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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11]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슈킨의 삶과 죽음

찰라777 2005. 9. 1. 05:03


▲ 페테르부르크의 상징 네바 강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푸슈킨-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나의 영혼 속에 아마도
사랑은 여전히 불타고 있으리라.
하지만 나의 사랑은
이제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거요.
어떻게 하든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오.
침묵으로, 희망도 없이
난 당신을 사랑했소.
때로는 두려움, 때로는 질투로
괴로워하면서도,
나는 신이 당신으로 하여금
타인의 사랑을 받게 만든바 그대로
진심으로, 부드럽게
당신을 사랑했소.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푸슈킨의 시는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낭송해 보았을 ‘삶이 그대를 속이지라도’란 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란 시가 구구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다. 마치 사랑했던 부인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원히 붙들고 싶은 애틋함이 서려 있는 듯한 이 시는 내 심금을 울려준다. ‘때로는 두려움, 때로는 질투로 괴로워하면서도… 진심으로, 부드럽게 당신을 사랑했소.’ 시인의 사랑에 대한 고뇌가 깃든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시에서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을 진정 사랑하지만 그것이 조금도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질투에 가슴 태우며 진정으로 부드럽게 당신을 사랑하여 그 사랑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정으로 사랑받기를 바랄 정도라고 노래한다.


 


▲ 차르스코에 셀로(푸시킨 市)에 있는 학습원. 귀족들의 교육장소인 학습원을

푸슈킨은 제2기로 졸업했다.


때는 10월, 우리는 이 천재시인이 공부를 하고 작품 활동을 했던 ‘푸슈킨 고로드’를 찾아가기 위해 나타샤의 집을 나선다. 푸슈킨 고로드는 푸슈킨의 이름을 따서 붙인 市 이름인데, 지금은 다시 옛 이름인 ‘차르스코에 셀로’ 로 복원되었다. 그곳에는 18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 초호화판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이 있고 시인 푸슈킨이 제1기로 졸업을 한 ‘학습원’이 있다.

“프리모르스카야 역에서 초록색깔 3번 지하철을 타고, 2번째 역에서 파랑색 지하철로 갈아타 일곱 번째 역인 마스코프스카야 역에서 내려 역 앞에서 287번 마이크로버스를 타세요.”
“당 채 혀가 안돌아가요. 러시아 말은… 그러니 러시아 말로 적어주시고 그 밑에 한글로 발음을 좀 달아 주세요.”
“그러지요. 그런데 푸슈킨 고로드에 도착 하시면 제일 먼저 호박 궁전 입장권을 사야 합니다.”
“호박궁전이요?”
“네, 예카테리나 궁전 안에 새로 단장해서 금년부터 문을 열었는데, 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저도 아직 가보진 못했어요. 입장객 수와 입장 시간을 제한하기 때문에 구경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페테르부르크에 와서 그 곳을 보지 못하면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되는 곳이지요.”

아이고, 복잡해. 러시아 말은 정말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 먼 외계에서 들려오는 신호처럼 귀를 웅웅 울릴뿐이다. 그래도 별 수 없다. 나타샤가 꼼꼼히 일러주고 러시아말로 적어준 역 이름들을 메모를 하고나서 지도 한 장 떨렁 챙겨들고 길을 나선다. 나타샤의 말대로 초록색 3번 지하철을 타고 다시 파랑색 4번 지하철로 갈아탄다. 아내와 나는 행여 놓칠세라 역의 수를 세며 일곱 번째 역인 마스코프스카야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도시 이름이 적힌 메모를 내 보이면서 푸슈킨 市로 가는 마이크로버스를 찾아 간다.

