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모레 땅에 고구마를 심다

찰라777 2014. 5. 3. 05:15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구마 순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설)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유지했다.

 

 

▲토마토 모종

 

 

영국시인 엘리엇이 부르짖었듯 금년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 참사는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어린 생명들은 눈을 감지 못하고 구천에서 헤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때같은 자식들을 차디찬 바다에 수장시킨 부모님들은 슬픔과 분노 속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남양주시 도농동 역 앞에 차려진 분향소

 

 

지난 4월 27일 봄비가 눈물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날, 도농동 역 앞에 있는 분향소에서 온 가족이 분향을 했습니다. 국화꽃 한송이를 들고 아이들의 영혼 앞에서 묵념을 했습니다. 

 

노란 리본에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그 무슨 말로도 이 구만리 같은 어린 청춘들의 넋과 이들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위로할 길이 없습니다. 

 

 

▲노란 리본에 매단 구구절절한 사연들 

 

 

신록이 우거진 희망의 5월이 왔지만 온 국민들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슬픔 속에서도 붉은 영산홍과 철쭉은 죽은 아이들의 영혼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검은나비 한 마리가 문상을 온 듯 붉은 영혼의 꽃 위에서 날개를 퍼득이고 있습니다.

 

 

▲붉은 영혼을 찾은 검은나비 한마리

 

 

그렇다고 마냥 일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슬픔의 강 속에서도 지구는 여전히 돌고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슬픔과 분노 속에서 농민들은 볍씨를 뿌려 키우고, 밭을 일구어 내고 있습니다.

 

 

▲슬픔의 강에 떠오르는 태양

 

▲분노를 삭히며 밭에 씨를 뿌리고 있는 농부들 

 

 

슬픔으로 뒤덮은 시간 속에서도 감자는 싹을 트여 잎사귀들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치유의 식물인 쑥이 대지를 덮고 있습니다. 당근씨도 오랜 침묵 끝에 싹을 느리게 트이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감자 잎

 

▲오랜 침묵 끝에 느리게 싹을 트이는 당근

 

 

절망 속에서 삽과 괭이를 들고 모레 땅을 일구고, 자갈밭을 갈아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봄비가 일깨운 모레 땅과 자갈밭에 생명의 퇴비를 넣었습니다. 재작년에 만든 퇴비는 완전히 삭혀 가스의 독이 없습니다.  

 

 

▲재작년에 만든 퇴비(우측), 작년에 만든 퇴비

 

▲재작년에 만든 퇴비를 자갈밭에 넣었다.

 

 

모레 땅에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구마가 어쩐지 슬퍼만 보입니다. 그러나 슬픔 속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슬픔의 강의 건너 각가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해 내야 합니다. 과연 슬픔 속에서 저 고개숙인 고구마가 일어날지 걱정이 됩니다.

 

 

 

▲5월 1일 고구마를 심었다.

 

 

자갈밭에는 고추, 상치,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참외, 수박, 곰취를 심었습니다. 아무리 추려내도 파면 돌들이 다시 튀여 나오지만 매년 그 돌들을 주어내며 밭을 일구어 봅니다.저 연약한 떡잎들이 자갈밭에서 잘 자라날지 걱정이 됩니다.

 

 

▲참외

 

 

▲수박

 

▲오이

 

▲아삭이 고추

 

▲피망

 

▲파프리카

 

▲청양고추 두 그루

 

▲상추

 

▲곰취

 

 

새파랗게 눈 뜬 죽은 자를 그 어디에다 매장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삭히며 죽은 땅 속에 생명의 퇴비를 넣고 5월의 희망을 심어봅니다. 마른 구근으로 겨우 유지해 온 대지의 생명을 일깨워 내야 합니다. 아아, 잔인한 4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