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세상에서 가강 큰 장기판-윈난성 다리 창산

찰라777 2010. 1. 14. 13:28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다리 창산④

 

세상에서 가장 큰 장기판

윈난성 다리 창산의 대리석 장기판

 

 

 

▲세상에서 가장 큰 장기판- 다리 창산 칭비씨 계곡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장기판과 통나무로 만든 거대한 장기알이 있다.

 

 

"다리에서는 말을 꼭 한 번 타봐야 합니다. 말 타고 창산을 오르면 진기한 장기판도 볼 수 있어요."

"뭐요? 진기한 장기판?"

"네.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장기판일 겁니다. 장기판이 아니더라도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이 말을 타고 진격을 해왔다는 창산은 갖가지 꽃과 식물, 그리고 연중 사계절을 느낄 수 있어 한 번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게스트 하우스의 다리문은 말 타고 창산 오르기를 꼭 한 번 체험해 볼 것을 극구 권했다. 그래서 우리는 리장으로 가는 것을 하루 연기하고 말을 타고 창산을 오르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을 듣고 그냥 지나쳐오면 나중에 꼭 후회를 하게 된다. 그 먼 여행지를 쉽게 다시 올 수도 없고.

 

다음날 오후 2시 40분에 출발하는 리장 행 버스를 예약하고 오전에는 다리문의 권유대로 말을 타고 창산을 오르기로 했다.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가 우리와 동참을 했다. 창산은 적도 부근에 있지만 평균고도가 4000m에 달해 연중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다리는 말 타고 창산을 오르는 여행코스가 유명하다.

 

 ▲창산은 깊고 매우 험하다.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이 이 창산을 말을 타고 넘어와 다리국을 정벌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리성 서문에서 1인당 50위안을 주고 말을 탔다. 말 타기는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 네 사람이 타는 데 두 명의 바이족 마부가 동행을 했다. 한 사람의 마부가 우리와 동행을 했다. 그 중에 젊은 청년이 서툴게 영어를 구사했다.

 

다리 성을 빠져나간 우리일행은 이윽고 창산의 좁은 골자기로 접어들었다. 콸콸 흐르는 냇물도 건너갔다. 조랑말은 헉헉대며 험한 길을 찾아 올라갔다. 앞이 훤히 트인 언덕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앞에는 거대한 창산이 떡 버티고 있고, 아래로는 고풍스런 다리성과 얼하이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조랑말들이 휴식시간에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탄 말들은 비교적 몸집이 작은 조랑말들이다. 말들은 잘 못 먹었는지 산을 오르다가 자주 방귀를 붕붕 뀌며 풀을 뜯어먹으면서 딴전을 피곤 한다. 연약한 말을 타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 것이 말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풀을 뜯어 먹는 말을 그대로 두면 어느새 마부가 와서 "이랴, 이랴"하면서 고삐를 당긴다. 그러면 말은 "부릉부릉" 콧방귀를 뀌다가 다시 산을 오른다.

 

"이 험준한 골자기로 쿠빌라이가 쳐들어 왔어요. 쿠빌라이 때문에 평화스럽게 살던 우리 바이족은 수난을 당해야 했지요. 리장의 나시족들만 아니었더라도 쉽게 정복을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시족들이 쿠빌라이를 도와주었나요."

"그들이 양가죽으로 다리를 놓아 물살이 거친 진사강을 건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몽골족은 말을 타고 창산을 넘을 수는 있 있었지만 수전(水戰)에는 약하거든요. 우리는 당나라 대군도 얼하이 호수에 수장을 시킬 정도로 수전에 강하고요,"

"아하, 그랬군요."

"그런데 나시족들이 강을 건너는 방법을 일러주어 우리가 전쟁에 패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서  우리 바이족들은  지금도 리장의 나시족들과는 결혼도 하지 않는답니다."

"호오!"

 

  

 ▲창산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

 

바이족 마부는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신이 난 듯 쿠빌라이 칸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협곡에는 냇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조팝나무 향기가 코를 찌른다. 소나무 꽃이 피어나면서 솔향기를 더욱 진하게 풍긴다. 멀리 산등성이에 케이블카가 오가는 것이 보인다. 협곡은 깊고 거칠다.

 

험준한 창산에 둘러싸인 다리는 소설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제갈공명이 남만의 왕 맹획을 칠종칠금(七從七禁)의 계략으로 굴복시킨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곳도 다리다. 다리는 외세의 침략을 허용하지 않는 천혜의 요새다.

 

때문에 당나라 대군도 번번이 정벌에 실패 하였다. 그런데 500년 동안 번성했던 다리국은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의 말발굽에 굴복을 하고 만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지배한 인물 중의 하나로 중국을 정복하여 원나라를 세운 시조다.

 

중국 대륙 정복의 꿈을 가진 쿠빌라이의 임무는 윈난성 대리국을 침공하여 송의 측면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리국은 쉽게 정복되지 않는 땅이었다. 거친 유목민들이 말을 타고 창산을 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거센 물살이 흐르는 협곡을 건너는 것이었다.

