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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여행⑭] 세상에서 가장 행복이 가득한 푸나카 성

찰라777 2014. 1. 20. 08:19

자카란다 향기 가득한 푸나카 종 

 

 

 

 

모츄(어머니의 강)와 포츄(아버지의 강)가 만나는 곳에 동화나라 같은 성이 보랏빛 꽃에 둘러싸여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푸나카 성이다! 강이름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어머니의 강과 아버지의 강~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이 흘려내려서인 물빛이 서로 다르다. 우리나라 한강의 두물머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강이다. 어머니의 강은 깊고 푸르게 보인다. 반면에 아버지의 강은 물살이 세고 거칠게 보인다. 보트를 탄 사람들이 어머니의 강을 타고 내려오다가 아버지의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물의 소용돌이를 타며 노를 젓는다.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머니의 강 모츄                                                         ▲아버지의 강 포츄

 

▲강에서 보트를 타고 리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

 

두 강의 합류지멈에 푸나카 성이 동화속에 나오는 캐슬처럼 서 있다. 성의 둘레는 강물이 자연적으로 해자를 이루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오색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며 성을 호위하고 있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은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런 천혜의 요개에 성을 지을 생각을 한 샤브드룽은 역시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와~ 무슨 꽃이 저렇게 예쁘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네!”

 

 

 

하늘도 푸르고, 강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꽃도 푸르고… 그 푸름 속에 푸나카 성이 마법의 캐슬처럼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들어 서 있었다. 하얀 벽에 부탄 전통문양이 새겨진 갈색 창살무늬, 거기에 마치 갓을 멋들어지게 쓴 것처럼 황금빛 찬란한 지붕이 층층이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보랏빛 꽃이 오후의 햇볕을 받아 싱그럽게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 지어진 푸나카 종은 언덕 높은 곳에 있는 다른 종과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두 개의 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들어선 성은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 푸나카 종으로 건너가는 목조다리

 

성은 어머니의 강을 가로지르는 목조다리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다리 앞에는 <2011년 10월 국왕의 결혼식에 바쳐진 모츄 공원>이라는 빨간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 현 5대 국왕이 이 성에서 세기의 주목을 받으며 평민과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으로 지정한 모양이다.

 

히말라야의 산간지방에서 난 우람한 나무로 만든 목조다리는 높고 견고했다. 우리는 마치 무지개다리를 건너듯 강위의 목조다리를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가니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성보다 역시 보라색 꽃이었다.

 

 

 

'화사한 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자카란다

 

무슨 꽃일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자카란다Jacaranda란 꽃이었다. 언젠가 이 꽃을 본 기억이 있어 더듬어 보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 보았던 꽃이었다. 10여 년 전 남미를 여행할 때 아내와 나는 산마르틴 공원에서 자카란다의 보랏빛 꽃에 매료되어 한동안 그 꽃그늘 밑 잔디밭에 누워 있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여보, 우리가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았던 그 꽃이네! 자카란다 꽃!"

"와아~ 정말이네요. 참 오랜만에 자카란다를 보게 되는군요."

"당신이 좋아하는 보라색 꽃 아니요."

 

 ▲ '화사한 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자카란다 꽃이 만개하며 푸나카 성을 에워싸고 있다. 보랏빛 자카란다 꽃은 능소화과의 초롱꽃이다.

 

자카란다는 능소화과에 속하는 꽃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원산지다. 남아프리카나 남미, 미국의 남가주에 주로 피어나는 자카란다는 케냐의 국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 히말라야의 산들에 둘러싸인 은둔왕국 부탄의 푸나카에 피어있는 자카란다는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자카란다의 꽃말이 '화사한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이 가득한 성'이라는 이름과 아주 어울리는 꽃이다. 성의 이름에 걸맞게 자카란다 나무를 심었을까? 마치 해자처럼 강물이 성을 빙 돌아 흘러가는 천혜의 요새에 만발한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하얀 성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었다.  

