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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미낙시 사원의 쌍어문양이 가야국으로 왔을까?

찰라777 2014. 4. 21. 05:20

스리미낙시 사원을 나와 오늘 저녁 묵을 호텔로 향했습니다. 저마누스Germanus란 호텔에 도착하여 룸으로 들어가니 침대위에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형이 눈에 띱니다. 자세히 보니 타올로 만든 인형입니다.

 

호호, 참 재미있는 모습이내요. 타올로 인형을 만들다니.”

눈과 귀에도 꽃을 꽂고, 손에 꽃을 들고 환영을 하고 있군요.”

 

  ▲호텔 침대에 수건으로 만들어 놓은 인형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며 꽃을 들고 있는 수건 인형을 보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고객을 맞이하는 재치인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니 남인도의 향이 가득 스며있는 커리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종업원들은 매우 친절합니다.

 

그 중에 나이가 지긋한 웨이터가 웃으며 한국말로 -----?”하고 인사를 합니다. 아마 한국인들이 자주 들리는 호텔인 모양입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려고 매우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어쩐지 이웃사람처럼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뷔페식 탈리 음식에는 쌀밥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살라가 들어있습니다.

 

▲저녁식탁에 오른 탈리

 

아내는 마살라가 든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는군요. 커피에 빵을 한 조각 먹고 숟가락을 놓고 말군요. 전에는 아무 음식이나 그렇게 잘 먹던 아내가 이번 여행에서는 마살라가 든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니 걱정입니다. 그런데 접시라든지 그릇이 어쩐지 한국의 밥상에 오른 그릇처럼 눈에 익어 보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직 일어나 잠시 거리를 산책했습니다. 인도에서 아침 산책을 하는 것은 참으로 신선합니다. 호텔 앞으로 걸어 나오니 중년 남자 한 사람이 맨발로 서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한 동안 꿈쩍도 아니하고 신문을 진지하게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사뭇 엄숙합니다.

 

▲맨발로 신문을 읽고 있는 인도인

 

인도인들은 아침이면 거리에 나와 짜이를 한잔씩 마시며 하루일과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짜이를 파는 가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리지요. 그들과 어울려 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매우 친절한 그들 속에 끼어 있으면 언젠가 내가 인도에서 살았던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토릭샤와 짜이, 야자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인도인들은 언제보아도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마두라이의 아침 풍경

 

이곳 마두라이는 드라비다 문화의 중심지로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드는 도시입니다. 스리미낙시 사원의 기단에 그려진 쌍어문양이 어쩐지 가야국의 시조였던 김수로왕의 왕릉에 새겨진 쌍어문양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인도역사에도 나오는데요, 인도와 한국은 2000년 전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해요. 신라시대 김수로왕이 인도의 왕녀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여 그의 7공자를 인도에 보내 불교를 공부 시켰다고 합니다. 이거, 우리 인도역사에도 나와 있어요.”

 

 

▲김수로왕릉 정문에 새겨진 쌍어문양

 

인도 현지 가이드 샌딥의 설명입니다. 그는 인도 역사를 전공한 가이드인데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왕후,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7공자가 지리산 칠불사에 들어가 모두 성불을 했다는 내용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고대사를 꿰고 있는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왠지 부끄러워집니다. 한국인보다 훨씬 한국의 역사를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야국으로 갔다고 설명하는 현지가이드 샌딥.

인도역사를 전공한 그는 인도와 한국이 2000년 전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말한다.

 

김수로왕의 허왕후는 과연 인도에서 온 사람일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허황옥 공주는 아유타국으로 추정되는 인도 아요디아(Ayodhia)라는 설이 있습니다. 아요디아는 갠지스 강 중류에 걸쳐 있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데, 2001년에는 가락중앙종친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만들어 간 허황옥 공주 유허비(遺墟碑)’를 현지에 세웠다고 합니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인도에서 왔다는 증거는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릉 정문에 새겨진 쌍어문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초기 불탑을 연상시키는 이 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진 쌍어문양은 인도의 아요디아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두라이의 일출

 

김수로왕릉에 새겨진 쌍어문양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는 40년에 걸쳐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가야국으로 온 루트를 추적하여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역사의 아침 펴냄)랑 책을 발간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쌍어문양은 인도 아요디아(코살라국)-미얀마-윈난-쓰촨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마두라이에 있는 스리미낙시 사원 고푸람의 기단에도 쌍어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허왕후는 이곳 남인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그녀는 혹시 물고기의 눈을 가진 미낙시의 후손은 아닐까? 여행자의 머리 속에는 여러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는 인도인들의 미소

 

가야라는 말은 인도의 고대어에서 물고기를 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쌍어문양에 새겨진 물고기란 신어(神魚) 사상이 허왕후에 의해 전해지면서 가야라는 국가이름이 탄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그리핀저에 의하면 한국어에는 400여개의 고대 인도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의 몇 가지를 살펴보면, , , , , , 가래, 메뚜기 등이 모두 드라비다어 계통의 어휘라고 합니다.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 버스 차장 

 

그래서일까요? 이곳 마두라이 시내를 돌아보며 만난 인도인들이 어쩐지 친근하게만 느껴집니다. 거리에 서서 신문을 읽고 있는 맨발의 남자, 오토바이를 타고 미소를 짓는 두 사내, 버스의 창밖으로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차장, 시장 풍경이 모든 것들이 매우 이국적이면서도 어쩐지 낯설어 보이지를 않습니다.

 

▲마두라이 거리 풍경

 

 

그렇다면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나 역시 이들의 피가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요?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는 모두 10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 아들 중 7명의 아들이 인도로 와서 불법을 공부한 후 지리산 칠불사에 들어가 성불을 했다는 인도인 현지 가이드 샌딥의 설명이 시실처럼 들리기만 합니다. 우리는 버스에서 샌딥으로부터 생생하게 살아나오는 듯한 고대 한국사를 들으며 티루말라이 나약 궁전에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