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4] 작고 아름다운 리트코로의 밤

찰라777 2004. 8. 22. 21:47


□ 작고 아름다운 리토호로의 밤



* 오후 산책 길에 바라본 올림포스 산. 뿌연 안개와 구름에 가려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아프로디테 모텔에 여장을 푼 우리는 자고 예쁜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산책에 나섰다. 하나의 마을처럼 형성된 리토호로의 거리는 너무 예쁘다 못해 앙증맞다. 빨간 지붕색깔들의 퍽이나 인상적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우리는 올림포스 산 입구 쪽으 로 걸어갔다.

머지않아 어둠이 내려 올 것이므로 우리는 내일 새벽 올림포스 산 등산을 위한 가벼운 워밍업 겸 평탄한 길만 걸어 가보기로 했다. 산은 안개의 장막에 가려 정상이 보이질 않고 뿌옇다. 깊은 계곡에 물들어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 설악산을 연상케 한다.

마을을 벗어나니 공동묘지가 나왔다. 공동묘지에는 가지가지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꽃이 싱싱한 것으로 보아 매일 꽃을 놓아두는지 모르겠다. 석실형태로 된 묘지 앞에는 촛불을 켜 놓은 곳이 많다. 묘지도 평화롭게 보인다.

묘지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 가니 빨간 지붕에 멋진 집이 한 채가 나왔다. 그리스풍의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레스토 랑인 모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 최대 명산인 올림포스산 입구에는 레스토랑이 딱 이집 하나뿐이다. 우리나라 설악산 같으면 수많은 음식점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공해로 귀가 멍멍할텐데...

마침 저녁 식사 전이어서 우린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니 검은 원피스 정장 차림을 한 여인이 웃으며 우릴 반겼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여인의 차림새에서 그리스 정교회의 신도의 단정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레스토랑에는 그리스 식 케밥인 기로스, 고기를 구어 꼬챙이에 긴 수블라키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오늘밤엔 제우스 신이 보내주신 그리스 음식을 폼 나게 한번 먹어 보자.


* 올림포스 산 밑에 있는 리토호로 시의 아프로디테 모텔에서 바라본 올림포스 산. 계곡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집들은 작고 앙증 맞다.

“난, 케밥을 먹을 레요.”
“케밥 하나면 너무 적지 않소. 내일 새벽에 올림포스 산을 올라가려면 영양보충을 좀 해야지. 여기 쌀밥을 곁들인 음식도 있는데…”
“뭐, 쌀밥이요. 어디 좀 봐요.”
“음식 이름이 확실한 발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마.데.스... 라고 되어 있는데…”
“그럼 난 그 쌀밥을 먹을 레요.”
“난 쇠고기 이 꼬챙이 끼어 놓은 쇠고기를 먹을까?”

쌀밥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아내는 돌마데스를 먹겠단다. 레스토랑의 웨이터에게 메뉴판에 그려져 있는 음식을 손으로 짚으며 우린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20 여분 정도 기다려 야 한다고 했다. 우린 그 20분 동안을 산책을 하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펀펀한 숲길은 너무도 조용했다. 우리나라의 설악산 같으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로 붐빌 시간인데… 겹겹이 포개져 있는 계곡은 너무 아름다웠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너무 맑았다. 그들은 그 맑은 물을 받아 수로를 통해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산에 가도 너무 맑은 물이 그냥 흘러가는 것을 보면 아깝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처럼 계곡의 맑은 물을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 산책에서 레스토랑으로 내려오니 우리가 시켜 놓았던 음식이 바로 나왔다. 웨이터가 친절하게 음식을 설명해 주었다. 돌마데스 Dolmades 는 양념한 쌀과 쇠고기를 숙성시킨 포도 잎에다 말아먹는 음식이고, 수블라키 Souvlaki 는 꼬챙이에 넓적한 고기를 겹겹이 포개 놓고 세로로 세워 천천히 돌리며 불에 구워 만든 것이란다. 익은 부위를 칼로 잘라 밀전병과 양파와 함께 접시에 담아 온 음식이 먹음직스러웠다. 우리나라 숯불구이와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다.

까짓 거 와인도 한잔 곁들이자. 우린 레드와인 두 잔을 시켰다. 터키에서부터 허구한 날 배낭만 걸머지고 다니며, 주먹밥 같은 케밥만 먹어 왔으니, 아마 이 멋진 그리스 음식이 들어가면 속이 놀랄 것만 같다. 수염도 제대로 깍지 않아 내 모습은 피골이 상접이 된 모습일게다. 그러나 필요 없는 군살만 다 날려 버렸는지 올림포스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단번에라도 올라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제우스가 나에게 氣를 충만시켜 주는 것일까/

저녁을 먹고 나서 웨이터는 음식을 만드는 부엌까지 구경을 시켜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레스토랑엔 고양이 들이 떼를 이루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웨이터의 부르는 소리를 알아들었다. 웨이터가 휘파람을 부니 고양이들이 일제히 모여 들었다. 웨이터는 그들에게 음식을 던져 주었다. 우린 때 아닌 고양이들의 쇼를 즐겼다.


* 리토호로의 밤. 다운타운 분수대 앞에서... 잠의 여신은 올림포스 산에서 분수를 타고 저자거리로 내려오는가?

올림포스 산에 어둠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에게해의 푸른 바다 밑으로 잠수를 하고,이제 달의 여신 셀레네가 서서히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리트호로의 작은 거리는 올림포스 산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지더니 이내 어두워지고 말았다.

레스토랑에서 내려온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그 작은 거리를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예상외로 거리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들 거리에 앉거나 서서 환담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더니 밤이 되니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가게에서는 차표 같은 종이에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로또 복권이었다. 그리스에도 로또 복권이 열풍을 불고 있는 모양이다.

거리 중앙에 분수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린 분수대에 옆에 앉아 거리 풍경을 바라보다가 내일 아침을 생각해서 잠자리에 일찍 들기로 했다. 이제 신들도 잠을 잘 시간이다. 우리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불러주는 자장 가에 잠의 신 휩노스가 인도하는 꿈나라로 밤의 여행을 떠났다.



(2002.10.19 그리스 리토호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