이 나쁜 기운과 악마를 쫓아낸다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부탄사람들은 직립으로 발기된 남근상이 나쁜 기운과 악마를 쫓아내고 다산과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며 남근 상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은 다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남근상은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생명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부탄에 여행을 가면 치미 라캉 사원은 꼭 한번 방문해 볼만한 재미있는 사원이다. 나는 카페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으로 구경을 잘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 사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스님이 쳐준 점괘가 아주 좋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스는 천천히 강을 따라 푸나카로 달려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