 

리장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몽골군은 깊고 물살이 센 진사강(金沙江)을 넘을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리장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이 하나의 묘책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양의 가죽을 벗기되 한곳에만 구멍을 낸 뒤 바람을 넣고 이들을 묶어 뗏목처럼 만들어 부풀어 오른 양가죽을 밟고 건너는 방법이었다.

 

결국 쿠빌라이는 이 묘책으로 진사강을 건너 1253년 대리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금도 다리의 바이족들은 리장의 검은 옷을 입은 나시족과는 절대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높은 산정을 오가는 창산 케이블 카

 

창산은 변화가 무쌍한 곳이다. 봉우리들이 안개에 가렸다가 어느새 나타난다.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은 시리도록 차갑다. 창산에는 18곳의 아름다운 시냇물이 있다는 데, 그 중의 하나가 칭비씨(淸碧溪)의 푸른 물 폭포다. 칭비씨 부근에서는 산세가 워낙 가팔라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케이블 카가 높은 산정을 오고 간다.

 

 

 ▲거대한 장기판과 장기알(상). 장수와 스님이 장기를 두고 있는 동상(하)

 

"와! 정말 거대한 장기판이네요!"

"어이쿠 정말 크네요!"

"저렇게 큰 걸로 어떻게 장기를 두지?"

 

칭비씨 밑에는 거대한 장기판이 놓여 있다. 장기판은 하얀 대리석이고, 장기는 속이 빈 나무통으로 만들었는데 양쪽의 손잡이를 잡고 밀어보니 꿈쩍도 하지 않는다. 졸(卒)을 세우면 사람 키만큼 크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큰 장기판이 아닐까? 장기판 옆에는 장수와 어떤 스님이 장기를 두는 동상이 있다. 창산에서 장기를 두며 풍류를 즐기는 옛 선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칭비씨 연못이 푸른 물과 관세음보살 동상 

 

장기판 위에 있는 칭비씨는 물빛이 푸르다 못해 옥빛이다. 낙수처럼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은 창산의 눈 녹은 물이 빚어낸 작품이다. 연못 가운데는 역시 대리석으로 빚어낸 관세음보살 동상이 눈이 부시게 서 있다. 우리는 관음보살님에게 합장을 하고 칭비씨 계곡을 내려왔다.

 

다시 말을 타고 다리 성으로 가는 길은 말들에게도 한결 수월해 보였다. 더욱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얼하이 호수를 바라보며 계곡을 내려오는 기분은 매우 상쾌했다. 말에게는 다소 미안했지만 그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고 했던가? 함께한 신혼부부는 말 할 것도 없고 아픈 아내도 아픔을 잊어버리고 한층 기운을 차린 모습니다. 

  

 

▲정들었던 다리문과 헤어지며. 위쪽은 다리문 하우스 벽에 그려진 벽화이고, 아래는 다리문의 정원이다. 

 

"말은 탈만 하던가요?"

"네, 참 좋았어요. 다리 문 덕분에 창산 구경 한 번 잘했습니다."

"벌서 떠나려고요. 며칠 더 머무르시지 않고."

"티베트 라사까지 가려면 갈 길이 아직 멉니다. 리장에서 상그리라를 거쳐 가능하다면 매리설산을 넘어 라사로 가고 싶습니다만."

"아주 험한 길이지요. 아마 남자라면 중국인으로 변장을 하여 간혹 들어 갈수도 있지만 여성인 경우는 통과하기가 어려운 길이지요."

"하지만 한번 시도를 해 보려고요. 여기 이 책을 다리 문께 선물을 하고 싶군요."

"아, '잃어버린 지평선'... 귀한 책인데.  감사합니다. 길 조심하시고 좋은 여행길 되시기를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다리 문도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리 고성 도심에는 물이 흘러내려 운치를 더해준다. 인사동이나 북촌도 이처럼 물이 흐르도록 복원을 하면 훨씬 운치가 더할 텐데...

 

나는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수평선(Lost Horizon)"을 다리 문에게 내밀었다. 여러번 읽기도 했지만, 먼길에  이 책도  짐이 될 것 같아서였다. 짧은 동안이지만 다리 문과 어느 새 정이 들어 있었다. 신혼부부는 내일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져 다리문을 집을 나온 우리는 배낭을 메고 후궈루의 거리를 걸어갔다.

 

다리 고성은 시내에 물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고성은 더욱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인사동이나 북촌도 저렇게 물이 흐르도록 복원을 시키면 훨씬 더 운치를 풍길 텐데. 후궈루(서양인 거리)에는 많은 바이족들이 붐비고 있다. 갖가지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한 그들의 모습에서 바이족의 오래된 전통과 과거가 보인다.  우리는 아름다운 다리 고성과 창산을 뒤로 하고 리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별이란 언제나 아쉬운 법이다.

 

 

 

 

 

 ▲다리 고성 후궈루를 거니는 바이족 들. 500년 동안 다리국의 영광을 이어 왔던 바이족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원색의 옷과 모자가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