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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기행⑧]신선이 노닐던 와선대와 비선대

찰라777 2014. 6. 21. 06:19

신선이 노닐던 와선대와 비선대

조선시대 저항시인 매월당 김시습을 그리며...

 

이제 본격적으로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에 들어섰다. 천불동계곡은 일반적으로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장장 12km의 계곡을 일컫는다. 천불동이란 명칭은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千佛)'의 기괴한 경관을 구현한 것 같다고 해서 일컬어지는 말이다.

 

 

▲마치 천개의 불상처럼 펼쳐지는 천불동계곡의 암봉들

 

특히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7km에 계곡에는 설악산을 대표하는 와선대, 문주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포 등 유수한 절경이 모두 천불동에 모여 있다. 외설악의 들머리인 비선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천불동계곡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드디어...미륵봉(장군봉)이 김암괴봉을 거느리면서 천개의 부처님 상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비선대휴게소를 막 돌아서니 바위가 마치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너럭바위 와선대(臥仙臺)가 나왔다. 옛날 마고선(麻故仙)이라는 선인이 여러 신선들과 이곳 너럭바위에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선인들은 놀기에 지치면 너럭바위에 누워 설악산의 절경을 즐겼다고 해서 와선대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 마고선녀가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며 노닐었다는 와선대

 

 

와선대에서 약 300m를 지나니 곧바로 비선대(飛仙臺)와 만난다. 비선대는 와선대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불동을 타고 내려오는 맑은 물줄기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 비선대는 금강산 만폭동(萬瀑洞)에 비유할 만큼 멋진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비선대는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며 설악의 오묘한 경치를 감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증거가 비선대 암반에 새겨져 있는 이름 들이다.

 

▲마고선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비선대

 

 

 

 

▲ 비선대에 새겨진 각자(刻字).비선대 바위에는 예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이 찾아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다.

 

주로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새긴 글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영조 때 서예가인 윤순(尹淳)이 썼다는 '飛仙臺(비선대)'는 글자 하나의 지름이 자그마치 약 1m 정도나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자네도 한시와 서예에 조예가 깊으니 옛날 같으면 한번 도전해 보지 않았을까?"

"흐음,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그랬을 지도 모르지."

우리는 구름다리에서 비선대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기암절벽 사이에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계곡 건너편에는 미륵봉(일명 장군봉), 형제봉, 적벽의 세 봉우리가 우람하게 하늘로 분기탱천하고 있다.

 

 

 

 

▲ 비선대 위에 있는 장군봉(미륵봉), 형제봉, 적벽

 

"이 암각 글씨들을 보니 매월당의 사청사우란 시가 떠오르는군."

"오, 어떤 내용의 시인데?"

 

P는 구름다리 위에 서서 매월당 김시습의 사청사우(乍晴乍雨-갰다 비오다 하다)란 시를 목청 것 낭송하면서 해설까지 곁들여 주었다. 미륵봉과 계곡에 철철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기암괴봉이 시를 낭송하는 멋진 배경을 이루어주고 있다. 그 풍경들이 매월당의 시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 비선대 구름다리

 

乍晴還雨雨還晴(사청환우우환청) 갰다가는 비 오고 비 오다가는 또 개네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리도 그렇거늘 하물며 세상인심이랴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 하는가 했더니 곧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명예를 마다더니 곧 도리어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진들 봄이 어이 상관하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이 가고 옴을 산은 다투지 않네

寄語世人誰記認(어세인수기인기) 세상 사람들이여 모름지기 기억하시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취한들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시를 읊는 그의 모습이 문득 선인처럼 보였다. 오래 전부터 한시와 서예를 해온 P는 한시를 약 100개 정도 외우고 있다. 그는 어디를 가나 멋진 풍경이 나오면 그 풍경에 적합한 한시를 줄줄 낭송하며 풀이를 해주곤 한다.

 

"자네야 말로 설악산 선인 일세!"