 

 

자카란다 향기속을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인다. 붉은 가사장삼과 보랏빛 꽃이 어쩌면 이렇게 어울릴까?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풍경이다.

 

지금은 이 성의 이름을 '푸나카 종'이라고 부르지만, 이 성을 세운 부탄의 영웅 샤브드롱은 원래 성의 이름을 '풍탕 데첸 포드랑Pungthang Dechen Phodrang'이라고 지었다. 그 의미는 '행복이 가득한 성'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이름에 걸 맞는 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천상의 세계를 옮겨 놓은 '행복이 가득한 성'

 

이 성의 건축과 관련하여 오래된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다. 8세기 경 연화생 보살인 파드마삼바바는 이곳을 방문하여 한 가지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푸나카 성. 뒤에 있는 산은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다.

 

"먼 훗날 코끼리 모양의 남걀이라는 사람이 반드시 이곳에 나타날 것이다. 그는 이 나라를 하나로 통일할 것이고, 코끼리를 닮은 언덕에 큰 성을 지을 것이니라."

 

구루 린포체의 예언대로 900년이 지난 후 정말로 '남걀'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이곳에 왔다. 그가 바로 부탄을 통일한 부탄 불세출의 인물 '샤브드롱 나왕 남걀'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푸나카 성 앞쪽과 뒤쪽에 있는 산은 마치 커다란 코끼리가 누워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걸출한 인물 샤브드롱이 이곳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드죵축'이라는 작은 성이 있었고, 그 성안에 한 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했다.

 

 

 

 

샤브드롱은 당대의 건축가 '조 팔렙'을 불러 그에게 불상 앞에서 잠을 자라고 했다. 그가 잠을 자는 동안 샤브드롱은 그의 영혼을 연화생 보살이 살고 있는 천상계 즉 '장토펠리Zangto Peli'로 데리고 갔다. 천상의 세계를 보고 잠에서 깨어난 조 팔렙은 샤브드롱의 명에 따라 꿈에서 본 천상계의 모습대로 성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 천상계의 성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푸나카 성

 

그는 샤브드롱의 의지대로 천상의 세계를 옮겨다 놓은 구조로 성을 건축했다. 어머니의 강과 아버지의 강이 만나는 곳에 '행복이 가득한 성'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 후 이성은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신기원을 이루며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300년간 부탄의 겨울수도로 영광을 누렸던 푸나카 종은 샤브드롱이 왕위에서 물러나 은거를 하며 일생을 마친 성이기도 한다. 샤브드롱 당대에 이 성은 부탄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최고 행정관과 대수도원장이 머물렀던 곳이며, 부탄 초대 국왕 우겐 왕축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 푸나카 성 입구

 

나는 자카란다의 향기를 맡으며 성의 입구로 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12간지가 그려진 원 안에 건(乾)·곤(坤)·이(離)·감(坎)의 괘가 차례로 새겨져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태극무늬를 연상케 하는 문양이다.

 

 ▲ 12간지를 그려놓은 벽화

 

육중한 대문을 통과하니 하얀 초르텐이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우뚝 서 있고, 깨달음의 나무인 거대한 보리수나무 한그루가 넓은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첫 번째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행정을 관장하는 건물이다. 가로 180m, 세로 72m에 달하는 푸나카 종은 3개의 광장이 있다.

▲ 첫 번째 광장에 서 있는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

 

▲ 센타에 자리 잡은 행정을 관장하는 건물

 

보리수나무에 합장을 하고 다시 좁은 통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곳은 종교적인 영역으로 주로 스님이 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황금지붕으로 된 6층 전각에는 '링중 카르사파니Rangjung kharsapani'라 불리는 보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보물은 샤브드룽이 티베트로부터 가져온 첸라식 관음보살상으로 드룩파와 카규파의 시조와 관계되는 성스러운 유물로서 부탄 사람은 물론 티베트 전체에서 중요한 유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에는 이 관음보살상을 빼앗아가기 위해 티베트 군이 침공을 해와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 종교적인 사원영역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종교적인 영역에는 연화생 보살인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보물 '페마 링파의 테르톤'과 이 성을 만든 샤브드롱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마치 라캉Machey Lhkang'이라고 부르는 이 시원은 '성스러운 등신불 사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는 이곳을 지키는 두 스님과 대수도원장 제켐포, 그리고 왕만이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왕과 평민이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졌던 곳

