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덴마크2] 코펜하겐에서 만난 둘리 자매

찰라777 2004. 2. 13. 17:18
코펜하겐에서 만난 둘리 자매.
아르헨티나에서 배낭여행을 온 멋쟁이 할머니

□ 코펜하겐에서 만난
둘리 자매


암스테르담에서 하루 종일 유로 버스를 타고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을 하고나니 저녁 8시 20분, 어느덧 컴컴한 밤이 되었다. 유로라인 버스는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중앙역에서 가까운 곳에 정차를 하여 손님들을 내려주었다.

아내와 나는 코펜하겐 변두리에 위치한 유스호스텔 ‘아마게르’로 가는 메트로를 타기위해 중앙역사로 걸어갔다. 중앙역사는 매우 컸다. 코펜하겐은 덴마크 제1의 도시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답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덴마크가 싫어요.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암스테르담호스텔에서 만난 일본여행객 마찌꼬의 말이 생각났다. 과연 중앙역사 안에는 담배 연기로 가득차 있고, 술 취한 사람들이 꽤 눈에 띠었다. 머리를 아무렇게나 길고 터프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들이 거칠어 보였다. '그렇지 여긴 '바이킹의 나라'가 아닌가.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로 500년경 스웨덴에서 건너온 부족들이 국가를 형성해 '바이킹 강국'을 형성했다. 6~10세기는 바이킹의 시대로 불린만큼 이들은 영국, 지중해 연안까지 진출하여 그 위세를 떨쳤다. 덴마크 바이킹의 전성기 시대는 16세기 스웨덴의 독립으로 막을 내린다. 후예들.

우리가 탄 전차는 30분 이상을 달려서야 우리가 내리고자 하는 Sjoeler역에 내려 주었다. 밤 8시. 역사에는 역무원도 없었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도대체 사람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약 4개월 동안의 세계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우리들의 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다 겪어야 했으므로 등에 맨 배낭은 상당히 무거웠다. 택시는 절대로 안타기로 한 우리들이지만 택시라도 타야 할 판. 그러나 택시는커녕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방향감각을 잃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역사의 뒤쪽에서 두 여인이 걸어왔다. 옳다구나, 나는 그 여인들을 놓칠세라 곁으로 다가가 다짜고짜로 길을 물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호스텔로
가는 전차를 기다리며
“아, 우리도 아마게르 호스텔로 가는 길이랍니다.”
“거참, 잘되었군요. 도대체 방향감각을 알 수 없는데 함께 가면 되겠네요.”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이 두 여인이 마치 길을 안내하는 천사와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한 여인이 아내가 무거운 배낭으로 낑낑 대는 모습을 보더니 아내의 작은 가방까지 대신 매 주질 않겠는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자 그녀들은 아르헨티나의 부에 노스아이레스에서 왔다고 했다. 어쩐지 영어 솜씨가 스페인어 억양이 들어 있다싶었는데….

역사에서 호스텔까지는 꾀 멀었다. 길도 꼬불꼬불하여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우린 그녀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호스텔에 도 착하였다. 어제 도착한 그녀들은 오늘 시내 구경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호스텔까지 오는 길이 컴컴하여 여인들의 얼굴을 잘 볼 수가 없었는데, 호스텔에 도착하여 그녀들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70대를 넘은 듯한 할머니들이었다. 편하게 대접이나 받 아야 할 나이에 남의 짐까지 들어주다니... 이 두 자매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오늘 저녁에도 무지 헤맬 뻔 했다.

“정말 너무도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우린 둘리 자매에요. 또 봐요.”

다음 날 아침 아내와 나는 식당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둘리 자매가 먼저 와 있었다. 내가 손을 들고 인사를 하자 그녀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린 토스트를 구어들고 그녀들과 함께 합석을 하였다. 두 자매는 편한한 자세로 앉아서 차 종지에 파이프를 대고 아르헨티나 고유의 차를 돌아가며 마시고 있었다. 너무나 정다운 아침 풍 경이었다.

“어제는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천만예요. 여기에 며칠 동안 머무실 건가요?”
“이틀정도 머물 예정입니다. 두 분께서는요?”
“저희들은 한 도시에 최소한 3일 이상 머물며 여행을 다닌답니다. 이곳 코펜하겐엔 5일정도 머물 예정입니다.”
“아, 그래요! 참 좋은 생각이군요. 그런데 그 차 그릇이 너무 멋있네요?”
“아, 네. 마떼란 차지요. 우린 매일 이 차를 마시지요. 좀 들어 보실래요?”
코펜하겐의 변두리 허허벌판에 있는
유스 호스텔 Amager 앞에서YH


그 중 언니가 차 종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파이프를 타고 구수하고 따뜻한 차가 혀의 미각을 자극하며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차 맛이 마치 둘리 자매의 마음씨처럼 따스했다. 그녀들은 이곳에서 노르웨이의 오슬로를 거쳐 독일의 함부르크로 간다고 했다. 여행기간은 약 3개월.

둘리 자매는 우리가 이번 여행길에 만난 첫 은인들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녀들을 ‘퍼스트 엔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무거운 배낭까지 들어준 고마운 멋쟁이 할머니들이 아닌가!

만약에 우리나라의 할머니들이라면 무거운 배낭 을 들어 줄 수 있을까? 길을 가르쳐 주기도 어려웠으리라. 나이를 잊고 배낭여행을 다니는 참으로 천사 같은 멋진 할머니들이었다.

하늘이여! 이 천사같은 멋쟁이 할머니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