 

우리를 태운 마이크로버스가 도심을 빠져 나가자 러시아의 전형적인 농촌풍경들이 펼쳐진다. 10월의 러시아는 초겨울에 해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2시간 만에 도착한 푸슈킨 고로드. 그러나 우린 내려야 할 지점을 놓쳐버리고 종점까지 가버리고 만다.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와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가는 역에서 내린다. 버스정거장에서 내려 20여분 정도를 걸어가니 그곳에는 눈이 뒤집힐 듯 화려한 궁전이 초원에 서 있다. 시인의 흔적을 찾아 나선 우리는 ‘예카테리나 궁전’의 화려함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바로 그 옆에 푸슈킨이 공부했던 학습원이 붙어있다. 이 학습원은 1811년 10월 러시아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개교되었다. 1799년 5월 26일, 모스크바의 오래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푸슈킨은 이 ‘학습원’의 제1기생으로 졸업 한다. 학습원은 1949년 푸슈킨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재건되었다고 하는데, 궁전건물에 비하면 초라한 목조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슈킨.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푸슈킨이 있다는 정도로 그는 전 러시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러시아의 국민시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시를 모르는 사람도 소월의 시를 한 두 마디 암송할 수 있듯이 러시아인들은 그의 시를 즐겨 암송한다.

학습원을 졸업하고 외무부의 서기로 관리 생활을 시작한 푸슈킨은 1828년 말 모스크바의 어느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나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몇 번의 청혼 끝에 결혼에 성공하였으나 사교계를 탐닉하는 부인의 생활 때문에 경제적 곤란에 처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염문설에 시달리게 된다.

귀족들의 질시와 모함에 시달리던 푸슈킨은 1837년 1월 26일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전세방의 문을 나가 자신의 아내와 염문설이 파다한 프랑스 공작의 아들인 당테스와 명예를 건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나 그는 이 권총결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뒤 3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나이 불과 38세였다.

이 결투는 비단 당테스뿐만 아니라 당시 퇴폐해진 러시아 귀족사회에 저항하는 결투이기도 했다. 니콜라이 1세 황제마저 푸슈킨의 아내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푸슈킨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였던 것.

그는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초르나야레치카 역 근처의 공원에서 결투를 하였는데, 그가 죽은 100년 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리에는 시인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기념비 한쪽에는 푸슈킨을 계승하는 시인 ‘레르몬토프’가 쓴 ‘시인이 죽음’이란 시의 첫 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레르몬토프는 이 시를 쓰고 나서 러시아 귀족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를 당하고 만다.


명예의 수인(囚人)인 시인이 죽었다.
소문에 명예를 훼손당한 시인이
가슴에 총알과 복수의 원한을 안고
자랑스러운 고개를 숙였다.


에르미타주 국립미술관에 멀지 않은 모이카 운하 변의 좁은 길로 들어서면 푸슈킨 동상이 서 있고, 동상의 둘레를 둘러싸고 있는 푸슈킨 기념관이 있다. 푸슈킨 기념관은 러시아 전국에 22군데나 있고, 그의 기념상은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로 러시아 전역에 있다고 한다. 이곳 페테르부르크에만도 그의 동상이 5개나 있다.

구해군성에서 네프스키 대로를 따라 가다가 모이카 운하를 건너 모퉁이를 돌아가면 ‘푸슈킨 문학 카페’가 있다. 푸슈킨이 직접그린 초상화 데생이 패널로 붙어 있는 이 카페는 러시아의 예술가, 지식인 들이 모여 문학을 토론하던 곳이다. 페테르부르크에 가거든 이 명소에 들려 커피라도 한잔하며 러시아 문학의 정취에 한 번 젖어 볼만도 하다.

 


▲ 차르스코에 셀로 학습원 근처에 있는 푸슈킨의 동상

 

차르스코에 셀로의 학습원을 돌아 뒤편으로 가면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공원 중앙에는 시인 푸슈킨이 오른 손으로 고개를 괴고 앉아 깊은 사색을 하고 있는 듯한 동상이 나온다. 아내의 손을 잡고 그 동상 쪽으로 걸어가는 데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초겨울의 빗방울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 빗방울을 맞으며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침묵으로 희망도 없이 난 당신을 사랑했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