 

푸나카의 중앙법당은 2011년 10월 13일 현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과 10세 연하의 평민 제선 페마와 아시아판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이다. 케사르 왕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필립스 아카데미, 위톤 대학 등에서 유학하였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지성인이다.

 

 

 

▲ 5대국왕의 결혼식이 열렸던 중앙 법당(사진AFP)

 

이 매력적인 히말라야 왕의 결혼식은 당초 예상을 깨고 매우 검소하게 치러졌다. 왕의 결혼식에는 외국 국빈이나 왕실 사람들은 물론 장관들의 부인조차 초대하지 않았다. 왕은 넉넉하지 않는 나라 살림을 고려하여 부탄 불교예법에 따라 1시간 동안 간소하게 결혼식이 치렀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푸나카 성에서 올린 동화 같은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국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70만 국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국민들은 국왕의 포스터를 만들고 국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시나 글을 문집으로 만드는 학교도 있었으며, 결혼식이 치러지는 3일 내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축제가 열렸다.

 

 

 

부탄에서는 국민의 90퍼센트가 결혼 피로연을 따로 열지 않는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피로연처럼 사회적으로 어떤 사실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의식에 대한 풍습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같이 살면 결혼을 한 것으로 인정한다.

 

법률적으로는 관공서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종교적인 의식 대신 친척이나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부탄에서는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없다.

 

어머니의 강과 아버지의 강이 만나는 이 동화 같은 푸나카 성에서 치러진 국왕의 간소한 결혼식도 화려한 피로연이 없는 검소한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전통혼례에 따라 치러진 국왕의 결혼식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며 화제에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화 나라 같은 아름다운 풍경

 

푸나카 성은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며,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종이다. 벽에는 코끼리와 원숭이, 토끼, 공작새가 우정과 행운을 상징하는 부탄의 전례동화가 그려져 있다.

 

나는 미로처럼 생긴 푸나카 성을 돌아 나와 건너편에 있는 작은 사원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바라본 푸나카 성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성의 해자를 따라 부탄사람들과 스님들이 기도를 하며 코라를 돌고 있었다.

 

 

 

 ▲ 강물을 따라 성의 둘레를 기도를 하며 돌고 있는 불자들

 

▲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책을 하고 있는 동자승들

 

보라색 자카란다 꽃향기 속에 동자승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평화롭게 거닐고 있는 풍경은 동화나라 그 자체이다. 부탄 사람들은 모두 외모도 준수하게 잘 생겼다. 1774년 조지 보글이라는 외교사절은 티베트로 가면서 부탄 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외모를 지닌 인종이다."

   

케사르 국왕과 왕비 제선 페마의 외모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건장한 체격에 아름답고 귀족적인 얼굴, 타원형의 검은 눈, 고와 키라를 단정하게 입은 모습,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부탄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매혹적이다.

 

▲ 자카란다 향기 속에 펄럭이는 부탄의 국기

 

노란색과 주황색 바탕에 용을 그린 부탄의 국기가 자카란다 꽃 위에서 펄럭거렸다. 바람이 불자 자카란다 초롱꽃이 하나 둘 떨어져 내렸다. 그 꽃잎을 밟으며 부탄의 남녀들이 기도주문을 외우면서 성을 돌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 어머니의 강과 아버지의 강이 만나는 곳, 보라색 자카란다 향기, 그 위에 천상의 셰계를 옮겨 놓았다는 아름다운 푸나카 성은 아무리 보아도 동화나라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푸나카 종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