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비록 하룻밤의 향락이 상상도 못할 만큼 비싸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또한 상상도 못할 만큼 신기하기 때문에 주머니를 털어버릴 때가 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활짝 열 때가 있는 법이다."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 샹그벨트를 여행하는 동안 내내 힐턴의 말이 생각났다. 중국 윈난성 샹그리라 지역은 고원과 협곡을 넘으면 상상도 못할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지곤 했다. 놀라운 풍경을 접하는 순간에는 항상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으며, 주머니 생각, 내일을 위한 걱정 같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한 번도 여행하지 않는 제임스 힐턴의 상상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놀아운 풍경들은 윈난성 리장에서 쓰촨성 판즈화로 가는 협곡과 고원에서도 이어졌다. 이지역은 도대체 중국이라는 나라가 전혀 아니고 티베트 땅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판즈화'라는 붉은 꽃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는 판즈화
▲판즈화 꽃으로 술을 담그고 그 유명한 '사천요리'도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을 떠나는 여행!
윈난 성 리장에서 판즈화까지는 300km가 넘는 험한 길이다. 그러나 계곡과 다랑이 논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오후 3시 30분, 버스는 판즈화 시내에 접어들었다. 무려 8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진사 강을 따라 공업도시가 길게 이어진다.
쓰촨 성 서남부 진사 강과 야룽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판즈화는 모택동이 미국의 눈을 피해 내륙 깊숙이 정책적으로 세운 공업도시라고 한다. 최근 20년 동안 급속히 발전한 판즈화는 티타늄, 바나듐, 크롬, 니켈, 갈륨, 코발트 등 10여개 종의 원소를 생산하고 있는 중공업도시다.
특히 티타늄 금속은 4억 톤 이상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어 전 세계 매장량 총계와 맞먹는다고 한다. 판즈화는 최근에 철강을 중심으로 석탄, 전력, 기계, 건축자재 등의 공업기지가 건설되는 등 중국의 숨은 병기창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붉은 꽃의 터널, 판즈화
진사 강을 따라 늘어선 공장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행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 꽃의 터널이다. 판즈화(攀枝花)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판즈화'라는 꽃 이름으로 명명한 도시다.
▲판즈화는 세계 최대 티타늄 매장량 등 자원을 보유한 중국의 숨겨진 공업도시다.
"어머! 저 붉은 꽃 좀 봐요!"
"판즈화라는 꽃이야."
"판즈화? 도시 이름하고 같네요. 완전히 붉은 꽃의 터널이에요."
판즈화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꽃이다. 적색 꽃잎과 금황색 꽃술이 도시의 가로수 터널을 이루고 있다. 판즈화는 매년 늦겨울과 초봄에 꽃이 핀다. 판즈화는 꽃잎을 제거하고 꽃술로 요리를 한다고 한다.
▲붉은 꽃, 판즈화(攀枝花)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판즈화시는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꽃의 이름을 가진 도시다.
파사충(爬沙虫)과 판즈화(攀枝花)는 쓰촨 성 판즈화시에서 지방 특색이 제일 짙은 두 가지 요리다. 판즈화 요리는 속의 열을 제거하고 장도의 소화를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파사충은 수생연체동물로서 풍부한 단백질과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 및 양용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신장 기능을 제고하고 풍습을 치료하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기차를 타기 위해 판즈화역으로 가는 시내는 완전히 붉은 꽃의 터널이다. 버스터미널에서 기차역까지는 30km나 떨어져 있었다. 진사 강을 따라 역으로 가는 강변에는 판즈화꽃 붉은 터널이 마치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길 양쪽에 죽 도열해 있었다.
어메이산(峨眉山)으로 가는 기차를 타다
오후 4시 40분, 판즈화 역에 도착을 하여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오후 5시 9분에 청두로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그러나 일반석은 매진이고 침대칸밖에 없다고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 기차를 놓치면 판즈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나는 기차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내를 무시하고 455위안이란 거금을 주고 어메이 산 행 침대표 두 장을 샀다. 9호차 13호, 14호석. 숨 돌릴 여유도 없이 기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르니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호사를 누리는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윈난 성 여행은 매일 흙먼지를 날리는 길을 털털 거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래도 숨 막히는 풍경을 접하며 지루하다거나 피곤한 줄을 모르고 다녔다. 비록 다락방과 도미토리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더라도 내일 새롭게 접할 여행지에 대한 풍경을 상상하며 흥분에 젖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처럼 안락한 침대에서 차창에 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기차 내에는 식당칸도 있었다. 배가 고팠다. 리장에서 판즈화로 오는 도중 10시 반에 멈춘 어느 주점에서 모두 식사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판즈화까지 오는 도중에는 식사를 할 여유가 없었다.
▲오랫만에 젖어 보는 침대차의 안락함... 식당칸에서 중국 맥주 한잔으로 쌓인 여독을 푼다.
비싼 기차요금으로 속이 쓰리다고 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식당 칸으로 갔다. 까짓것 기왕에 내친걸음이니 좀 더 호사를 누려보자. 식당 칸에 들어서니 많은 중국인들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꽃도 있었다.
콩나물 야채 스프, 소의 간, 두부 요리를 시키고 맥주도 한 병 시켰다. 모두 해서 75위안이다.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 들고 아내와 둘이서 소리 나지 않는 컵을 마주치며 "건배"를 외쳤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맥주 맛이 감질이 난다. 아마 오늘 밤에 위장이 놀랄 것만 같다. 나는 제임스 힐턴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구절이 다시 생각났다.
"....인생에는 비록 하룻밤의 향락이 상상도 못할 만큼 비싸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또한 상상도 못할 만큼 신기하기 때문에 주머니를 털어버릴 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활짝 열 때가 있는 법이다....."
콘웨이는 티베트의 어느 히말라야 산맥에 불시착을 하여 숨 막히듯 아름다운 카라칼 설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주모니에 담긴 모든 것을 털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 심정이 그랬다. 나는 이번 여행 중 가장 비싼 요금인 500위안(약 8만원)을 지불하고 느긋하게 판즈화에서 청두로 가는 침대칸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있었다.
침대칸은 상하 4개로 되어 있다. 한 참을 가도록 아무도 타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이 독치지를 하고 있었다. 덕창(德昌)이라는 역에서 아가씨 두 명이 탔다. 그러나 기차 차장도 여행자도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중국어를 하지 못하니 피장파장이다.
나는 한문을 써서 두 여행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문은 뜻글자이니 서로 의사 전달이 가능했다. 그들과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역무원이 창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해서 잠을 깼다. 다음 역이 어메이산 역이라는 것. 새벽 4시. 컴컴한 어메이산역에서 내렸다.
우리가 어메이 산 역에서 내리는 것은 중국 4대불교 성지의 하나이자 '아미파' 무술의 본거지인 어메이 산(峨眉山, 아미산)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