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6] 올림포스 산에서 만난 개

찰라777 2004. 8. 25. 01:32


□ 올림포스 산에서 만난 개




* 새벽의 어두운 숲속에서 우린 늑대처럼 생긴 하얗고 큰 개를 한 마리 만났다. 그는 우리들의 길 잡이가 되어 목표지점까지 길을 안내해 주었다. 우린 그 백구를 '헤르메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 올림포스 2100m 고지에서 백구 '헤르메스'와 함께.



“아니… 저게 뭐지요?”
“가만히… 좀 살펴보자고.”

우리는 정말 늑대일 줄로 착각하고 잔뜩 긴장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 놈은 우리에게 슬슬 다가오더니 우리들 앞에 서서 천천히 걸어가지 않는가!

“으음~ 늑대는 아닌 모양이야. 아마 들개 같기도 한데.”
“그래도 무서워요!”
“우리가 그를 해치려고 하지 않는 한 그도 우릴 해치지는 않을 거야.”

정말 희한 했다. 그는 우리를 가끔 쳐다보며 계속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천천히 걸으면 그 놈도 천천히 걷고, 조금 빨리 걸으면 그도 빨리 걸어가곤 했다. 이거야 정말….

“여보, 제우스가 우리들의 길잡이 전령으로 저 백구를 보낸 게 아닐까?”
“설마…”

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생각하며 신기한 듯 아내에게 말했다. 정말 헤르메스가 백구로 변신하여 우리들의 길을 안내 해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백구는 여전히 우리들 앞에 앞장 서서 당당하게 걸어갔다.

“난, 어쩐지 예전에 우리 집에 살았던 백구가 다시 태어나서 지금 우리들의 길을 안내해 주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군요.”
“어?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네.”

아내와 내가 결혼을 하기 전에 아내의 시골집에는 지금 올림포스 산에서 만난 백구만한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아내와 약혼식을 한 후 내가 아내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백구는 금방 나를 물기라도 할 듯시 심하게 짖어댔다.



* 아내가 결혼하기전 30여년 전에 집에서 키웠던 백구.오른 쪽은 장모님(좌)
* 올림포스 산 등산중에 우연히 만난 백구(우).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 한번 나를 보았던 그 백구는 다음에 내가 다시 갔을 때에는 전혀 짖지를 않고 꼬리를 치며 환영을 했다. 그 후 백구는 바람이 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데, 가엾게도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것.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식구들과 함께 그 개를 뒷동산에 묻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옛날의 백구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마침 아내의 사진첩에는 오래전에 백구와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아내가 처녀시절에 시골 집의 화단에서 장모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 한장! 무려 30년도 넘었을 흑백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진짜 올림포스 산에서 만난 백구와 닮아도 보인다.

색깔, 크기, 눈과 귀의 모습까지도… 두 백구가 닮은 모습을 사진을 보니 옛날의 백구가 다시 환생을 해서 나타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정말로 그 때의 백구가 환생을 하여 태어나는 일이 가능할까?(독자님들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 세상에 이런 일도…

어쨌든 비록 개이긴 하지만 등산 일행이 하나 더 늘어서 우리는 심심치 않게 산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백구는 우리가 길을 잘 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컹컹 짖으면서 우리가 올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허허, 참 세상에 이런일도....



* 백구는 우리가 쉬면 같이 쉬고 물과 과자도 함께 나누워먹었다.
백구가 아내로부터 과자를 받아먹고 있는 모습.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는 다른 등산객이 주는 음식물은 전혀 받아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가는 길에 뭔가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채면 여지없이 컹컹 짖으면서 우리들에게 주의를 하라는 경고를 해주었다. 그가 짖어댄 후에는 새라든지 토끼 같은 동물들이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또 우리가 힘이 들어 쉬면서 물이라도 마시면 백구도 우리 옆에 앉아서 기다려 주었다. 과자를 먹을 때 그에게 과자를 주면 공손하게 받아먹었다. 물을 주면 물을 받아먹고… 아내와 함께 다정하게 앉아있는 백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둘이는 정말로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나는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안다' 하는 듯 서로 다정한 포즈를 취하며...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군요!”
“그러게 말이요! 정말 당신 집에 살았던 백구가 환생이라도 한 것이 아닐까?”


* 백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내. 아내는 이 백구가 예전에
시골 친정 집에서 키우던 백구가 환생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백구는 가끔씩 길을 벗어나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럼 우린 이제 다시 아니오나 보다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포기할 때 쯤 되면, 그는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 우리들의 앞에 서서 길 잡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했다.

사실.... 긴 여행에 지친 우리들에겐 3000m가 되는 올림포스 산을 등산하기엔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더구나 여러가지 병을 심하게 않고 있는 아내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올림포스 산을 오르는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에 끌려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대의학으로는 해명 할 수 없는 어떤 불가사의 한 힘! 아내와 내가 만사를 제쳐 놓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병원에서도 완치가 도저히 불가하다는 불치의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우리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계의 氣를 찾아 나선 셈이었다.

우린 여행 중에 실제로 그런 체험을 이미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인도의 불교성지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애리조나 세도나의 볼택스가 나오는 붉은 바위에서, 로키산맥의 거대한 나무 숲속에서…

이러한 곳을 여행하면서 아내는 혼절 상태까지 갔다가도 어떤 기적 같은 힘으로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 힘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실체를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간… 우린 새벽에 만난 백구의 길 안내를 받으며 올림포스 산에서 흘러내리는 어떤 알수 없는 氣를 느끼며 피곤 한줄도 모르고 그 험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 해르메스는 우리가 2100m 고지에 무사히 안착 할때까지 길을 안내해 주었다.
2100m 고지의 대피소에서 머물고 있는 그리스의 등산객과 함께.



우리들은 그 백구를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는 제우스신의 전령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붙어주었다. 헤르메스는 도중에 다른 등산객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묘했다. 헤르메스는 다른 등산객들이 음식물을 주기도 했건만 그걸 전혀 받아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가지도 않았다. 적어도 헤르메스는 우리가 2100m 고지인 ‘시필리오스 아가사피토스 Spilios Agapitos’ 레퓨지에 오를 때까지 우리들의 길을 인도하며 시종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또 스타기질도 대단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면 가만히 우리들 곁에 앉아서 멋진 포즈를 취해 주곤 했으니 말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바야흐로 에게해로부터 태양의 신 아폴론이 솟아올라오고 있었다. 에게해에서 활활 타오르는 태양은 올림포스 산 정상을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들여 버렸다. 금빛 찬란한 올림포스 정상을 넋을 잃고 바라고 있는데, 우리보다 20여미터 쯤 앞질러 가던 헤르메스가 갑자기 자지러질듯 큰 소리로 계속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요?"
"글쎄...?"

우리가 다가 갈 때까지 헤르메스는 짖어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계속-


(2002.10.19 올림포스 산에서 글/사진 찰라)




♬~ Abba : Knowing Me, Know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