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그 심장 아직은 쓸만합니다

찰라777 2005. 7. 9. 23:45

아직 그 심장 아직은 쓸만합니다.
 

 

- 인도 나닥에서 마날리로 넘어오는 고도 4000미터의 로탕 패스 정상에서

인도의 사두 지망생과 라루라와 함께.  

 

“여보, 우리 티베트가요.”
“뭐? 티베트를 가자고?”
“네, 티베트요. 한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티베트를 가고 싶어요.”
“아니… 당신 심장을 두개나 달고 있나?”
“어차피 이판사판 아닌가요. 하여간 죽기 전에 꼭 티베트를 한번 가고 싶어요.”

그래서 우린 부랴부랴 티베트를 가기 위한 짐을 꾸렸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우리 부부의 여행도벽이다. 작년 11월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오지를 다녀 온 뒤 3개월도 채 아니 되었는데 아내의 여행중독증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7년 전 아내에게 갑작스런 병마가 덮쳐 이승과 저승을 해매일 때 나는 내 마음속으로 아내의 병상에서 매일 기도를 하며 한 가지 약속을 한 게 있었다. “당신이 다시 일어나기만 한다면, 내 그대가 원하는 소원을 모두 들어 주리라.” 내 기도가 통했는지 아니면 아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는지 결국 아내는 일어났고, 병상에서 일어난 아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로 세계로의 여행을 떠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다시 티베트로 떠난다. 그러나 이번여행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여행이나 다름없다.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 우린 아내의 주치의이인 정성수 박사님을 찾아갔다.

“아직 그 심장 쓸만합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고 살살 잘 달래서 쓰셔야 합니다.”

정 박사님은 매사에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이라 아내의 티베트행도 쉽게 결정을 내려주신다. 물론 의사가 말려도 아니 갈 여인이 아니지만.

이미 우리는 네팔과 로키마운틴을 비롯하여 남미의 안데스 산맥을 4번이나 넘나드는 고지 여행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티베트는 남극과 북극에 이어 지구상의 ‘제3극’이라 불릴 정도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오지중의 오지다.

그래서 티베트 고원은 아직도 인간의 접근이 가장 어려운 별천지다. 히말라야 산맥이 죽의 장막처럼 배수진을 치고 있어 하늘로 치솟아 있는 ‘세계의 지붕’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선택을 받은 자만이 갈 수 있는 머나먼 설원지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거대한 설산, 설원에서 정화수처럼 흘려내려 이루어진 맑은 호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 하늘… 그 히말라야의 여신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히말라야는 균이 없는 무균지대다. 인더스강, 메콩강, 양자강, 황하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티베트는 아시아대륙의 생명선이다. 그 티베트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50을 훌쩍 넘은 우리부부에게 티베트 여행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내일이면 늦으리’라는 아내의 좌우명이요, ‘찰나를 평생처럼’이라는 나의 좌우명이다. 우리는 마치 우주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이미 티베트라는 우주로 향하고 있었다. 누가 아는가? 무균지대로 가면 혹 아내의 병이 씻은드시 나아버릴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