"아이고, 무슨 그런 부끄러운 말씀을… 매월당은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세상인심을 한탄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더군."

"예나 지금이나 세상인심은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 우뚝 솟아있는 미륵봉(장군봉) 중간에는 원효대사가 수행을 했다는 금강굴이 있다.

 

 

설악산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가난한 문인의 아들로 태어난 김시습은 세 살 때부터 천자문을 외우고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다섯 살에 <중용>과 <대학>을 떼어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종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나아가 시를 지어 <오세 신동>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21세 때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큰 충격을 받고 사흘 밤낮을 통곡을 하다가 손수 머리를 자르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는 금강산을 비롯해서 백두산, 묘향산, 오대산, 지리산 등 시인 묵객으로 주유를 한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지면 그는 조선시대의 저항시인이다. 그런 그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설악산이다. 그는 설악산 오세암에 오랫동안 머물며 도를 닦으며 시를 지었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오세암은 원래 <관음암>이라 불렀다.

 

 

▲오세암의 오세동자 상

 

▲겨울 한철 오세동자를 보살폈다는 백의관음보살

 

 

<오세암>이란 이름은 설정선사가 다섯 살짜리 동자를 두고 곡식을 구하러 외출을 했다가 폭설에 막혀 겨울 한철을 돌아가지 못했는데, 그 사이 관음보살이 동자를 보살펴 주었다는데서 유래되고 있다. 그러나 오세신동이란 별명을 가진 매월당이 오랫동안 이 암자에 머물렀기 때문에 암자명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는 주장도 있다.

 

'오늘도 걸었다/오늘도 어지간히 걸었다/오늘도 걷는 것이 일이었다/길은 늘 험하였다/공로(公路)가 아닌 탓이었다. 지름길을 찾은 일도 없었다/하나도 바쁠 것이 없는 길이었으니까/길은 매양 호젓하였다(이문구 장편소설, 매월당 김시습에서).

 

이문구의 소설은 매월당이 벼슬길을 버리고 팔도를 떠돌던 중 설악산에 오르는데서 시작된다. 매월당은 말 뒤에 가마가 따르고 가마 뒤에 나귀가 따르는 길은 한사코 꺼렸다고 한다.

 

▲ 비선대 삼거리 갈림길

 

"매월당이 살아 있다면 그는 오늘의 한국현실을 뭐라고 꾸짖을까?"

"하도 억장이 무너져서 글쎄, 말문을 닫을지도 모리겠지."

 

매월당은  '산을 보면 높음을 알고/물을 만나면 맑음을/돌에 앉으면 굳셈을/달을 보면 밝음을 배울 일'이라고 하며 시대에 편승해서 일신의 안녕을 도모하는 사람을 꾸짖었다. 우리는 매월당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길을 건너가자 삼거리가 나왔다. 삼거리 이정표에는 마등령으로 가는 길과 대청봉으로 가는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금강굴을 다녀올까?"

"너무 지치지 않을까? 가파른 언덕을 600m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맞는 말일세. 다음에 마등령을 한 번 더 오르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가지."

"매월당의 말처럼 산을 보면 높음을 알아야지. 허허. 천천히 올라가세나."

 

▲ 미륵봉 중간에 있는 금강굴에는 작은 암자가 있다.

 

등산을 할 때에 기억해야 할 것은 과욕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번 등산의 목적은 천불동계곡을 통해서 대청봉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멀리서 바라보니 미륵봉(장군봉) 중간에 원효대사가 도를 닦았다는 금강굴이 아스라이 보였다. 길이 18m, 약 7평에 이르는 굴에는 신흥사의 부속 암자가 설치되어 있다. 과욕을 부리지 말자. 우리는 곧 함박꽃이 곱게 피어있는 천불동계곡으로 빠져 들어 갔다.

 

 

 

▲산을 보면 높음을 알아야 한다.

 

설악 신선이 따로없네

와선대에 누우면 신선

비선대에 오르면 신선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설악산을 여행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